간혹 보면 교회를 위해 하는 일만 '거룩한 사역'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또는 사역이란 목회자나 선교사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심한 경우 목회자의 삶은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사역이고, 다른 성도들의 일상적인 삶은 그보다 덜 중요한 사역으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대단한 오해입니다. 성스러운 일과 속된 일을 구분하는 것은 지극히 중세적인 발상입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시대인 신약 교회의 성도에게는 영적인 일과 육적인 일을 구분하거나, 교회 일과 세상일을 따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지체인 성도 자신이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삶'도 거룩한 사역이다

구약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드리려면 원칙적으로 제사장을 통해서만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으로 인해 모두 '왕 같은 제사장'의 신분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젠 성도 각자가 직접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성도 개인의 삶이 바로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것이지요. 

그 결과 신약 교회에서는 구약의 제사장 같은 별도의 성직자 직분이 따로 없고, 목사와 장로를 포함한 모든 성도는 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히 평등한 신분입니다. 만일 누구라도 이를 부인한다면, 그는 사이비라고 보아도 별 무리는 없을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 거룩한 사역이라면, 교인들에겐 하나님 말씀대로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사는 것 또한 거룩한 사역입니다. 서로 대등한 신분이지만 각자 다른 직분을 맡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가족을 돌보고, 직장에서 동료들과 화평하며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지역사회에서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일상적 생활이 모두 다 소중한 '주의 일'이며 '거룩한 사역'입니다. 성령께서는 성도의 일상 속에서 함께 사역하시기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따라서 아무리 40년 동안 성실히 목회하신 원로목사님이라도 50년간 겸허하게 사역하신 여성 집사님 앞에서 특별히 우쭐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제법 목회적 성공(?)을 이룬 일부 대형 교회의 유명 목사님들 중에는 나이 드신 교인들 앞에서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를 가끔 보는데, 그건 그만큼 신앙이 미성숙하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우리는 목사님들의 목회만 성역(거룩한 사역)이 아니라, 성도들의 직장 일도 매우 중요한 성역임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그러므로 교회 활동이 성도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기는 하지만, 교회 일이 성도 사역의 전부가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성도들은 교회당 외에도 가정, 학교, 직장, 사업장, 지역사회, 그리고 기타 사회 활동 등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야 할 거룩한 특권과 의무를 지니고 있으니까요.
 
다행히 요즘 대부분의 건강한 교회에서는 사역의 균형을 중요시하며 세상 속에서 제자다운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이단이나 사이비 교회들을 보면 교회 일만 신성시하며 너무 강조하여 가정생활, 학교생활, 직장 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에 큰 균열이 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교회 사역을 명분으로 하여 가정이나 직장을 소홀히 한다면 이는 결코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 만일 제자된 삶이 단순히 '헌신적인 교회 생활' 하나로 충분했다면, 사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사역지는 화려한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너희는 내 이름으로 큰 건물을 세우고, 그 벽돌 덩어리를 신성시하여 성전이라 기만하고, 집회마다 기복 장사로 열심히 돈을 걷고, 유급 교역자들 잔뜩 고용하여 계급적 조직을 만들고, 허울뿐인 연합 단체들 줄줄이 만들어 감투 나누어 먹고, 이웃 교회에 가서 강사비 듬뿍 챙겨 설교하고, 경쟁적으로 주일 버스 운행하며 양 도둑질에 힘쓰고, 평일은 대충 살면서 주일은 거룩히 지내고, 통성기도 남용하여 분위기 신앙 조장하고, 그리고 주야로 부자가 되기를 강청하며 우아한 종교 생활에 힘쓰라"고 하셨던가요.

오늘날 왜 개신교가 개독교란 오명을 듣고 있을까요. 왜 우리는 세상 속에서 소금이 되지 못 하고 설탕만 뿌리고 있을까요. 왜 교회에서는 독실한 장로요 집사인데, 직장에선 '나일론 신자'란 말을 듣고 있을까요. 과연 왜 우리는 교회 생활에는 귀신이나, 사회생활엔 등신인 병신도가 된 것일까요. 왜 우린 고작 종교적 삶에는 귀신이나, 진리의 삶에는 등신인 맹신도가 된 것일까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지 

예수님은 결코 성전이나 회당 속에 안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초라한 목수의 아들로 우리 곁에 오셨던 그분은 그저 가난한 어부, 멸시받던 세리, 천대받던 창기, 고통받던 병자, 그리고 소외된 민초들 속에서 함께 먹고 자며 겸손히 일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가정과 친구와 이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지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젠 만날 교회당 속에서 북적거리며 교회 사역만 주의 일처럼 강조하지 말고, 밖으로 나가 세상 속에서 제자답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헌신적인 교회 생활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누가 아무리 교회당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교회 일에 열심이 있더라도, 가난과 질병과 차별과 불평등과 압제와 불의와 억울함으로 인해 흐르는 우리 이웃의 눈물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눈물은 사랑이고, 사랑이야말로 가장 '거룩한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샬롬!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 주십시오."(롬12:15) 

신성남 / 집사·<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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