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컨퍼런스 둘째 날, 목회자들이 오랜만에 강단이 아닌 객석에 앉아 멘토들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목회자 멘토링 컨퍼런스 둘째 날 아침.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이 지났는데도 밖은 여전히 쌀쌀하다. 참가자들의 아침 묵상을 돕는 산책로도 겨울 그림자가 드리워 설렁하다. 컨퍼런스가 진행되는 필그림하우스 실내는 바깥 날씨와 상관없이 온화했다. 커다란 창을 통해 들어오는 아침 햇살이 복도의 찬 공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오전 9시가 되자, 식사를 마친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모임 장소로 모여들었다.

멘토로 참가한 목사들과 참가자들은 일찍부터 모여 서로 대화하며 강의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각자 사는 곳도 다르고, 교단도 다르고, 사역하는 교회 크기도 달랐지만, 목회자라는 동질감 속에서 서로 할 말은 많아 보였다.

▲ 박득훈 목사는 한국교회가 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눈물과 분노가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이날 오전에는 박득훈 목사가 '돈에서 해방된 교회를 꿈꾸다'를, 김기석 목사는 '희망, 죽은 나무에 물을 주는 정성으로'를 주제로 강의했다. 이날 멘토들은 한국교회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교회가 지향할 방향을 제시했다.

"내가 이전에 추구했던 가치들이 다 욕심이었다. 자식을 위해 했던 기도 제목들을 살펴봐도 그렇다. 자식이 잘되게 해 달라고 떼를 썼던 것 같다. 4·16 참사 이후, 그동안 교회 안에만 있어서 몰랐던 부분이 많았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과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다. 교회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느라 세상을 바라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게 전부인 것처럼, 잘하는 것처럼 산 것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예수 잘 믿는 모습은, 정말로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아닌 것 같다.

교회에서 목사는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을 마치 교회 생활을 잘하는 것쯤으로 말하는 것 같다. 봉사 잘하고 헌금 잘하고. 한국교회는 '전도, 전도, 전도'를 외친다. 그런데 마치 그 모습이 정부에서 '성장, 성장, 경제성장'을 외치는 것과 동일하게 들린다. 정말 영혼을 사랑해서 전도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교세 확장을 위한 외침으로 들린다."

박득훈 목사는 강의에서 <뉴스앤조이>가 보도한 세월호 유가족 최순화 씨의 인터뷰 기사 일부를 인용했다(관련 기사: 죽은 아들이 왜 엄마 꿈에 나타났을까). 최 씨의 말에서 한국교회가 처한 현재 위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교회가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돈의 노예가 되어, 교세 확장과 성장에만 관심 있다는 것이다.

▲ 김기석 목사는 예수님의 뜻에 사로잡힌 사람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한국교회가 돈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눈물과 분노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했다. 예수님처럼, 불의한 세태에 대해 울고 분개하라고 했다. 박 목사는 "설령 사람들에게 핍박과 고난, 조롱과 멸시를 받을지라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길을 끝까지 따라야 한다"고 했다. 

김기석 목사는 한국교회에 잠식하고 있는 자본주의의 욕망을 지적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 끝없이 욕망을 부추긴다. 그런데 교회도 이런 영향을 받고 있다. '예수를 믿었더니 부자가 되고, 병이 나았다. 인생이 잘 풀렸다'는 간증들이 이런 욕망을 더 부풀리고 있다"고 했다.

"하나님 뜻대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니 결국에는 삶이 어려워지더라. 그래도 나는 행복하다." 김 목사는 이러한 간증이 한국교회 안에 통용될 때, 교회는 더욱 더 성숙해질 거라고 했다. 예수를 따르는 삶은, 부풀어진 자기 욕망의 본질을 깨달아 삶의 주도권을 욕망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기독교 복음이 지향해야 하는 것은 작은 것이라고 했다. 명품 핸드백이 지닌 가치를 추구하지 않고 작고 사소한 것에서 만족할 수 있는 영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대형 교회를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교회 성장 운동은 한국교회의 원죄다. 큰 교회만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수만 명이 다니는 교회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뜻에 사로잡힌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강의가 끝나자, 멘토와 참가자들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일부 내용을 정리한다. 

▲ 강의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멘토와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가끔은 목회자를 그만두고 싶다"는 진솔한 얘기가 오갔다. ⓒ목회멘토링사역원 엄태현

"개척교회 같은 경우에는 물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매달 월세 내기 빠듯하고, 외부 사역도 해야 하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자신을 개척교회 목사라고 소개한 한 참석자는, 돈이 필요한 현실과 돈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이상이 상충하는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물었다.

박득훈 목사(이하 '박'): 주기도문을 보면 "일용할 양식을 우리에게 주옵시고"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약속합니다. 그것을 기억하세요. 하나님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소명에 따른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본적인 필요를 채워 줄 것입니다.

김기석 목사(이하 '김'): 맞는 말입니다. 개척교회 목회자들에게 재정 문제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한국교회가 공동으로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부 목회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꼭 물질적인 필요를 채우는 사역에서 탈피했으면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존재 의미를 깨우쳐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젊은 목회자는 실패하는 목회가 두렵다고 했다. "패배해도 좋다는 말이 사실 내적으로 동의되지 않는다. 작은 교회에서 목회해도 어딘가에 불려가 강의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산촌 구석에서 목회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목사가 될 수 있을까."

: 질문자의 말이 제게도 공감이 됩니다. 답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지난 삶을 돌아보면 소위 잘나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박사 학위도 받고, 교회도 개척하고, 단체 대표도 역임했습니다. 질문에 답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게 대단히 명예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차라리 목사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걸 했다고 행복했을까. 아닙니다. 차라리 행복해지려면 행복해지려는 태도를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해지려고 할 때, 우리 안에 있는 신념의 기둥은 밑동부터 썩기 마련입니다. 불행해지는 것은 행복해지려고 할 때입니다. 우리의 삶이 불확실한 삶이기 때문에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불확실한 게 인생이라고 받아들이세요. 예수를 따르려는 것 자체가 이미 예수와 함께 실패하는 길입니다.

한 참석자는 나이가 많은 교인들은 정치 얘기를 하면 거부감을 나타내는데, 젊은 교인들은 목사가 침묵하는 것이 불만이라고 했다. 이들에게 사회 현안에 대해 어떻게 설교할지, 어떻게 실천을 이끌어 낼지 물었다.

: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먼저 목사의 언행일치에 달려 있습니다. 목사의 설교가 삶으로 나타나면 교인들은 따라옵니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교인들도 실천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눈치를 보는 것은 안 좋습니다. 하지만 교인의 입장과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설교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양쪽을 고려하며 설교하면 좋겠습니다.

: <순례자의 노래>라는 책을 보면, "우주의 중심이 상처 입은 어린 양에 있다"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세상 속 아픔의 자리에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세상의 고통을 예수의 고통으로 생각한다면, 그 아픔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인들에게 설교할 때 정치적인 논리보다는 아픔을 공감하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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