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15세 된 외동딸 혜민이가 목회멘토링사역원에서 주최한 '목회자 자녀 미국 비전 투어’를 다녀왔다. 3주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혜민이는 또래 청소년 PK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미국의 주요 도시를 돌며 많은 사람과 새로운 세계를 보고 돌아왔다.

우리 부부는 이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하면서 몇 가지 기대가 있었다. 4년 전 광주광역시로 이주해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목회를 꿈꾸며 시작한 문화 사역 공간 '숨'을 꾸려 가다 보니, 작은 교회의 특성상 아이가 또래 신앙 공동체를 경험하기 어려웠고, 다양한 예배에 참여해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또한 복음으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멋진 신앙의 멘토나 또래 신앙 친구를 만날 기회 역시 얻기 힘들었다. 한참 사회나 규율에 비판적인 관점을 갖게 되는 시기에 신앙에서 편협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가 있었다.

이번 비전 투어는 PK들이 함께 참여할 뿐만 아니라 홈스테이 등 현지 교회의 환대와 돌봄을 경험하고 유학생이나 교포 중에 멘토를 만날 수 있게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 부부는 아이가 이러한 것들을 통해 다양하고 소중한 신앙 공동체를 접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미국이라는 또 다른 문화권의 나라에서 해 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으로 삶의 안목을 넓히고 자신의 존재가 넓은 세계와 시간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는지 생각해 봤으면 했다.

아이는 여행을 다녀온 후, 낯선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고 뭔가를 얻고 알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졌다고 했다. 겁이 없어졌다. 도전에 좀 더 적극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고 자기 삶에 책임감도 깊어져서 돌아왔다.

외동딸로 일상생활에서 긴장감이나 갈등이 별로 없이 지내다 보니 책임감이나 도전 의식이 부족하게 느껴졌었는데 한 뼘은 자라서 돌아온 것이다. 본인이 지금까지 알고 경험했던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깨달음과 함께 세상에 대한 인식의 폭도 넓어진 것 같았다. 광활한 자연에 감동받기도 하고 다른 환경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게 되었다고도 했다.

PK 또래를 만나고 공감하면서 얻은 위안과 격려는, 늘 친구에 목말라 하던 아이에게 형제가 생긴 것 같은 선물이었다. 가끔은 SNS로 소통하느라 시간을 많이 쓰는 부작용이 있기도 하지만. 비전 투어를 다녀와 가장 고마운 것은 아이가 가정과 부모에 대한 감사와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부모님이나 가정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의 오해나 섭섭함을 풀고, 가정이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지를 이야기했다.

이러한 아이의 모습을 보니 우리 부부 역시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구속하거나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바라기보다는, 좀 더 거시적으로 독립된 존재 자체를 바라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믿음과 용기, 소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준비하고 살아가는 데 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와 사춘기 자녀 사이에서 서로를 신뢰하는 것, 솔직히 소통하는 것, 아이가 자신의 꿈을 두려움 없이 말하는 것, 부모로서 지원과 격려를 보내 주는 것 등. 이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 있을까? 비전 투어를 통해 우리 가족은, 청소년 시기에 자신의 삶을 인식하고 만들어 가려는 아이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 가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함께 살펴본 것 같다. 큰 변화나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서로의 관계를 확인하고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그것이 우리 모두를 든든하게 했다.

안석 / 안혜민 아빠, 광주 숨-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