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가 사회를 걱정해야 하는데, 오히려 사회가 종교를 걱정해 주는 시대를 살고 있다."

종교를 걱정하는 그리스도인과 불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2월 28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위치한 화쟁문화아카데미에서 '종교를 걱정하는 불교도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경계 너머, 지금 여기'라는 이름으로 포럼이 열렸다.

이날 포럼에는 불교, 개신교, 가톨릭 등 서로 종교가 다른 세 사람이 나와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걱정을 논의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불교에서는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 조성택 교수(고려대 철학과)가, 개신교·가톨릭에서는 각각 김진호 연구실장(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김근수 소장(해방신학연구소)이 자리해 서로 머리를 맞댔다.

종교가 서로 다른 세 종교인이 한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낸다는 흔하지 않은 자리여서인지, 강연 시작하기 전부터 빈자리 없이 꽉 찼다. 늦게 와서 서서 듣는 사람들도 꽤 됐다. 청중들은 공통점보다 차이점이 많았다. 종교도 다양했고, 나이도 3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참석한 이들은 각자 종교가 다른 세 학자가 자신의 종교에 대해 어떤 말을 할지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다소 전문적이고 난해한 주제였음에도, 사회를 맡은 성해영 교수(서울대 인문학연구원)의 유쾌한 진행과 토론자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져 참석자들 모두 집중한 가운데 강의를 들었다. 강의 내내 필기를 하는 방청객들도 많았다.

▲ 종교를 걱정하는 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서로 종교가 다르지만, 이들은 한국 고유의 '화쟁' 문화를 통해 지금 한국 종교가 처한 현실을 짚어 내고 풀어 가자고 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깨달은 자들'만 특권 가지는 불교...개신교·가톨릭도 크게 다르지 않아

먼저 조성택 교수가 "오만과 편견: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인가"라는 주제로 발제했고, 김진호 연구실장과 김근수 소장이 이를 논평했다. 이후 토론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이날 주제인 '깨달음'과 관련해 각 종교가 지닌 문제점을 놓고 열띤 토론을 펼쳤다.

조 교수는 불교에서 지나치게 '깨달음'을 강조한다고 했다. 소위 '깨달음 지상주의'가 깨달은 자와 깨닫지 못한 자를 나누고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깨달음이 소수의 선택된 자들만이 체험할 수 있는 특권의 영역이 되었다면서, 이는 깨달음을 신비한 체험으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일반 신자들은 깨달음이라는 것을 매우 고상하고 어려운 경지라고 생각해 이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불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법문들을 들으면 '저 스님의 깨달음이 높구나, 나는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하다'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조 교수의 발제를 들은 김진호 연구실장과 김근수 소장도 대체로 종교가 깨달음을 권력화, 특권화한다는 주장에 공감했고, 불교뿐만 아니라 개신교·가톨릭에서도 깨달음을 강조해서 나타나는 폐단을 지적했다.

김진호 실장은 깨달음이라는 용어를 개신교에서는 도그마(교리)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개신교는 믿음과 성경에 대한 강력한 도그마가 있지만, 일반 교인들에게 '믿음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선뜻 대답 못한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모호한 믿음에 대한 개념이 성직자를 권력화하고 특권화한다고 했다. 성경을 많이 읽게 하고 말씀을 많이 듣게 하지만 세부 내용은 성직자들에게만 의지하게 되고, 아는 사람(깨달은 사람)과 모르는 사람(깨닫지 못한 사람) 간의 계층 질서를 만든다고 분석했다.

김근수 소장도 모든 힘이 성직자에게 집중되어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마치 가톨릭교회가 '은총을 관리하는 은행'처럼 되어 버렸다고 했다. 신도들은 은총을 줄지 말지를 결정하는 성직자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토론 시간에는 깨달음이 곧 행동으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깨달은 이후에 행동할 것인가, 깨닫기 전에 행동할 것인가를 두고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김진호 실장은 개신교의 과잉 행동 역사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김 실장은 그 예로 1940~1950년대 서북청년단원들이 기독교의 이름으로 학살을 자행한 점을 들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가 생긴 것은 깨달음 이전에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올바른 깨달음 없이 행동이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교회에서 20~3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한 교인들도, 사실은 설교를 잘 듣지 않는다는 점에 놀랐다고 했다. 담임목사는 한 주에 평균 8번의 설교를 하지만 정작 교인들은 지난주 설교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결국 종교에는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성택 교수는 깨달음 이후의 행동은 실천과 다르다고 했다. 행동하지 않는 것도 실천일 수 있다는 말이다. 김근수 소장은 성서의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를 예로 들며, "성서는 예수의 말씀(깨달음)을 듣지 않고 봉사(행동)만 한 마르다를 비판하지만, 사실 그 이야기의 핵심은 말씀을 들을 때는 듣고, 말씀을 듣고 나서는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행동한 만큼 깨달은 것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회자 성해영 교수, 불교 조성택 교수, 가톨릭 김근수 소장, 개신교 김진호 연구실장. 이들은 11월까지 매월 열리는 포럼을 통해 한국 종교의 미래를 논의한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서로의 종교를 묻고 배우는 계기...포럼, 11월까지 매월 개최

토론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참석자들의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다. "깨달음을 제대로 강조하지 않는 것이 문제 아니냐"는 지적부터, "요즘 나도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어디 가서 이런 소리하면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한다"는 발언까지 신자들이 자신의 종교와 경험에 비추어 이해한 내용들을 묻고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한 기독교인이 "5,000년 동안 유·불·선에 의해 망할 대로 망한 국가가 기독교를 통해 이만큼 성장했다"고 주장하며 불교는 죽은 자들의 종교라고 몰아붙여 참석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도 있었다.

이번 포럼을 준비한 화쟁문화아카데미는 공감과 상생이라는 화쟁 정신을 실천하고자 2014년 4월 설립된 단체다. 대표인 조성택 교수는 종교들 간의 공감과 소통, 사회 속 종교의 역할을 묻고 답하는 것이 화쟁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며 이 포럼을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은 11월까지 매월 1회씩 진행된다. '무엇이 걱정인가?', '왜 걱정인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의 세 개 주제로 3개 종교가 돌아가며 발제한다. 다음 포럼은 3월 28일 같은 공간에서 '무엇이 걱정인가?'의 두 번째 시간으로 개신교의 걱정을 논한다. '개신교의 배타주의와 타자의 악마화'라는 주제로 김진호 목사가 발제하고, 이를 주제로 불교·가톨릭과 토론한다.

▲ 참석자들은 진지하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강의를 들었다. 불교 단체에서 연 포럼이지만 개신교인들과 가톨릭 신자들도 많이 찾아 관심을 표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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