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지하철 9호선 2단계 구간 929번 정거장 이름을 '봉은사역'이라 정하고 3월 28일 개통을 앞두고 있다. 이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영훈 대표회장)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양병희 대표회장)은, 2월 27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봉은사역 명명을 철회할 것을 서울시에 요구했다고 <연합뉴스>와 <노컷뉴스> 등이 보도했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한기총과 한교연은 '봉은사역'을 '코엑스역'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민 모두가 다 아는 지명을 놔두고 특정 종교의 사찰 이름을 역명으로 결정한 서울시의 조치를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봉은사가 서울시의 역명 제정 원칙 중 하나인 '역사에 인접한 고적이나 사적, 문화재'로 등록된 사찰이 아니라는 점 등을 역명 철회 요구의 근거로 제시했다.

한편, "특정 종교와의 갈등이나 종교 편향으로 비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라 서울시민으로서 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공식 역명을 코엑스역으로 하되 '봉은사'를 나란히 적는 방안도 제안했다.

<동아일보> 등의 보도를 보면, 이 같은 반대에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시지명위원회가 3차례 심의를 거쳐 확정한 사항이며 절차상 문제가 없고, 현재로서는 봉은사 역명을 바꾸거나 재심의할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역명은 지난해 12월 확정됐다. 역명을 짓는 데에는 봉은사의 '역사성'을 가장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 서울시 역명 제정 원칙. ('서울 정보 소통 광장' 페이지 갈무리)

서울시 지하철 역명 제정 원칙

서울시지명위원회 조례 5조와 부시장 방침 440호(지하철 역명 제정 기준)에는, 역명을 지을 때에는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며 해당 지역과의 연관성이 뚜렷하고 지역 실정에 부합하는 옛 지명 또는 법정 동명, 가로명 등을 원칙으로 함'이라고 되어 있다.

위의 명칭이 이미 다른 역명으로 쓰이는 등의 경우에는 다음의 하나를 따른다고 되어 있다. ① 인접한 문화재 명칭 ② 이전 우려 없는 주요 공공시설명 ③ 지역을 대표하는 다중 이용 시설 또는 역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는 지역 명칭 ④ 역사가 특정 부지 내에 위치하고 있고 그 시설물이 지역명으로 인지 가능한 경우 그 시설명 중의 하나로 정한다. 또 기타 특정 단체 및 업체의 홍보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명칭을 '역명 제정 시 배제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코엑스 측의 입장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코엑스역으로 해야 한다는 개신교의 주장은 합리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연합뉴스>의 기사가 게재된 미디어다음 페이지에는, 만 하루가 지난 2월 28일 오후 5시를 기준으로 7800여 개의 댓글이 달렸다. 기자회견에 긍정적인 내용의 댓글은 거의 찾을 수 없다.

총신대입구역 사태와 한국교회언론회의 '친일 사찰' 논평

개신교가 욕먹었던 일로, 2000년 초에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서울시는 과거 1985년 4호선 개통할 때부터 15년 써 오던 총신대입구(이수)역 이름을, 2000년 7호선을 개통하면서 이수역으로 바꾸고 지금의 남성역을 남성(총신대입구)역으로 변경했다. 총신대와 600m 거리의 7호선 남성역이, 1600m 떨어진 이수역보다 훨씬 가깝기 때문이었다. 또 7호선 개통에 맞춰 4호선을 이수역으로 통일하려고 했다. 환승역으로서 같은 역을, 7호선에서는 이수역이라 부르고, 4호선은 총신대입구(이수)역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총신대와 예장합동 인근 교회들이 들고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안티총신대학교 홈페이지가 개설되고 '이수 점거 프로젝트 ― 이수역 명칭 바로 세우기'라는 카페도 생겨나면서 개신교 전체가 도매금으로 비난받았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었던 2000년대 초로서는 대대적인 움직임이었다. 결국 서울시는 또다시 역명을 바꾸었다. 2001년 7호선 남성(총신대입구)역을 남성역으로, 4호선 이수역을 총신대입구(이수)역으로 고쳤다. (관련 기사: 한국교회 "우리는 왕따이고 싶다?")

한기총·한교연의 기자회견에 앞서 2월 13일 한국교회언론회(유만석 대표)는, '친일 사찰 봉은사, 전철역의 이름으로 안 되는 이유 분명하다'는 논평을 냈다. 주지급 승려 3명이 친일 인사였고, 봉은사는 친일 불교의 총본산이라면서 "서울시는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시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역명으로 개정·고시하라"고 요구했다.

옥성득 교수(UCLA 한국기독교학 종신)는, 같은 일제강점기 시기 주류 개신교 역시 친일에 앞장섰다고 말한다. 성결교와 장로교, 감리교 등 거의 모든 교단은 1938년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하고 한국교회에 동참을 권유했다. 1943년에는 교계 거물들이 일본에까지 가서 신궁 참배를 하고 왔다. (관련 기사: '식민 사관' 어쩐지 익숙한 한국 개신교)

바로 가기:

"봉은사 역명 철회하고 코엑스역으로 변경하라" <노컷뉴스>

개신교 단체, 서울시에 '봉은사역' 역명 철회 요구 <연합신문>

"봉은사역" vs "코엑스역" <동아일보>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 명명에 불교계 조직적 개입 <국민일보>

지하철 9호선 2단계 역명 제정 계획 (서울 정보 소통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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