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윤선 목사의 자녀인 박혜란 씨가 쓴 <목사의 딸>이 출간됐다. 교계는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박혜란 씨는 박윤선 목사(사진 왼쪽)와 첫 번째 부인 김애련 사모(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이에 3남 3녀 중 둘째 딸이다. 사진 중앙에 선 이가 박혜란 씨다. (사진 제공 

딸이 본 아버지의 모습, 사뭇 낭만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데 논란이 일 정도로 적나라하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칭송받던 목사의 자녀가 쓴 <목사의 딸>(아가페북스)이 교계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반응은 뜨겁다. 2014년 12월 5일 첫 판매를 시작한 이 책은 2월 25일 현재 누적 판매 부수 1만 부를 돌파했다. 출판사는 6쇄 인쇄를 준비 중이다. 2쇄 재판이 어려운 기독교 출판 환경을 감안한다면, 교계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 준다.  

저자는 박윤선 목사와 첫째 부인 김애련 씨의 3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45세 늦은 나이에 덴버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할렐루야교회에서 성경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국교회에서 박윤선 목사는 20세기 한국 보수 신학의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고신대와 총신대 그리고 합신대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고, 1979년에는 세계 최초로 신·구약 성경 전권을 주석했다. 1980년 교권주의자들의 횡포를 피해 설립한 합신대학교의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이기에 <목사의 딸>이 한국교회에 던진 파장은 적지 않다.

매정한 아버지 박윤선…"믿을 수 없는 내용" 

▲ <목사의 딸>의 부제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다. 박혜란 목사는 프롤로그에서 책을 쓴 동기를 언급한다. 아버지와 가족의 이야기를 사실대로 기록해, 아버지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하자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매우 충격적인 책 가운데 하나다. 무척이나 가슴이 아픕니다. 잘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추천사를 쓴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의 말처럼, 저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버지로서의 박윤선 목사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딸에게 있어 박윤선 목사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가족의 생계를 어머니께 맡긴 채 공부와 교회에만 매달린 분이었고, 유교적 권위에 사로잡혀 권위와 명예만 앞세웠던 사람이었다. 

박윤선 목사는 가족들이 보기에 너무나 매정한 아버지였다. 저자는 아버지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이웃은커녕 가족과 사랑을 나누는 데도 무감각했다고 고발한다. 

"아버지의 독선적인 성품으로 제일 많이 고통당한 건 가장 가까이 있던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자녀들이 보는 데서 거의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구타했다. 이는 자녀들에게 무관심한 것보다 더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가 밖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그야말로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거룩한 어른으로 숭상받던 상황은 오빠들과 언니를 혼돈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그들의 인생을 비틀거리며 살아가게 만들었다." <목사의 딸>, 246쪽

"1954년 어머니의 소천 소식을 듣고 유학하던 네덜란드에서 귀국하신 아버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어머니를 비롯해 네 사람의 목숨을 무참하게 앗아 간 미군 운전병이 관대한 처분을 받도록 청원하는 일이었다. 남겨진 어린 자녀들에게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없으셨다. 또 도착한 다음 날 신학교에서 경건회 설교를 하고 강의를 시작하셨다. 사람들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극히 존경스러워하며 경건하다 평가했다. 가정과 가족에게는 철저히 무관심한 채 피의자 청년을 생각하여 사면 청원서를 냈는데, 하나님의 종이라는 신분에 걸맞은 행동이라 여기고 과시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같은 책, 280쪽

저자는 박윤선 목사의 신학적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에 팽배한 영육이원론, 샤머니즘적 기복주의와 율법주의는 박윤선 목사가 그 뿌리를 놓았다고 말한다. 1979년 박 목사가 세계 최초로 성경 전권을 주석한 주석집 역시 한글 번역 성경을 토대로 한 주석이기에, 주경 신학자로서 커다란 결함을 지닌다고 비판한다. 아버지의 품을 벗어난,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참복음과 참하나님을 경험했다고 서술한다.

"왜곡된 시선으로 쓰인 책", "한국교회에 도움 안 돼"

책을 접한 독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박 목사 역시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무리 딸이라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 등 책을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독자들뿐만이 아니다. 박 목사의 신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교계 인사들 역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합신대학교 석좌 교수인 박영선 목사(남포교회)는 칼럼을 통해 박윤선 목사를 적극 옹호했다. 박윤선 목사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고 했다. 그는 "가정 차원에서의 희생과 실패로 박 목사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 없다. 개인적으로 어떤 불명예와 부족함이 있은들 그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에 무슨 하등의 문제가 있겠느냐"며 박 목사를 변호했다.

박혜란 목사를 강하게 비판한 이도 있다. 안만수 목사(화평교회 원로)는 예장합신 전 총회장이자 박윤선 목사의 주석과 책을 출판하는 정암문서선교회 대표다. 안 목사는 박윤선 목사에 대한 박혜란 목사의 평가가 왜곡됐다고 말했다. 딸로서 입은 상처는 부인할 수 없지만, 교파를 초월해 한국교회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박 목사를 비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 이승구 교수는 박윤선 목사가 생전에 항상 죄인임을 고백했고, 누구보다도 권위주의와 기복주의를 배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안 목사는 "70세가 넘어서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철천지한이 맺힌 것처럼 이런 책을 쓰는 건 한국교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했다. 안 목사는 "박윤선 목사는 유교적 권위에 메인 분이 아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박 목사의 신학을 평가 절하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박윤선과의 만남>(영음사)을 집필하기 위해 손봉호 교수, 방지일 목사 등 100여 명의 교계 지도자들을 만났고, 그들이 말하는 박 목사는 남을 위해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리 딸이라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모든 부분을 알 순 없다고 했다. 

합신대학교 이승구 교수는 한국교회와 박윤선 목사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책이라고 말했다. 박 목사가 생전에 가장 강조한 것이 인간의 죄성이며, 어딜 가나 죄인임을 고백했다고 말했다. 책의 내용이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박윤선 목사는 권위주의와 기복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혜란 목사가 편향된 시각으로 아버지를 평가하다 보니 내용이 왜곡됐다. 박혜란 목사가 박윤선 목사의 신학에서 이탈한 모습이 책에서 드러나 안타깝다"고 했다.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 

<목사의 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평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의 부족한 모습을 보고, 후배 목사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딸이 공개한 아버지 박윤선의 삶과 신앙은 너무나 충격적이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율법주의 전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저자가 아픈 가정사를 털어놓았다고 평했다. 한국교회 안에 율법주의가 뿌리박혀 있고, 그 뿌리가 목회자들의 스승이라 존경받는 박윤선 목사에게 발견된다고 했다.

▲ 박혜란 씨는 2년 정도 향상교회에 출석했다. 저자를 아는 정주채 목사는 책에 대해 박윤선 목사의 한계를 비난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고신대학교 전 총장인 황창기 목사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려파는 개혁주의보다 근본주의에 가깝다. 성경을 규범주의 틀로만 해석한다. 그 배후에는 변형된 유교주의가 있다. 기독교가 유교주의로 변질됐다"고 했다. 역사적, 문화적 한계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한국교회가 규범주의와 유교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란 목사는 2년가량 향상교회에 출석한 적이 있다. 정주채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으로 박혜란 목사를 만나 보면 상처가 많은 분이란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계모와의 마찰, 어머니가 아버지께 폭행당하는 모습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책 집필을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묻어 놨던 이야기를 꺼내 놔야 한다는 생각에 집필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딸이 아버지를 비판하는 책을 쓴 것은 마음이 아프다. 훌륭한 분이 그런 연약함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참고하고, 우리 자신을 반성하는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한 면만 가지고 박 목사의 모든 업적을 가릴 수는 없다. 예전에는 철저한 가부장 사회였다. 박 목사 역시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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