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한국교회 장로와 그 선출 현실에 대해 살펴봤다. 성경의 모습과는 동떨어진 장로들과 교회의 모습에 독자도 힘들고 기자도 힘들었다.

물론 이런 모습만 있는 건 아니다. 장로 제도에 대한 논의는 한국교회에서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여러 가지 대안을 실천하고 있는 교회들과, 드러나지 않게 묵묵히 교인들을 섬기는 진짜 장로들을 소개하며 이번 기획을 마무리하려 한다.

▲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교인들을 살피고 섬기는 장로들이 많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장로제 폐단 극복하려 대안 만드는 교회들

'종신직'인 장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는 10여 년 전부터 지속돼 왔다. 이른바 '장로 임기제'는 장로 제도의 폐단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됐다. 장로의 직은 계속 유지하되, 당회에 참석해서 교회를 운영하는 시무 기간에 임기를 두자는 것이다.

1990년대 말,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교갱협)가 장로 임기제에 대해 많은 목사들이 찬성하고 있다는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고, 한국복음주의목회연구원도 교회 개혁을 위해 장로 임기제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신학연구소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장로 임기제를 찬성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참고로, 미국장로교는 1800년대 후반부터 장로 임기제를 시행해 왔다.

한국교회에서는 대부분 한 번 장로가 되면 정년(대부분 70세)까지 시무 기간이 보장된다. 임기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오랜 기간 교회를 운영하는 자리에 있다 보면 영향력이 비대해지게 되고, 한 사람에게 너무 큰 권한이 주어지면 앞서 보았던 해악들이 발생하기 쉽다고 주장했다. 또 큰 책임을 오랜 기간 지게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에게 봉사의 기회를 주고 그들과 함께 교회를 운영하는 것이 더 민주적이고 성경적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반대 여론도 있었다. 임기제를 하면 임기가 끝날 때 재신임 투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치 적자생존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재신임되지 않은 사람이 교회 안에서 가질 수 있는 심적인 부담감도 문제였다. 그동안 한국교회 몇몇 교단에서 목사·장로 임기제가 안건으로 올라오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교단 차원에서의 논의는 활발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이미 많은 교회들이 장로 임기제를 시행하고 있다. 향린공동체, 향상교회, 서울 송파구 주님의교회, 청주 주님의교회, 은혜샘물교회, 주민교회, 소망교회 등이 장로 임기제를 채택했다.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3년까지 장로의 시무 기간을 정했다. 대부분 6년 정도 하고 1년을 무조건 쉬게 하며 이후 교인들에게 재신임을 묻는다. 한 번에 9년, 13년 시무하는 경우, 연임할 수 없고 바로 은퇴하게 된다.

한편, 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100주년기념교회)는 '장로·권사 호칭제'를 사용한다. 교회가 정한 기준을 충족하면 누구나 장로가 될 수 있지만, 장로는 말 그대로 호칭일 뿐이다. 특별한 역할은 없다. 교회 운영은 상임위원회와 운영위원회가 한다. 위원 중 장로가 포함될 수는 있으나, 꼭 장로여야 위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0주년기념교회가 호칭제를 택한 이유 역시 장로 제도로 인한 폐단을 벗어나자는 취지다. 이재철 목사와 100주년기념교회는 한국교회에서 장로라는 직분이 계급화·서열화·권력화해 역기능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 목사는 2008년 장로·권사 호칭제를 채택하면서, "직분을 계급으로 인식하고 있는 한국교회의 병폐를 개선하는 좋은 선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로를 아예 두지 않고 운영위원회로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경우도 많다. 부천 예인교회는 임기 1년에 한 번만 연임 가능한 운영위원회로 교회를 이끌어 간다. 정성규 담임목사는 "원래 당회는 교회를 위해 '일하는' 기구인데, 기성 교회를 보면 당회는 '감독·지시·간섭'하고 실제 일은 집사나 일반 교인들이 한다. 일하는 사람이 의사 결정까지 해야 한다"며 "종신직 장로 제도는 옳지 않다고 본다. 교회 일은 돌아가며 해야 한다는 의견에 교인들도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위는 내려놓고, 책임과 봉사 짊어진 장로들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는 장로 제도의 역기능을 줄이고 사전 차단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이런 노력으로 장로 때문에 일어나는 단점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겠으나, 결국 장로 스스로 특권 의식을 내려놓지 않으면 아무리 제도를 고친다 한들 병폐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뉴스앤조이>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교회 안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감당하는 장로들도 취재했다.

기자는 국제장로교(IPC)를 취재하기 위해 IPC 소속인 광주 ㅅ교회 ㅂ 목사에게 연락했다. IPC는 철저하게 성경에 입각해 목사도 장로로 안수받는다. 목사로 활동할 때는 호칭이 '목사'이지만, 은퇴하면 '장로'가 된다. IPC 소속인 김북경 장로는 영국에서 한인 교회를 목회하다가 은퇴한 후, 목사에서 장로가 되었다. (관련 기사: 목사에서 장로가 된 이유)

ㅂ 목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ㅅ교회 장로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교회의 제도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ㅅ교회는 장로도 당회장을 한다. 임기 2년으로 당회에서 투표로 결정한다. 교회에는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돈이 많아야 장로가 된다는 인식이 뿌리내릴 곳이 없다. 모든 직책을 임기 2년으로 해서 교인들이 돌아가며 교회 일을 한다. 헌금은 무기명이 기본이고, 이름을 써도 재정을 관리하는 3명만 알 수 있게 했다. ㅂ 목사는 "교회 올 때 넥타이를 매고 오지 말라고 한다. 나도 넥타이 안 한다. 사회적 배경을 모두 내려놓고 오라는 뜻이다. 우리가 권장하는 복장은 '아이를 안을 수 있는' 옷이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ㅊ 장로를 소개받았다. ㅊ 장로는 ㅅ교회 현 당회장이다. 그는 원래 대표적인 보수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에서 장로 안수를 받았다. 당회장을 장로가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ㅂ 목사에게 교육을 받고 기존에 가치관이 많이 깨졌다. 당회장도 충분히 돌아가면서 할 수 있고, 어느 정도 교회 운영에 관여했으면 내려놓아야 한다는 의식이 생겼다.

ㅊ 장로는 당회장이지만 권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하나님 앞에서는 누구나 다 평등한 자녀이니 장로라고 구분할 것도 없고 특별한 대우를 받을 것도 없다고 말했다. ㅅ교회는 오히려 교인들이 얘기하고 있으면 장로들이 끼워 달라고 하는 분위기라고 했다. 장로직에 미련을 가지지도 않았다. 자신이 장로를 하면서 교회를 위해 봉사하며 신앙이 깊어지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빨리 다음 세대에 주고 싶어했다.

서울 중구에 있는 ㅍ교회 ㄱ 장로 역시 '탈권위'적인 모습이었다. ㄱ 장로는 교회가 갈등을 겪고 담임목사가 여러 명 바뀔 때에도, 집사 신분으로 일을 도맡아 하며 묵묵히 교회를 지켜 왔다. 몇 번이나 고사하다가 작년에 장로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교인들이 장로라고 대접해 주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라는 생각에 부끄럽다며, 지금이라도 장로직을 벗고 싶다고 했다. 장로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교회를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서울 용산구 ㅎ교회에서는 장로 전에 일반 청년을 먼저 접촉했다. 교회 장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 달라고 했다. 그는 교회가 가족 같은 분위기라며 장로들이 자신을 아들처럼 챙겨 준다고 했다. ㅎ교회 소그룹 모임에는 전 세대가 고루 섞여 있다. 모임의 장은 청년인데, 나이 많은 장로들도 이들을 인정해 주고 미숙한 부분이 있더라도 참고 격려해 준다. 장로라고 멀찍이 서서 지시만 하지 않고, 청소든 설거지든 함께 노는 것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ㅎ교회 ㅇ 장로도 만났다. 잠깐 얘기를 나눌 수 있냐고 했더니, 그는 자신이 대수롭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할 말이 없을 것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장로의 역할을 묻는 기자에게, ㅇ 장로는 "교인들 섬기고 전도하고 그러는 거지 뭐"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입에서는 '봉사'와 '책임'이라는 말이 많이 나왔다. 봉사도 많이 하고 책임도 많이 지되, 다른 교인들과 함께 일하고 함께 먹는 게 '장로'라고 했다.

경기 평택에 있는 ㄴ교회는 35년의 전통을 가진 중형 교회다. 규모로 봐서는 예배당 청소 등을 외주 업체에 맡길 만도 한데, 교회는 그러지 않았다. 교인들이 청소뿐 아니라 새벽 기도 차량 운행, 식당 봉사, 주차 안내 등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장로들이 만들었다. 장로가 뒷짐 지고 서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일선에 섰다. 교인들은 장로라면 당연히 저렇게 봉사해야 하는 줄 알고 있고, 실제로 안수집사들이 장로가 되어 봉사와 섬김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기자는 ㄴ교회 ㅈ 장로에게 35년간 이런 문화가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다. 그는 "장로들이 섬기는 모습을 교회에서 계속 봐 왔기 때문인 것 같다"고 답했다.

ㅈ 장로는 ㄴ교회 장로들에게 권위 의식은 없다고 덧붙였다. 교회 안에 대학교수 등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은 사람들이 장로가 된다고 했다.

당연한 것이 기사가 되는 시대

ㄴ교회 ㅈ 장로는 <뉴스앤조이>에 연락하기까지 많이 망설였다고 했다.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였지만, 그가 망설였던 이유는 "이런 게 기사가 되느냐"는 부분이었다. 장로가 교인들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마치 특별한 일처럼 보이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연재 기사를 보면서 별의별 장로가 다 있다는 걸 알았고, 답답한 마음에 염치를 무릅쓰고 자기 교회를 소개한 것이다.

그는 '이런 것도 기사가 되는 시대인가'라는 씁쓸한 마음이라고 털어놨다. 기자도 그의 말을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사회나 교회나 상식이 이슈가 되는 시대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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