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오전 7시 55분께, 주홍색 조끼를 입은 300여 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이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을 둘러쌌다. 이들 뒤에는 굴삭기 3대가 기계음을 거칠게 내고 있었다. 강남구청 주택과 조경태 주거정비팀장이 확성기로 행정대집행을 계고하자, 이들은 빠르게 건물을 허물기 시작했다.

구룡마을 주민들이 저지했다. 주민자치회관 안에서 100여 명의 주민들이 서로 어깨를 걸치고 버텼다. 이들은 전날 밤부터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용역업체 직원들은 이들의 팔과 다리를 붙잡고 잡아당겼다. 젊은 용역 직원들은 평균 연령대가 50대인 주민들을 한 사람씩 건물 밖으로 끌어냈다. 

▲ 강남구청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구룡마을 주민들의 접근을 저지하고 있다. 주민들은 법원의 '행정대집행 처분 중단' 판결을 근거로 철거 중단을 요구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강남구청은 이날 구룡마을 주민자치회관에 행정대집행을 진행했다. 주민자치회관이 철거되면서 작년 11월에 화재로 집을 잃은 구룡마을 이재민 세 가구는 다시 보금자리를 잃었다. 이들은 서울시와 강남구청에서 제공하는 임대 주택에 이주하지 못해, 화재가 났던 때부터 지금까지 주민자치회관에서 숙식을 해결해 왔다. 임대료를 낼 형편이 안됐고, 생활권이 강남이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구룡마을 사람들, 집도 타고 속도 탄다)

임시 대피소를 잃은 이들은 한겨울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이다. 주민자치회 진용미 총무는 "주민들이 며칠간 돌아가면서 방을 내줄 계획이다. 하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도를 찾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재민들에게는 행정대집행이 처음 겪는 일이 아니다. 강남구청은 지난 1월 12일 이재민들이 사용하는 무료 급식소와 화재로 전소된 임마누엘순복음교회(이병주 목사)의 임시 예배당을 강제로 철거한 바 있다.

강남구청 주택과는 주민들이 주민자치회관을 본래 허가 목적(농·수산물 거래 가설 점포)과 다른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철거했다고 했다.

하지만 주민자치회는 지난 5년 동안 농·수산물 직거래장를 비롯해 이재민 임시 대피소와 주민자치회 사무실 용도로 자치회관을 이용해 왔다고 했다. 작년 7월 구룡마을 3지구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이재민 다섯 가구가 회관을 사용했고, 2011년 수해가 크게 났을 때도 약 백 가구가 한 달 동안 회관에서 지냈다. 
 

▲ 작년 11월 주민자치회관의 모습이다(사진 위). 5년 동안 구룡마을 지켜 왔지만 이제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서졌다(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박요셉

법원, 행정대집행 중단 지시

이번 행정대집행은 작년 12월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강남구청은 지난해 12월 16일 주민자치회관의 존치 기한을 12월 31일 이후로 연장할 수 없다며 주민자치회에 건물을 비우라고 통보했다. 1월 5일에는 건물주에게 주민자치회관을 2월 4일까지 자진 철거하라고 시정 명령 및 대집행 계고 공문을 발송했다.

건물주 구모(주)는 이에 맞서 지난 1월 강남구청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행정대집행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그런데 강남구청은 2월 5일 주민자치회에 주민자치회관을 철거하겠다는 내용의 영장을 보낸 뒤, 다음 날 행정대집행을 속행했다. 행정대집행 계고 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인데 집행을 강행한 것이다. 더군다나 이날은 서울행정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날이었다.

서울행정법원은 행정대집행 계고 처분을 2월 13일까지 잠정 중단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강남구청 측이 2월 6일까지 이번 소송에 대한 관련 자료를 법원에 제출하겠다고 답변했지만, 5일 대집행 영장을 발부하고 다음 날 새벽에 대집행을 개시한 것은 신뢰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했다.

강남구청의 철거 작업은 오전 10시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난 뒤 1시간 반이 지나서야 중지됐다. 주민자치회관은 벽이 모두 벗겨져 뼈대를 흉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주민들은 강남구청이 법원의 판결이 나기 전에 주민자치회관을 철거하려고 집행을 강행했다고 했다. 18년 동안 구룡마을에서 거주한 김옥임 씨(59)는 "오늘 판결이 나기 때문에 행정대집행을 2시간만 연기해 달라고 구청에 건의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민들이 힘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짓밟히는 게 속상하다"고 했다.
 

▲ 최희성 씨가 법원의 '행정대집행 처분 잠정 중단' 판결 결과를 기자들에게 알리고 있다. 최 씨는 독서 모임을 같이하는 기독교인들과 전날 밤부터 마을 주민들과 자치회관을 지켰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예수 믿는 사람들이 주민들 위해 기도해 주길"

구룡마을 철거 현장에는 젊은 기독교인들이 마을 주민들을 돕고 있었다. 이들은 철거 작업이 끝나자 폐허로 변한 건물 앞에서 주민들과 얼싸안고 울었다. 가톨릭대학교 최희성(26) 씨는 주민들에게 "여러분, 우리는 지지 않았습니다. 서울행정법원이 강남구청의 행정대집행을 중지하라고 판결을 내렸습니다"고 말했다.

최 씨는 독서 모임을 같이 하는 기독교인들과 함께 지난 5일 구룡마을을 찾았다. 주민자치회에서 행정대집행이 곧 진행될지 모른다는 전화를 받고 정신없이 달려온 것이다. 이들은 동틀 때까지 주민들과 함께 행정대집행을 대비했다.

젊은 기독교인들이 마을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된 건 <뉴스앤조이> 기사를 통해서였다. 화재로 교회와 집을 잃은 이병주 목사(임마누엘순복음교회)의 소식을 듣고 도움을 주고 싶어 지난 1월 20일 구룡마을을 처음 방문한 게 계기가 되었다. (관련 기사: 구룡마을 예배당 철거, "돈 없고 힘없는 게 죄다")

최 씨는 "힘들고 아픈 사람들을 보며 돕고 싶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제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졌어요. 앞으로 어떻게 마을 사람들을 도울지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고 했다.

이병주 목사는 최 씨와 같이 기독교인들이 마을에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이 씨는 "구룡마을은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인 데다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번 무료 급식소와 예배당이 철거된 이후, 여러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주민자치회관 철거로 더 큰 충격을 받게 됐습니다. 우리들이 이번 상처를 치유하고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여러 교회와 예수 믿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길 바랍니다"고 했다.
 

▲ 구룡마을 이병주 목사는, "구룡마을은 가난하고 소외된 지역인 데다가,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을 위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길 바랍니다"고 했다. 사진은 구룡마을 전경.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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