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일 아침, IS(이슬람국가)가 억류하고 있던 일본인 고토 켄지(後藤健二) 씨를 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고토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전 세계 분쟁 지역을 돌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을 취재해 왔다. (관련 기사: IS가 '참수' 겁박한 일본인은 독실한 기독교인) 반복된 IS의 참수에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있다.

고토는 언론인의 꿈을 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졸업 후, 일본으로 돌아와 다큐멘터리 등의 TV 프로그램 제작자로 활동하다 독립 통신사인 '인디펜던트프레스'를 세웠다. 그는 홀로 시에라리온‧르완다‧시리아‧아프가니스탄 등을 누비며 분쟁 지역의 아이들 이야기를 주로 보도했다. 찍은 영상과 사진들을 NHK‧아사히TV 등 주요 방송사에 제공했다.

고토는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주력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분쟁 지역에서 고통받는 아이들의 상황에 주목했다. 일본에 머물 때는 각 지역을 돌며 평화 교육과 아동 인권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Youtube 동영상 갈무리)

고토의 눈길을 끄는 이들은 어려운 환경에 처한 전 세계의 아이들이었다.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는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 4년 전부터 내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시리아를 오가면서, 아이들의 눈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알리기 위해 힘써 왔다.

영상뿐만 아니라 틈틈이 책도 집필했다. <다이아몬드보다 평화를 원한다 ― 어린 병사 무리아의 고백>은 서아프리카의 오랜 내전 국가 시에라리온에서 소년병으로 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난 소녀들의 이야기는 <혹시 학교에 갈 수 있다면>이라는 제목으로 펴냈다.

고토는 기독교인이지만 이슬람 사람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그는 SNS에 "눈을 감고, 가만히 참는다. 화가 난다고 성을 낸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것은 기도에 가깝다. 증오는 사람의 일이 아니고, 심판은 신의 영역이다. ― 그렇게 가르쳐 준 것은 아랍의 형제들이었다"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전쟁의 참상을 알리는 것이 그가 한 활동의 전부는 아니었다. <도쿄신문>은 고토가 일본에 머물 때, 평화와 아동 인권의 중요성을 강연하러 다녔다고 전했다. 그는 분쟁 지역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어린이‧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을 전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2005년부터 매년 5월이 되면, 그는 도쿄 도 세타가야 구의 기독교 학교인 타마가와성학원에서 중학교 3학년에게 평화를 주제로 수업했다. 고토가 IS에 억류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로 이 학교의 학생 700명은 매일 아침 그를 위해 기도했다. 참수 소식이 전해진 후 학교는 홈페이지에 이런 글을 남기며 그를 추모했다.

"고토는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해 주셨습니다. 아무리 비참한 현실에 있다 해도 분노와 증오를 부풀릴 것이 아니라, 사실을 사실로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평화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그 의미를 되묻고 싶습니다."

그가 참수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 2월 1일, 고토의 아내 린코는 프리랜서 언론인 지원 단체인 로리펙트러스트(Rory Peck Trust)에 다시 한 번 글을 올렸다. "가족들의 슬픔이 크다. 우리는, 두 딸의 아버지이며 한 아내의 남편이자 부모의 사랑스러운 아들을 잃었다. 한편으로는 분쟁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전하기 위해 힘쓴 남편의 삶이 자랑스럽다"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1일, 그의 어머니 이시도 준코도 기자회견을 했다. 아들 켄지는 전쟁 없는 세상을 꿈꿨고 분쟁과 가난으로부터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서 일했다고 했다. 이시도 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말을 잇지 못하다가도 "슬픔이 증오의 사슬을 만들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다.

인터넷에서도 그를 추모하고 있다. BBC 기자 제임스 롱맨(James Longman)은 자신의 SNS에 고토의 사진을 올렸다. 그는 IS가 고토를 참수하는 영상 대신, 살아생전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공유하자고 했다. (제임스 롱맨 트위터 갈무리)

고토를 위해 기도하던 일본기독교단 카나자와교회(日本基督教団金沢教会)의 교인들은 주일예배 중에 비보를 들었다. 이노카와(井ノ川) 목사는 "IS는 고토를 통제하려 했지만 그의 영혼은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앞서 <주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IS는 종교 근본주의에 의거한 테러 단체며, 인간의 주장을 하나님 위에 두려는 그들의 생각은 본래 이슬람교의 가치와 맞지 않다고 했다.

인터넷상에서도, 남달랐던 고토의 삶을 추모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영국 한 언론인은 자신의 SNS 계정에 고토가 살아생전 시리아 북부 알레포의 아이들과 웃으면서 대화하고 있는 사진을 올렸다. 그는 IS가 올린 고토 켄지의 참수 영상 대신에 그가 활동하던 사진을 공유하자고 제안했다. 약 1만 5,000명이 고토를 기리는 의미에서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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