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명성교회는 전 재정장로의 자살 이후 교회 안팎으로 비자금 의혹에 시달렸다. 여러 언론들은 이를 앞다퉈 보도했다. 그러자, 교회는 각 언론사를 대상으로 정정 보도와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나섰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1월 27일 오전 10시 30분, 언론중재위원회에 출석했다. 조정은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안 되어서 끝났다. 따뜻한 커피 한 잔 들고 들어갔는데 식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과는 불성립.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는, 자살한 명성교회 장로 관련 기사를 무조건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반론은 얼마든지 수용하지만 삭제는 안 한다고 했다. 교회와 김 목사 대리인인 법무법인 로고스는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소송 여부와 상관없이 반론은 얼마든지 수용한다고 했다.

기사 내용에 대한 대화나 조정은 일체 없었다. 20년 가까이 언론중재위원회를 수없이 들락거렸지만, 이번처럼 간결하고 단호하고 재론의 여지 없이 깔끔하게 불성립 결론에 도달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피차 물러설 의사가 조금도 없었던 것이다.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는 처음에는 정정보도와 5억 원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나중에는 기사를 삭제하면 두 가지 다 철회하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가시가 잔뜩 박힌 채찍을 휘둘러 오금을 저리게 만든 다음 가죽으로 만든 채찍을 얼굴 앞에 들이대어서 무릎 꿇도록 만들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는, 김 목사의 비자금 의혹은 사실무근이며, 장로의 죽음도 이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뉴스앤조이> 기사가 허위라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 가장 난감한 부분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우리가 뭐라고 그랬나?"이다. 우리는 그런 주장이나 의혹 제기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것은 장로의 유언장 내용과 교회의 처신이었다.

박 장로는 6월 14일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들, 동료 장로들, 김삼환 목사 등에게 세 통의 유서를 남겼다.

고인은 가족들에게 "은행예금 관계 제대로 정리를 안 해서 목사님께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죽음으로 대신합니다. (절대 횡령이나 유용은 하지 않았습니다)"고 했다. 동료 장로들에게도 "절대 횡령이나 유용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고 똑같은 말을 남겼다. 김삼환 목사에게는 "무기력한 증상으로 변명만 하고 하나도 정리를 못 합니다. 마지막으로 떠나면서 횡령이나 유용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중략) 목사님, 사모님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누가 되지 않아야 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죽음으로 사죄합니다"고 했다.

"절대 횡령이나 유용은 하지 않았습니다." 세 통의 유서에서 박 장로가 일관되게 남긴 말이다. 고인은 담임인 김 목사에게 '죽음으로 사죄한다'는 말을 남겼다. <뉴스앤조이>가 횡령이니 유용이니 하는 의혹을 퍼뜨린 것이 아니라, 유서 안에 뭔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자기 목숨을 스스로 끊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극심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다는 추정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내용이다.

▲ 명성교회는 언론 조정 신청서를 통해 유서의 일부 내용을 공개했다. 박 장로는 유서에서 "횡령이나 유용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으로 사죄한다" 등의 말을 남겼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또 비자금 문제는 <뉴스앤조이>가 제기한 것이 아니다. 그 전에 이미 교회 안에서 그런 말들이 번졌다.

당시 명성교회 교인들 사이에서는 고인의 자살 배경을 두고 여러 의혹이 나돌았다. 사건을 취재했던 CBS 기자는 복수의 장로들에게 똑같은 말을 들었다고 했다. 고인이 800억 원 상당의 적립금을 관리해 왔고, 최근 재정 업무를 다른 장로에게 인계하는 과정에서 일부 자료를 분실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이다.

의혹이 확산되자 교회는 6월 25일 긴급 당회를 열어서, 박 장로가 관리한 자금은 비자금이 아니라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적립한 이월금이라고 해명했다. 교회 자금의 조성·관리·집행 등 모든 절차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위 비자금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로가 비자금을 반환하라는 등의 압박을 받은 일도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박 장로가 신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우울증까지 겹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는 교회 안에 떠도는 의혹, 이에 대한 교회의 설명 내용을 그대로 실었다.

교회는 장로의 죽음과 관련한 의혹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원인을 제공했다. 고인의 시신이 발견된 다음 날, 교회는 저녁 예배 광고 시간에 고인의 부고를 잠깐 언급했다. 정확한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6월 17일 김삼환 목사가 집례한 발인 예배 때에는 고인의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했다.

재정을 담당한 장로가 심한 압박감을 느껴서 자살했다. 그런데 교회는 심장마비라고 했다. 유언장을 보면 횡령도 유용도 안 했지만, 담임목사에게 죄송하고 죽음으로 사죄한다고 했다. 교회 안에 의혹이 퍼졌고, 교회는 이를 해명했다.

<뉴스앤조이>는 이러한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도했다. 도대체 왜, 무엇을 삭제해야 할까.

▲ 1월 27일 언론중재위원회는 <뉴스앤조이> 외에도 여러 언론사를 대상으로 심리했다. 명성교회는 최근 언론사 8곳을 대상으로 언론 조정을 신청했다고 알려졌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뉴스앤조이> 외에 인터넷 언론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 예장합동 기관지 <기독신문>도 함께 조정 대상이었다. 이들과의 조정 결과도 모두 불성립이다. 몇 개 언론사들은 미리 알아서 자진 삭제하거나 이번에 삭제 요구를 받아들였다.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이 결렬되었기 때문에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는 공언한 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높다. 소송 대상이 될 언론사들 역시 이참에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함께 대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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