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 릴라 알콘(Leelah Alcorn)이 죽었다. 작년 12월 28일, 릴라는 미국 오하이오 주의 한적한 도로를 달리던 큰 트럭에 몸을 던져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일간지들은 그녀의 죽음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10대 청소년의 죽음에 왜 언론이 주목하는 것일까.

릴라는 죽기 전, 자신의 소셜 미디어 계정에 유서를 남겼다. 그녀의 유서에는 우울증의 징후들이 보였다. 릴라는 현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으며 살아 봐야 자신의 인생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앞으로 내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 내가 유서에서 하고 싶은 주요 이야기다. 또 내가 자살을 택하게 된 이유"라고 했다.

▲ 소녀가 되고 싶었던 소년, 릴라 알콘(Leelah Alcorn). 그녀는 기독교인 부모가 성을 바꾸는 것을 인정하지 않자 실망한 나머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소셜 미디어 계정에 남긴 유서에서 그녀는 “앞으로 절대 행복해 질 수 없을 것”이라고 자살 이유를 밝혔다. 미국 언론은 물론이고 전 세계 언론이 릴라의 죽음을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파리 마치 관련 기사 갈무리)

릴라는 단순한 10대 청소년이 아니었다. 릴라의 부모는 그를 "조쉬(조슈아의 애칭)"라고 불렀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였다. 다만 소녀가 되고 싶은 소년이었다. 릴라는 여성이 되고 싶은 욕구를 느꼈을 때를 유서에서 설명했다.

"나는 늘 남자아이의 몸에 갇힌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4살 때부터 그랬다. 그런 느낌을 정의하는 단어가 있는지 전혀 몰랐다. 남자가 여자가 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몰랐다. 아무에게도 나의 비밀을 알리지 않고 일부러 '남자다운' 일들을 했다. 정해진 틀 안에 맞춰 살려고 노력했다."

미국에 트랜스젠더는 많다.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하면 차별금지법 위반 혐의로 법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릴라가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사회가 아닌 가족의 반대 때문이었다.

릴라는 14살이 되던 해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녀는 뛸 듯이 기뻤다. 자신이 이상한 존재가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릴라는 그 길로 부모에게 달려가 자신은 여자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기독교인 부모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릴라의 가슴에 못을 밖았다. 엄마는 릴라에게 그런 욕구는 그저 지나가는 '단계'에 불과할 뿐이며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시는 분"이라고 했다.

독실한 기독교인 부모는 릴라를 다시 조쉬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기독교인이며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아이로 만들고 싶어했다. 우선 릴라가 학교에 가지 못하게 했다. 휴대폰을 해지하고 소셜 미디어 계정도 삭제했다. 릴라는 엄마가 자신을 친구들로부터 고립시키려 했다고 유서에 밝혔다.

부모는 정신 치료 특히 기독교식 상담 치료를 강요했다. 이성애자로의 '전향 치료(conversion therapy)'를 받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고 릴라는 회상했다. 게다가 릴라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전향 치료'는 그녀를 더 우울하게 만들 뿐이었다. 릴라가 기독교 상담가들에게서 들은 말이라고는 "너는 이기적이고 잘못되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한다"가 전부였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되고 싶었던 릴라는 낙담했고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남겨진 부모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이 여자가 되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릴라의 엄마 칼라 알콘(Carla Alcorn)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인위적인 성전환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조쉬가 커밍아웃한 후에도 그를 조건 없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어떤 일이 닥쳐도 아들을 사랑했다. 사람들이 내가 아들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아 줬으면 좋겠다. 그는 착한 아이였고, 좋은 소년이었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조쉬는 릴라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릴라는 자신이 죽음으로, 같은 처지에 있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을 돕길 바랐다. 사람들이 올해 자살한 트랜스젠더들의 수를 보며 잘못을 인식하고, 사회를 바로잡는 노력을 해 달라고 했다.

▲ 릴라의 죽음은 ‘전향 치료’에 대한 논쟁에 다시 한 번 불을 붙였다. 기독교계 상담가들이 주로 행해 왔던 ‘전향 치료’는 성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릇된 성 정체성을 탈피해 이성애자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전향 치료’의 핵심이다. 릴라는 기독교인 부모가 강요한 ‘전향 치료’를 싫어했다. 'change.org'에는 ‘전향 치료’를 금지하는 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change.org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 사회는 소녀의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릴라가 세상을 떠난 주 주말, 미국 곳곳에서 그녀의 죽음을 기리는 촛불 기도회가 열렸다. 1월 10일,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시의 한 극장에서는 릴라를 추모하는 콘서트가 개최되었다. 'change.org'라는 인터넷 사이트에서는 서명도 진행되고 있다. 또 다른 릴라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전향 치료' 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현재까지 약 31만 명이 서명했다.

기독교인 부모들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촉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데비 잭슨(Debi Jackson)은 트랜스젠더 자녀를 둔 엄마이자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부모들을 돕는 모임을 운영 중이다. 그녀는 기독교인 부모들에게 미국의 많은 교단과 교회들이 트랜스젠더 및 성 소수자에게 우호적인 사실을 알아 달라고 했다. 부모들이 나서서 자녀들을 더 이해하고 인정해 달라고 했다.

데비 잭슨은 '전향 치료'를 멈춰 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가는 치료임이 밝혀지고 있다. 우리 아이들은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인정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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