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교회 집사 출신 김용남 목사가 서울 논현동에 강남사랑의교회를 개척했다. 지난해 12월 20일 설립 감사 예배에서 사랑의교회 주연종 부목사가 설교를 하고, 오정현 목사는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죽을 각오로 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오늘 강남사랑의교회가 있게 해 준 하나님께 영광·찬양·감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축하) 영상 메시지를 보내 준 오정현 목사님과 설교해 준 주연종 목사님, 노회 여러 목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용팔이' 김용남 목사가 작년 12월 서울 논현동에 강남사랑의교회를 개척했다. 12월 20일 설립 감사 예배에는 사랑의교회 주연종 부목사를 포함해 예장백석 이경욱 사무총장, 임주완 동남노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는 영상 메시지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김용남 목사는 사랑의교회 집사 출신이다.

이날 김 목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충성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지역 복음화에 앞장서겠다면서 청중들에게 끊임없는 사랑과 기도를 부탁했다.

목사 안수받은 뒤 법정 구속

지난해 5월 24일, 김용남 목사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서대문 총회(함동근 총회장) 남부지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당시 김 목사는 기자와의 만남에서, 8월 서울 강남에 교회를 개척해 학교 폭력 예방 운동에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사랑의교회에서 난동을 피운 것은 진심으로 회개한다고 했다.

오정현 목사의 논문 표절 의혹으로 교회가 시끄럽던 지난 2013년 6월 30일. 당시 김용남 집사는 당회 간담회가 열리는 곳을 찾아가 경유를 뿌리며 소동을 일으켰다. 오 목사의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장로를 찾으며 "나는 혼자 자결하지 않는다. 여기서 다 죽일 것"이라며 위협했다. 이 일로 김 목사는 불구속 기소됐다. 2014년 5월 27일 법원은 김 목사에게 징역 5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정 구속되면서 교회 개척은 12월로 연기됐다. 김 목사는 구치소에서 70일간 지낸 다음, 240시간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세상으로 나왔다. <뉴스앤조이> 기자는 출소 이후 교회를 개척한 김 목사를 인터뷰하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강남사랑의교회 한 부목사는 "1월은 대심방 기간이라 담임목사님이 매우 바쁘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직접 가 보는 방법밖에 없다. 1월 14일 오전 10시 강남사랑의교회를 찾았다. 논현역에서 도보로 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교회는 중국 식당과 카페, 전기 회사가 입주해 있는 5층짜리 상가 빌딩에 있었다. 빌딩 2층 바깥 창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강남사랑의교회 이름이 걸려 있었고, 간판 아래에는 김용남 목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불이 반쯤 꺼진 2층 예배당에는 찬양이 흘러나왔다. 예배당 정면에는 황색 강대상이 놓여 있었고, 강대상 좌우로 드럼과 전자 피아노가 배치돼 있었다. 40평 정도 돼 보이는 공간에는 빨간 의자 100여 개가 놓여 있었다.

교회 관계자는 김 목사가 외출 중이라고 말했다. 허탕을 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김용남 목사가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작은 체구에 떡 벌어진 어깨, 특유의 콧수염이 눈에 띄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특수 목회"

▲강남사랑의교회 예배 시간표. 김 목사는 청소년 학교 폭력 예방, 교도소 사역 등 특수 목회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전도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이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추운 날씨 탓인지 몰라도 얼굴이 붉게 빛났다. 김 목사는 "교회가 안정이 된 다음 멋있게 정식 인터뷰를 하자"며 취재를 고사했지만, 한번 시작된 이야기는 멈추지 않고 1시간가량 이어졌다.

고 옥한흠 목사와 사랑의교회 영향을 받아 교회 이름을 '강남사랑의교회'로 지었다. 온전히 사랑을 베풀겠다는 의미로 정한 것인데, 서초동에 있는 사랑의교회와 헷갈리지 않게 강남을 붙였다. 김용남 목사는 "옥한흠 목사님을 가장 존경한다. 이분 때문에 지금까지 교회에 다니고 있다. 너무 일찍 돌아가셨는데, 하나님께 조금 섭섭하다"고 말했다.

2002년부터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김 목사는 성경을 붙잡고 살았다고 한다. 필사만 6번을 했는데, 7번째 쓸 때 사단이 벌어졌다. 오정현 목사의 박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터진 것이다. "1년 동안 힘들었다. 기도도 안 되고. 할 이야기가 많은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특정하지 않았지만, 논문 표절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김 목사는 말했다. <뉴스앤조이>가 그들의 편에 서서 편향된 보도를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목회를 꿈꾸는지 묻자,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목회를 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청소년 폭력 예방과 교도소 사역 등 특수 목회를 언급했다. 김 목사는 직접 경험한 당사자로서 누구보다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 줄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거의 나처럼 살아선 안 되잖아요. 세상은 아이들을 지켜 주지 못해요, 우리가 지켜 줘야지. 그런 일을 해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그 아이들의 심정을 얼마나 알겠어요. 목회자들 중에도 이 길을 걸은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처음엔 모든 게 낯선 법이다. '새삐리', '햇병아리', 신참과 새내기를 비유하는 말들이 종종 김 목사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는 직접 교회를 개척하고 막상 목회를 해 보니 장난이 아니라고 혀를 내둘렀다. 무엇보다 설교 준비가 벅차다고 했다. "목사가 주일 설교 한 번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요. 1주일 내내 쉴 수가 없습니다. 예배해야지, 전도해야지…."

▲김용남 목사는 2014년 5월 기하성 서대문 남부지방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안수받은 지 3일 만에 사랑의교회 경유 난동 사건으로 법정 구속됐다가 70일 만에 풀려났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강남이라는 노른자 땅 위에 교회를 개척할 수 있었던 비결(?)은 주변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족과 친구들이 적극 지원했다. 김 목사는 "하나님의 뜻이 있기 때문에 구구단도 못 외우는 '햇병아리'에게 교회를 허락하신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세상의 평가는 여전히 냉혹하다. 목사가 됐어도 깡패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신앙을 먼저 접한 김태촌, 조양은 씨 등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신앙을 통해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다고 고백했다. 간증도 수없이 했지만, 끝내 폭력·범죄와의 연은 끊지 못했다. 김 목사는 "실제로 '저 놈 언젠가 돌아가겠지', '네가 얼마나 가는지 보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면서 자신은 포기할 의향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흔들릴 때도 있겠지요. 내가 넘어지면 세상 사람의 웃음거리가 된다는 것을 잘 압니다. 흔들릴 때마다 주위 사람들 생각하며, 사탄과 악의 무리가 덤벼도 버틸 것입니다."

한편, 기하성 서대문 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김 목사는 예장백석으로 이명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냐고 묻는 말에, 그는 "다음 기회에 정리해 말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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