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최대 축일 중 하나인 성탄절, 교회는 이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화려한 성탄 조명과 장식, 그리고 예배를 통해 예수의 탄생을 기념한다. 예수는 온 누리에 복된 소식으로 왔지만, 우리 주변에는 성탄의 기쁨을 함께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언제나 그렇듯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약자들은 고통 속에 신음한다. 그들에게 성탄의 기쁨은 딴 세상 얘기다. 그들 곁으로 교회가 다가갔다.

▲ 광화문광장을 시작으로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고난함께)의 새벽송이 시작되었다. 서울 근교에서 장기 투쟁 중인 사업장 7곳을 선정해 돌았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촛불을 들고 농성장에 따뜻함을 더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고난 받는 노동자들과 함께한 새벽송

12월 24일 저녁 5시, 20명의 기독인이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고난받는이들과함께하는모임(고난함께)'이 주최하는 서울 근교 7곳의 장기 투쟁 농성장 새벽송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올해로 3회를 맞은 이 행사는 광화문광장에서 시작했다. 장애 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개선을 위해 싸우고 있는 장애인들이 모인 곳이다. 이어 평택의 쌍용차, 과천의 코오롱, 부평의 콜트콜텍, 목동 스타케미칼, 서울시청 앞 씨앤엠 고공 농성 현장을 거쳐 자정이 넘어서야 혜화동 재능교육장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기독인들의 방문에 농성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의 얼굴이 한결 밝아졌다. 방종운 콜트악기 지회장은 크리스마스 같은 날일수록 더 사회에서 고립된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날 관심 갖고 현장을 방문하는 기독인들이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재능교육의 유명자 지부장은 세 번이나 새벽송을 오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며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가장 힘들 때 함께해 준 기독인들이 있어서 싸움을 계속 이어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모임을 이끈 전남병 목사(선한이웃교회)는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가 다시 이 땅에 오신다면 큰 예배당이나 번쩍이는 트리 앞이 아닌, 이곳과 같은 고난의 현장에 오실 것이라며 노동자들을 위로했다.

▲ 12월 25일, 기독인들이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추운 날씨에도 어린아이부터 청장년까지 1000여 명의 기독인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예배했다. 숙연한 분위기였다. 기독인들은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했고, 유가족들은 그 약속을 지켜 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세월호 기억하는 기독인 1000여 명 안산 합동분향소 찾아

기독인의 발걸음은 안산으로 이어졌다. 12월 25일 열린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절 연합 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기독인들이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은 것이다.

예배는 오후 3시 30분에 시작했다. 바람이 세찬 궂은 날씨였지만 곳곳에 유모차들이 눈에 띄었다. 추운 날씨에도 어린아이부터 청장년까지 1000여 명의 기독인이 함께했다.

기쁨이 넘치는 성탄 예배의 현장이 아니었다. 그들은 숙연했다. 하나님에게 침몰 원인과 제대로 구조되지 않은 이유, 사건의 책임자들을 밝혀 달라고 했다. 답답한 유가족의 심정을 공감하며 진실 규명이 속히 이루어지길 간청했다.

메시지는 광화문광장에서 40일을 단식한 방인성 목사(함께여는교회)가 했다. 그는 "성탄절은 하나님이 거짓과 불의로 가득 찬 세상에 정의의 선물을 주신 날입니다. 고통 받는 유가족들이 하늘로부터 오는 희망으로 새 힘을 얻길 바랍니다"라고 했다.

예배를 마친 후, 기독인들은 분향소를 찾아가 조문했다. 9살, 5살이 된 두 아들과 함께 온 지평교회 김형우 씨는 이날 분향소를 처음 찾았다. 그는 아이들이 어려서 잘은 모르겠지만 중요한 시대적 사건을 잘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단원고 2학년 10반 김다영 양의 아버지 김현동 씨는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하는 '선한 사마리아인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던 따뜻하고 힘이 나는 시간이었어요. 진실을 밝히기 위한 우리의 처절한 노력은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은 기독인들이 고백한 '진실을 밝히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예배 후, 기독인들은 분향소를 찾았다. 그들은 단원고 학생들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눈물 흘렸다. 그리고 세월호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쪽방 사람들·노숙인과 성탄 기쁨 함께 누려요

성탄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보내는 교회도 있었다. 아침에 각자 교회에서 성탄 예배를 드린 몇몇 교회는 함께 인천의 한 판자촌을 찾았다. 이들은 괭이부리말 마을에서 함께 예배를 드리고 모아진 헌금과 후원금으로 노후한 주택을 수리하는 데 보탰다. 또 방배동의 '남은이 공동체'도 성탄 예배가 끝난 후 인근의 판자촌을 찾아 선물을 전해 주며 성탄의 기쁜 소식을 알렸다.

함께여는교회(방인성 목사)는 성탄 예배를 교회에서 드리지 않는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종로구 창신동의 등대교회(김양옥 목사)를 찾아 그곳 교인들과 함께 예배했다. 등대교회는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고 쪽방촌의 주민들을 섬기는 교회다. (관련 기사: 사랑은 일방적이어도 좋다)

좁은 골목 안 낡은 건물 2층에 위치한 예배당에는 100여 명의 사람이 모였다.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르는 찬양은 성탄의 기쁨을 나누기에 충분했다. 김양옥 목사는 "천한 말구유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우리 주님은 낮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함께여는교회 같이 건강한 교회와 함께 예배드릴 기회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등대교회 교인 중에는 술을 좋아하고 허름한 옷차림에 냄새가 난다고 인근 교회에서 상처받고 나온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런 기회를 통해 기존 교회에 가진 불신의 벽을 허물고 화해하는 차원에서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함께여는교회 교인들은 내복을 선물로 준비했고, 등대교회 교인들은 모두에게 직접 만든 자장면을 대접했다.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 마음이 따뜻해지는 성탄 예배였다.

▲ 함께여는교회(방인성 목사)는 동대문 등대교회를 찾아 성탄 예배를 함께 드렸다. 등대교회 김양옥 담임목사는 평소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예배 덕에 분위기가 더 좋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모이는 데 힘쓰지 않고 흩어지는 데 힘쓴 '특별한' 성탄 예배

성탄이라 더욱 쓸쓸한 건 꼭 교회 밖 이야기만은 아니다. 전국 5만여 교회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미자립 교회다. 성탄 전야 행사는 고사하고, 성탄 당일에도 교인이 없어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교회가 부지기수다. 그들과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누기 위해 이웃 교회가 나섰다.

서울특별시 양천구에 위치한 한 상가 교회. 예년 같았으면 20명가량의 교인이 모여 조촐한 성탄 예배를 드렸을 성탄 아침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달랐다. 50여 석 규모의 예배당은 젊은이들로 꽉 들어찼다. 예배당 옆 교회 식당에는 앳된 얼굴의 여성들이 맛깔난 음식이라도 만드는지 요리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새터교회를 시끄럽게 만든 장본인은 온누리교회(이재훈 목사)에서 온 청년들이었다.

온누리교회 청년들은 평소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1부 예배 후 본격적인 성탄 행사가 시작됐다. 새터교회 주일학교 아이들은 귀여운 율동으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어르신들은 손주의 재롱을 보는 듯 싱글벙글했다. 온누리교회 청년들은 3곡의 성탄 찬송을 준비했다. 한 곡 한 곡 끝날 때마다 새터교회 교인들은 큰 박수로 화답했다.

청년들이 준비한 건 찬송만이 아니었다. 예배 후에는 아침부터 준비한 떡국을 교인들과 함께 나눴다. 김이 몽실몽실 올라오는 떡국은 어르신들 입맛에도 맞는지, 다들 떡국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청년들은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교인들은 이렇게 찾아와 같이 예배하는 것도 감사한데 무슨 선물까지 준비했냐며 고마워했다. 새터교회 교인들은 온누리교회 청년들 때문에 성탄의 기쁨이 배가 됐다고 했다. 이렇게 사람들로 복작된 성탄절이 오랜만인 듯 새터교회 교인들은 식사 후에도 청년들과 한참 대화를 나눴다.

2004년 설립한 새터교회는 교인 90% 이상이 탈북자다. 새터교회 강철호 담임목사는 탈북자 중 많은 수가 경제 여건이 여의치 못해 성탄절에도 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또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과 달리, 새터민들은 성탄 문화에 익숙지 않다고 했다. 온누리교회 청년들 덕택에 성탄다운 성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온누리교회는 2009년부터 '크리스마스 블레싱'이란 행사를 진행했다. 청년부와 대학부 소속 교인들이 여름에 아웃리치를 떠났던 교회나 기관을 성탄 기간에 다시 방문하는 행사다. 노숙인, 탈북민,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 쪽방촌, 미자립 교회 등 어려운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세워진 전국의 시설과 교회가 그 대상이다. 2014년에는 65개 팀 1600여 명의 청년이 전국에 흩어져 성탄의 기쁨을 이웃과 함께 나눴다.

▲ 전국 5만여 교회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미자립 교회다. 성탄 전야 행사는 고사하고, 성탄 당일 예배도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을 위해 이웃 교회가 나섰다. 65개 팀, 1600여 명의 온누리교회 청년들은 전국에 흩어져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아름다운 섬김을 이어 가는 교회가 서울에만 있는 건 아니다. 부산 호산나교회(홍민기)는 성탄절 당일인 12월 25일, 2300여 명의 교인이 부산·경남 미자립 교회에 흩어져 성탄 예배를 드렸다. '따뜻한 동행'이라는 이름으로 2013년부터 시작한 행사다. 작년에는 107교회에 1200여 명의 교인이 흩어졌고, 올해에는 더 늘어나 180교회에 2300여 명의 교인이 동참했다. (관련 기사: 부산 호산나교회의 흩어져서 드린 성탄 예배)

호산나교회 교인들은 작은 교회를 섬기러 갔지만, 오히려 섬김을 받고 왔다. 두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처음 방문했을 때의 어색함은 없었다. 교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 교회에서 맛있는 식사를 준비한 곳도 많았다. 미자립 교회 교인들은 예수님의 생일에 많은 사람과 함께 예배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어떤 목사는 주보를 20장 이상 만든 건 처음이라며 아이처럼 신이 났다. 호산나교회는 내년에도 그리고 내후년에도 '따뜻한 동행'을 이어 갈 계획이다.

성탄을 맞아 어려운 이웃에게 다가간 교회는 많았다. 하지만 위로해 주고 보듬어 줘야 할 대상은 더 많았다. 교회가 오늘과 같이 이웃의 아픔에 공감하고 함께 울어 줄 수 있다면, 1년 365일 내내 성탄의 메시지는 온 누리에 끊이지 않을 것이다. 

▲ 호산나교회가 이날 흩어져 예배를 드린 곳은 부산 경남 지역에 있는 미자립 교회다.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이름하에 인적·물적으로 후원하는 교회들이다. 2013년 성탄절에 1200여 명의 교인들이 107곳의 교회로 흩어져 성탄 예배를 드렸다. 아름다운 동행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았고, 교회에 재정 후원을 하고 있다. 교인들 스스로 긍휼사역팀을 꾸려 한 달에 대여섯 교회를 돌며 사택·교회 수리를 지원하는 등 사역을 이어 왔다. (사진 제공 호산나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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