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등대에 나가서 남편에게 얘기해요. '여보, 나 왔어. 나 당신 기다리면서 팽목항에 있어.' 추운 줄 몰라요. 남편 생각에 취해 있으면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추운 줄을 몰라요."

 

▲ 세월호 실종자 양승진 교사 아내 유백형 씨는 팽목항에서 8개월째 기약 없이 남편을 기다린다. 그는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 따뜻한 곳, 하나님이 있는 곳으로 보내고 싶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세월호 실종자 양승진 교사(안산 단원고) 아내 유백형 씨(53)는 아직 진도 팽목항에 있다. 8개월째이다.

그는 참사 소식을 듣자마자 진도로 향했다. 그런데 구조자 명단에 남편의 이름이 없었다. 유백형 씨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가 깨어난 곳은 목포에 있는 한국병원 응급실이었다. 빨리 체육관에 돌아가야 했다. 그는 다시 응급차를 타고 진도체육관으로 갔다. 그 뒤로 진도를 떠난 적이 없다.

12월 20일, 기독인들이 팽목항을 찾았다. (관련 기사: 성탄 기뻐하는 기독인들, 인양 기다리는 팽목항으로) 기독인들이 실종자 가족과 함께하는 기도회 자리에 유백형 씨가 있었다.

노랑 목도리를 두른 그는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기도회 내내 열심히 찬송가를 따라 불렀다. 두 손을 꼭 모은 채 기도도 했다. 기도회가 끝난 후, 유백형 씨를 만났다. 그는 기독인들이 방문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먼 곳까지 일부러 찾아 주셔서 감사해요. 방문한 사람들이 훌쩍 돌아가면 쓸쓸한 마음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기독인들이 와서 기도해 주고 가는 날이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인터뷰는 그가 생활하는 이동식 주택에서 했다. 방 안에 들어서니 화초들이 눈에 띄었다. 노랑 리본들이 화초에 걸려 있었다.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매년 12월에는 남편과 집에서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했어요. 올해는 나 혼자 했네."

연말이 되면 남편 양승진 교사가 집에 케이크를 사 갔다. 그러면 온 가족이 모여 한해 반성도 하고 다음 해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올해 연말은 남편이 없다. 유백형 씨 혼자다. 딸(27)은 아버지처럼 교사가 되겠다고 임용고시 준비 중이고, 아들(25)은 대학교 4학년으로 취업 준비에 한창이다.

▲ 유백형 씨는 매년12월에 남편과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했다. 올해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 대신에 화초에 노란 리본을 달았다. 노란 리본에는 "여보 꼭 가족 품으로 돌아오세요", "여보 아내는 팽목항을 못 떠나고 있어요. 사랑해", "당신의 아들 딸이 아빠를 기다립니다"의 문구가 적혀 있다. 유백형 씨는 남편을 생각하며 돌에 글씨를 쓰기도 했다. 돌에는 "여보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어서 꼭 돌아와요", "내 남편 양승진 선생님 사랑해" 등이 적혀 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참사 후 8개월이 흘렀다. 유백형 씨는 이제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잊어 가는 것 같다고 했다. 유백형 씨에게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와 일상생활, 그동안의 신앙생활 등에 관해 이야기를 들었다.

- 정부의 실종자 수색 종료 후 실종자 가족 대부분은 안산으로 돌아간 것으로 안다. 아직 팽목항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7개월 동안 진도체육관에 있었어요. 체육관을 진도군에 비워 주면서 11월 20일 팽목항에 왔어요. 이젠 여기로 거처를 옮겨서 생활하고 있어요. 오늘이 딱 한 달 되네.

제가 집에 못 올라가는 이유는 남편을 아직 못 찾아서…. 남편을 찾았다면 여기에 무슨 미련이 있겠어요. 뭐가 좋다고 남아 있겠어요. 사실은 당장이라도 올라가고 싶어요.

그런데 세월호 배 안에 남편이 있다고 생각하니 발길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남편과 32년을 부부 인연으로 한 집에서 살았는데, 이젠 집에 가도 나 혼자 있어야 하니까.

올라갈 자신도 없고, 마음이 여기 그냥 바다에 있어요. 남편이 아직 바닷속에 있으니깐. 물론 나는 힘들어요. 바다를 바라보면. 그래도 안산에 올라가는 것보단 여기 남편 가까이에 있고 싶어요.

유가족들도 내려와요, 그들도 집에서 있기가 괴로우니깐. 안산에 올라간 실종자 가족들은 병원이나 친척집에 가서 있기도 해요. 그들이 자식 없는 빈집에서 밥을 해 먹겠어요. 반찬을 해 먹겠어요. 모두가 몸도 마음도 성하지 않아요.

- 유백형 씨도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 건강은 어떤지 궁금하다.

매일같이 낮이나 밤이나 잠자는 시간 빼고 남편과 한 집에서 같은 밥 먹고 살다가 이렇게 바람과 함께 구름과 함께…편히 잘 수도 없고 밤에도 벌떡벌떡 일어나요.

정상적인 이전의 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되다 보니깐 사람들과 말하는 것도 쉽지 않아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심리 선생님이 혼자 말하라고 해서 혼자 떠들곤 해요. 안 그러면 정신이 돌 수도 있다고 해서요. 정신과 약도 먹었어요. 갈수록 기억력은 감퇴하고 사람도 잘 못 알아봐요. 충격 받아서 그렇대요.

건강하던 남편이… 휴…하늘나라로…상상을 해 보세요. 학생들과 배를 타고 즐겁게 수학여행 가다가…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얼마나 괴로웠겠어요. 바닷물 마셔 가면서. 그 생각을 하면 밥이 안 넘어가요. 밥 먹고 싶은 생각도 없어요.

그런데 살아 있는 것이 뭐라고. 숨도 쉬고 먹어야 되고 이래야 하니. 휴… 매일 하루를 이러고 있어요. 멍하니. 아무것도 못 하고. 누가 책을 사다 주기도 했어요. 그런데 한 글자를 못 읽어요.

- 매일매일이 절망스러울 것 같다. 하루 중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인가.

무엇보다 아침이 제일 힘들어요. 저 혼자니까. 아침에 매일 보던 남편이 없으니까. 정말 매일 보던 얼굴을 딱 어느 순간 못 보니깐. '나 혼자구나'라는 생각에 힘들어요. 이제는 혼자 살아야 하니까.

304명이라는 사람이 다 죽었어요. 아무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차디찬 시신으로는 돌아왔어요. 그 사람들은 장례를 하고 이별을 했지만, 나는 마음이 찢어져요.

인양을 꼭 해서 남편을 반드시 찾았으면 좋겠어요.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서 좋은 곳으로 보내 줘야 마음에서 내려놓을 것 같아요. 정리가 안 돼요.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바다(바닷가) 끝까지 걸어가요. 멍한 상태로.

지금도 남편이 돌아올 것만 같아요. 제 마음에 남편은 출장을 간 것 같아요. '돌아오겠지'라는 마음이 여전히 있어요. 전 어제도 4월 16일, 오늘도 모레도 계속 4월 16일이에요. 계속 현재진행형이에요.

제발 뼈라도 찾고 싶어요. 내가 바닷속에 들어갈 수도 없고. 꼭 돌아왔으면. 꼭 배 안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인양을 해도 배 안에 남편이 없을까 봐 두려워요. 겁나고.

- 기도회 때 찬송가를 따라 부르던데, 기독인인가.

저는 절실한 신앙인은 아니에요. 그래도 어렸을 때는 할아버지가 장로님이셔서 성경책을 즐겨 봤어요. 할아버지의 두꺼운 성경책을 항상 머리맡에 두고 읽고 그랬어요. 그때 하도 봐서 지금도 안 잊어 먹어요. 찬송가도 새로운 곡은 잘 모르지만 웬만한 곡은 다 따라서 부를 수 있어요.

어렸을 때, 언니와 같이 교회에 가곤 했어요. 30리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갔어요. 아가씨 시절에도 마음이 힘들 때는 교회를 찾았어요. 열심히는 안 했어요. 그래도 항상 기도했어요. 결혼한 후에는 상황이 어떻게 되다 보니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는 못했어요. 직장을 다니다 보니깐. 그래도 일요일에는 교회를 빼먹지 않으려고 애썼죠.

남편은 같이 신앙생활은 안 했어요. 그래도 일요일이 되면 남편이 으레 "교회 가야지. 시간 됐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남편에게 "당신도 함께 가자"고 하면, "나는 아직은 됐어"라고 웃으며 말하곤 했어요.

- 참사 이후 신앙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유가족들이 더러 있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남편을 찾아서 장례라도 치렀으면 교회에 가서 열심히 신앙생활도 하고 싶은데. 지금은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에게 그래요. "하나님,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해 주지 않으시냐.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지 않으시나. 왜 내 남편은 못 찾아 주시냐."

그렇지만 하나님에게 원망은 없어요. 사람의 탐욕 때문에 모든 것이 이렇게 되었잖아요. 신앙이 있어서 힘을 얻어요. 신앙마저 없다면 견뎌 내기가 힘들 것 같아요.

매주 토요일 기다림의 버스가 오는 날이면 시민들과 함께 풍등을 날리는데 저도 20번은 날린 것 같아요. 남편이 돌아와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면서요.

여기 있으면서 불교도 가고 천주교도 갔어요. 불교 부스에 가서도 기도하고 천주교 부스에 가서도 수녀님들과 기도했어요. 어디라도 매달리고 싶어서요. 불교도 가고 천주교도 가는 것은 매달리기 위해서예요. 어디라도. 지금은 팽목항에 천주교 부스만 남아 있어요.

그래도 일요일에는 근처에 있는 교회를 다녀요. 팽목교회에요. 오전에 가서 찬양하고 목사님 말씀 듣고 그래요. 방에 가만히 있는 것보단 훨씬 좋아요. 마음이 평안해지니까요.

기독인들이 세월호를 잊지 말고 끝까지 힘을 합쳐서 함께 싸워 주면 좋겠어요. 후손들에게 대한민국이 바른 나라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유백형 씨가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그의 건강은 좋지 않다.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쑤시고 가슴이 답답하다. 잠도 잘 못 잔다. 남편이 바닷속에서 죽어 간 생각을 하면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을 찾을 때까지, 배가 인양될 때까지 계속 팽목항에 남아 있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유백형 씨는 팽목항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계속하고 있다. 남편을 찾을 때까지, 배가 인양될 때까지이다. 유백형 씨는 매일 밤 하나님에게 기도한다.

"하나님 아버지, 또 하루가 지났어요. 우리 남편은 오늘도 못 돌아왔네요. 배 속에서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어요. 꼭 인양을 해서 남편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게 해 주세요."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