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상이 상영됐다. 영상은 탑승 인원 476명 중 29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된 세월호 참사, 일본 식민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문창극 총리 후보의 발언,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에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장내는 이내 숙연해졌다. 자리한 50여 명의 사람은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영상만을 주시했다.

영상에 나온 세 사건은 2014년 한국 사회를 흔들어 놓았다. 교회도 그 여파를 비껴갈 수 없었다. 일본 식민 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문창극 후보의 발언과 일부 목사들의 세월호 사건에 대한 경솔한 설교는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교황 방문 때도 마찬가지였다. 섬김의 자세로 무장한 교황은 어딜 가나 인기 만점이었다. 하지만 근본주의 세력은 교황을 '적그리스도', '외식주의자'로 매도하며 대규모 반대 집회를 열었다.

▲ 2014년 교계가 주목한 이슈는 무엇일까.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강경민·김형국·박득훈·이문식·정현구 공동대표)가 2014년 주요 사회 사건을 회고하고 평가하는 포럼을 12월 18일 열었다. 문창극 사태와 세월호 참사, 교황 방한을 통해 드러난 시대의 현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비판한 후 함께 대안을 모색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사회의 마지막 버팀목은 교회…교회 안에서 정치·사회 문제 공부하고 토론해야

한국 사회가 교회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한국교회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2014년 한해 이슈를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강경민·김형국·박득훈·이문식·정현구 공동대표)이 12월 18일 서울영동교회에서 '2014년 한국 사회와 교회를 되돌아보다'라는 주제로 포럼을 개최했다. 문창극 사태와 세월호 참사, 교황 방한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비판했다.

포럼의 주최는 복음주의 진영이었지만, 발제자들은 외부 인사로 꾸려졌다. 정치·사회적 성찰을 주제로는 손석춘 교수(건국대)가, 목회·신학적 성찰에는 김경호 목사(들꽃향린교회)가 나섰다. 발제 후에는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와 남오성 목사(일산은혜교회 청년부)가 두 발제자의 분석과 대안을 한국교회 현실과 연결해 논평했다.

손석춘 교수는 세 사건을 꿰뚫고 있는 주제로 '규제 완화'를 꼽았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규제 완화가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고 했지만, 결국 돌아온 건 세월호 참사와 문창극 참극이었고 했다. 그는 대안적 역할을 해야 할 대학과 언론 그리고 지식인들이 경제성장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다. 생명과 평화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교회 역시 정권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자청한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프란치스코 신드롬'은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보여 준 구체적인 사례였다. 손 교수는 "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교황의 따끔한 비판은 대학과 언론이 제구실을 못할 때 민중이 기댈 마지막 곳은 종교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 줬다"고 했다. 한국교회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정치·사회를 학습하고 토론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손석춘 교수 발제문 바로 보기)

▲ 발제자로는 손석춘 교수와 김경호 목사가 나섰다. 손석춘 교수는 1988년에는 전국언론노조연맹을 만든 인물 중 한 명이다. <한겨레>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활동한 그는 현재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들꽃향린교회 담임을 맡고 있는 김경호 목사는 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 왼쪽이 손석춘 교수, 사진 오른쪽이 김경호 목사. ⓒ뉴스앤조이 장성현

김경호 목사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 황금만능주의에 사로잡힌 한국 사회의 모순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성급한 신학 작업과 가치판단으로 하나님을 욕보였다고 했다.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고통 받는 이들의 곁에서 조용히 위로하는 것이지, 어떤 것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문창극 사태는 고통의 자리에 함께하지 않은 제삼자가 범한 폭력에 불과하다고 했다.

한 줄기 빛도 보았다. 김 목사는 "광화문광장과 청운동에서 이어진 한국교회의 연합 기도회, 에큐메니컬 진영과 복음주의권의 연합 집회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단한 일"이라고 평했다. 신에 대한 관념 역시 '전능의 신, 초월의 신'에서 '공감의 신, 연대의 신'으로 변해야 한다고 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그들의 눈물을 지켜보는 기다림, 고통 받는 이들이 고통의 자리로 초대할 때 그들의 손을 잡아 주며 아파할 수 있는 신앙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경호 목사 발제문 바로 보기)

사회 문제는 교회 문제와 직결…선순환 구조 만들어 개교회 돕자

논평에 나선 김종희 대표는 공부와 실천과 연대를 강조했다. 그는 세 사건을 보면서 교회들이 이 문제를 놓고 어떻게 공부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맘몬이 개인과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세상에서 그 실체를 알 수 있도록 공부해야 하지만, 대부분 공부 모임이 여전히 내적 평안을 추구하는 경건 운동, 성경 지식 공부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아울러 교인들을 실천 현장으로 데리고 나와야 한다고 했다. 목사들만 움직이고 교인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실천과 공부가 상호작용을 해야 지속성이 담보된다고 했다.

연대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지성 운동을 펼치는 곳에서 신학 작업·실천 과제 등을 자료집으로 만들어 교인들에게 배부하고, 성서한국 등 현장에서 활동하는 그룹에 교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목회자들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남오성 목사는 김 목사가 언급한 신론의 전환에 주목했다. 초월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신 관념에서 공감의 신, 연대의 신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은 유대교의 하나님이나 이슬람의 하나님과는 다른, 인간의 고통에 공감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수님이 보여 주신 능력은 권력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섬김'으로부터 온다고 했다. 교회는 낮은 자의 발을 씻기신 이를 따르지만, 교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권력을 갖거나 높은 자리로 올라가려는 마음이 있어 전능의 하나님을 추구한다고 했다. 힘 대 힘으로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닌 비폭력과 평화의 방법을 가지고 폭력에 대항해야 한다고 했다.

▲ 발제자들의 발제 후에는 논평이 이어졌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사진 오른쪽)와 남오성 목사(일산은혜교회 청년부, 사진 왼쪽)가 두 발제자의 분석과 대안을 한국교회 현실과 연결해 논평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참석자들, "대통령 비판하면 교인들 떠나"…정치인들은 교회 눈치 보기 바빠

목사들이 사회참여를 주저하는 이유는 교인들에 대한 걱정 때문이었다. 남오성 목사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교회 주변에 추모 텐트를 설치했다. 이를 불편하게 여긴 장로 한 명이 교회를 떠났다. 사회문제가 터질 때마다 당회원이 줄어든다"고 했다. 고신 교단에 속한 한 목사는 세월호 연합 기도회에 참여하려고 했다. 하지만 교회 장로 한 명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결국 그 장로에게 허락을 받은 뒤에야 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다른 목회자들 역시 남의 얘기가 아닌 듯 쓴웃음을 지었다.

양진일 목사(가향공동체)는 한 가지 대안을 내놨다. 인문학 공부 모임을 제안했다. 전 교인을 대상으로 할 수 없으면, 청년부라도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세상의 구조적 문제, 역사의 흐름을 공부할 수 있다면 교인들의 의식이 바뀔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목사가 강대상에서 정치권과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세 사건 외에 주목해야 할 다른 사건은 없을까. 김주원 씨가 발제자들과 논평자들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다. 손 교수는 국정원 댓글 사건을 언급했다. 이 사건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라고 했다. 김 목사는 서북청년단 재창단 사건과 비선 실세들의 정치 개입 의혹으로 논란이 된 십상시 사건을 꼽았다.

남오성 목사는 목회자 납세 문제를 지적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납세에 반대해 법이 제정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정치인들이 입법을 꺼리는 상황이라고 했다. 정치인들이 교회 표를 의식해 목사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이게 어느 순간부터 관행으로 자리 잡았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꾸는 데 정치인들이 아무런 역할을 못 한다고 했다.

이날 포럼은 3시간 가까이 진행됐다. 참여자들 대부분은 신학생, 전도사, 목회자들이었다. 강단에서 사회참여를 부르짖을 때마다 교인들이 떠나 걱정이라는 웃지 못할 얘기를 꺼냈지만, 그들의 표정은 한층 밝아 보였다. 참석자들은, 사회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교회에서 어떤 실천을 해야 할지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 포럼을 찾았다고 했다. 발제를 통해 한 해 이슈를 분석할 수 있었고, 논평과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사고의 폭을 넓힐 기회였다고 평했다.

하지만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충일 전도사는 신학적 간극을 먼저 좁혀야 한다고 했다. 발제자들이 소위 복음주의권 인물이 아니고, 논평자들 역시 복음주의권에서도 급진적인 분들이라 자신과 같이 보수적 신앙을 갖고 있는 이들이 쉬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들어오고 배운 것은 종교와 정치의 철저한 분리였다고 했다. "인간은 악하다. 세상은 점점 더 악해진다. 구조를 바꿀 수 없다. 단지, 개인 구원에 힘써 사회를 복음화시켜야 한다고 배웠다. 사회구조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신학적 기반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 포럼 마지막 순서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목회자들은 교회 내에서 사회 이슈를 논하고, 시위 현장에도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 분란이 생길까 우려했다. 김종희 대표는 신앙 양심상 양보할 수 없는 문제는 교인들의 반발을 각오하고서라도 시행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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