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새 추운 겨울입니다. 참사 후 9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젠, 잊어야 할까요. 유가족은 두렵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요. 그들은 광화문광장,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팽목항에서 '아직은 잊지 말라'고 합니다. 사랑했던 교회가 그들의 편이 되어 주기를 여전히 기다립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뉴스앤조이> 입사 5개월 차, 아직 수습기자입니다. 지금도 출근 첫날이 생생합니다. 8월 4일 월요일이었습니다. 매주 월요일은 기자 전원이 모여 김종희 대표와 편집회의를 합니다. 그 날은 대표가 미국에 출장을 간 터라, 기자들끼리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칠 무렵, 선배 기자가 저에게 취재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세월호'라고 했습니다.

취재 및 카메라 교육을 30분 정도 받은 후, 생전 처음 만져 보는 DSLR 카메라를 챙겨 광화문광장 촛불 집회로 향했습니다. 현장에는 가수 김장훈 씨가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김장훈 씨가 그날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단식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김장훈 씨가 교회를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취재'가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무턱대고 김 씨를 찾아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저의 첫 기사가 '가수 김장훈 "교회 왜 가만히 있습니까"'입니다.

이후, 저는 세월호를 도맡아 취재하게 되었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붙박이를 하고, 노숙도 했습니다. 선배 기자는 저에게 '세월호 전문 기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되는 데 영향을 준 것 중 하나가 세월호였기 때문에, 취재하면서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한편 세월호를 취재하면서 매우 힘들기도 했습니다.

기독인 유가족을 인터뷰하면서 그 아픔은 더 커졌습니다.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고통을 느꼈습니다. 때론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의도치 않게 지인에게 짜증을 낼 때도 있었습니다. 인터뷰를 한 날이면, 몸이 늘어지고 기운이 없기도 했습니다. 진상 규명이라는 장벽 앞에 씨름하면서 신앙적 회의와 어려움을 느끼는 유가족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심리전문가는 저도 '간접 트라우마'를 겪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전처럼 매일 세월호 취재를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하지만 유가족은 여전히 고통스러워합니다. 잃어버린 자식이 그리워, 아이가 생전에 귀가하던 길을 밤마다 바라봅니다. 답답해합니다. 참사 후 9개월이 지났지만, 밝혀진 것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두렵다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잊히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합니다.

12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립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나는 연말도 다가옵니다. 바람은 더 세차지는데, 유가족은 오늘도 광화문광장에서 노숙합니다. 안산 정부합동분향소, 팽목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잊지 말라고 합니다. 기억해 달라고 합니다. 사랑했던 교회가 그들의 편이 되어 주기를 여전히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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