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이 드는 내가 좋다> /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지음 / 원마루 옮김 / 포이에마 펴냄 / 199쪽 / 1만 1000원

곱고 희던 그 손으로 넥타이를 매어 주던 때
어렴풋이 생각나오 여보 그때를 기억하오
큰딸 아이 결혼식 날 흘리던 눈물방울이
이제는 모두 말라 여보 그 눈물을 기억하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요즘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다. 김광석이 부른 '어느 60대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다. 이제 우리 나이로 쉰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40 하고도 몇 년을 목발을 짚고 다닌 터라 고관절을 비롯해 무릎, 팔꿈치,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그래서 이제 그나마 목발도 못 짚고 휠체어 신세를 진다. 눈은 침침해 돋보기를 끼지 않고는 타이핑도 못 한다. 잔글씨를 볼라치면 돋보기마저 벗고 눈을 책에 바짝 대야 한다. 기억력도 하루가 다르게 떨어진다. 무슨 얘기를 들어도 이내 까먹는다. 무슨 상품 이름, 간판 이름을 듣거나 보아도 보거나 들은 기억은 나는데 그 이름은 절대 살려 내지 못한다.

어찌 보면, 참 불쌍하고 처량하다. 그런데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내가 좋아하는 브루더호프공동체의 할아버지는 이런 "나이 드는 내가 좋다"고 하신다.

이 책은 원 제목이 Rich in Years: Finding Peace and Purpose in a Long Life이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나이 먹기: 장수하는 인생의 평화와 목적을 찾아' 정도 되겠다. 맞다. 요즘은 사람들이 참 오래 산다. 여든을 넘기고도 정정하신 우리 어머님 말씀이 그러셨다. 이제 일흔이 되신 어느 할머니가 노인정에 가셔서 자신의 나이가 일흔이라고 했더니, 어르신들이 "자네, 이제 돌 지났구먼!" 하셨단다.

그런데 오래 사는 게 좋기만 할까? 오래 사시는 분들 얘기를 들어 보면 그런 거 같지도 않다. 어느 분들 입에서는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안 죽고 사나 몰라. 그저 늙으면 죽어야지!"라는 한숨과 원망 섞인 탄식이 터져 나온다. 그럴 때면 내 가슴도 아리다.

우리는 날마다 죽음을 연습한다. 날마다 잠자리에 들며 죽음을 연습한다. 잠자리에 들었다가 익숙하지 않은 세상에서 눈을 뜨면 그게 죽은 거다. 그렇게 매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죽음을 연습하는데도, 죽음은 늘 낯설고 두렵다. 왜 그럴까? 누구나 잘 죽길 바라는데, 평화롭게 죽길 바라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왜 그럴까?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한다. 잘 죽는다는 말은 곧 잘 산다는 말이다. 그렇게 죽음과 삶은 잇닿아 있다. 죽음과 삶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맞닿아 있다. 그래서 죽음을 잘 준비하려면 잘 살아야 한다. 그러기에 잘 살다가 가는 분들의 죽음은 아름답다. 그러면 나이 들어 죽음을 잘 준비하고, 또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요한 크리스토프 아놀드 할아버지의 말을 들어 보자.

1.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살아온 날이 가시밭길이었던 비단길이었던 간에, 지금껏 인도하신 그분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날들을 값지게 사용하는 비결은 따로 있다. 지난날을 계속 후회하는 대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다."(43~44쪽)

2. 다른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게 약해진다. 몸도 마음도 기력도 모두 약해진다. 혼자 서기도 버겁다. 그러니 기대야 한다. 의지해야 한다. 도움을 청해야 한다.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사랑의 빚'을 지는 거다.

3. 지혜를 나누어야 한다. 위로를 나눠야 한다. 나이든 사람들의 가장 큰 자산은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이겠다. 오래 전부터 늘 하는 생각이 있다. 시골 동네를 다니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살아온 이야기, 그들의 신앙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내 삶에 얼마나 큰 감동이 될지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렌다.

"노인에게는 경험에서 얻은 지혜가 있다. 인생의 먼 길을 여행해 왔기 때문에 우리 앞에 놓인 길에 관한 지혜를 들려줄 수 있다. 우리가 막 배우려고 하는 걸 그들은 이미 삶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70쪽)

4.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누군가에 미움을 받고 누군가를 미워하며 세상을 떠나는 사람보다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떠나보내는 사람도 용서해야 하고, 떠나는 사람도 용서해야 한다. 너무 늦기 전에, 용서의 기회가 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 먼저 용서하고, 또 용서받아야 한다. 그게 부모든, 자식이든, 배우자든, 이웃이든, 형제든 상관없다. 용서받지 못한 자, 용서하지 못한 자로 죽는 것보다 비참한 게 있을까?

"내가 상처 입힌 사람과 화해하지 못하고 내게 상처 줬던 사람을 용서하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140쪽)

5. 내려놓길 연습해야 한다.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늘 정리 정돈하고, 짐이 가벼워야 한다. 나는 늘 집을 나설 때마다 책상을 가지런히 정리한다. 오늘 저녁에 내가 이 자리에 다시 돌아오지 못할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떠난 자리를 늘 가지런히 정리해 두려 노력한다. 세상을 떠날 준비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주민등록증에는 작은 스티커가 붙이고 다닌다. '각막 기증', '장기 기증', '시신 기증'을 알리는 스티커다.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모르지만, 내가 떠난 후에 내 시신이 땅에 묻히기보다 그 누군가에게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래서 아내에게 일러두었다. 내가 갑자기 죽거들랑 시간 정해서 교회에서 예배 한 번 드리는 걸로 끝내라고 말이다. 시신은 곧바로 기증하고 조문도 받지 말라고, 나중에 화장한 유골도 남기지 말라고….

20대 시절 나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혼자 살려고 작정했다.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랑하는 게 두려운 게 아니었다. 사랑하면 결혼할 테고, 그러면 아내가 생기고, 처가 식구들이 생기며, 자녀들이 생길 터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랑하는 이 사람들을 내가 떠나보내거나 내가 먼저 이들 곁을 떠나야 할 터였다. 나는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너무 싫었다.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았다. 그래서 혼자 살려고 작정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내도 있고, 자녀도 있다. 물론, 장모님도 계신다. 사랑하는 게 두렵지도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보내거나 사랑하는 사람들 곁을 먼저 떠날 일이 두렵지도 않다.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았다.

잔잔한 수필을 한 권 읽은 느낌이다. 인생을 나보다 곱절 가까이 살아온 어른들 곁에 앉아 내가 그 좋아하는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은 느낌이다. 대단한 사람들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이야기, 우리 삼촌과 고모와 이모의 이야기라서 좋다. 하지만 정말 힘든 사람들의 노년 이야기가 빠져 조금 아쉽기는 하다.

정말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다. 언젠가부터 자신에게 묻고 되묻는다. "왜 인생에 연습이 없을까?" 인생에 연습이 있다면, 지금껏 산 것은 연습 게임으로 치고, 다시 멋지게 본 게임을 뛰고 싶다. 하지만 어쩌랴 너도 알고 나도 알듯이, 인생에 연습이 없는 걸…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은 걸….

나는 오늘도 죽는 연습을 한다. 잘 죽기 위해 잘 살길 연습한다. 아,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전의우 / 목사·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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