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희년함께·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과 같은 개신교 단체들은 사회적 기업 희망살림과 함께 부채 탕감 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활발했던 초창기와 다르게 부채 탕감 운동은 널리 확산되지 않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부채 탕감 운동은 성경의 희년 정신과 사회적 이슈와 연계된 좋은 운동이다. 교회가 이 운동을 구체적으로 확산해 가야 한다."

지난 7월 21일 서울 명동의 열매나눔문화 지하 강당. 이날 열린 '2차 채권 소각 및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이문식 목사(광교산울교회)가 부채 탕감 운동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2시간 넘게 정종성 교수(백석대)와 제윤경 상임이사(희망살림)의 발제를 들었던 터라, 참석자들도 이 목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발제자는 각각 '부채 탕감의 성서적 근거와 교회의 역할', '부채 오늘의 현실'을 주제로 강의했다.

희년함께·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복교연)은 사회적 기업 희망살림과 함께 부채 탕감 운동의 일환으로 이번 행사를 주최했다. 이날 이들은 약 9억 7600만 원의 부채를 탕감했다고 발표했다. 이름 모를 채무자 99명의 빚이었다. (관련 기사 : 희망살림, 99명의 10억 빚 모두 탕감)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운동은 올해 4월 사회적 기업 희망살림에 의해 국내에서 최초로 시작되었다. 희년함께·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복교연) 등 개신교 단체들도 운동에 동참했다.

이들은 한 달 뒤 국회의사당 앞에서 '3차 채권 소각 및 희년 실천 주일 연합 예배'를 열었다. 예수살기·평화누리·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희년함께가 일 년에 한 번씩 여는 희년 실천 주일 연합 예배의 주제를, 올해에는 부채 탕감 운동으로 삼은 것이다.

박득훈 목사(새맘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최고 가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교회가 채무를 갚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빚을 탕감해 줘야 한다"고 설교했다. (관련 기사 : '부채 탕감' 선포한 희년 실천 주일)

희년함께·복교연과 같은 개신교 단체가 부채 탕감 운동에 나서는 이유는, 운동이 성서에 나오는 희년 제도와 맥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희년이 되면, 모든 노예를 해방하고 서로의 빚을 면제해 주며, 토지와 집을 본래 소유주에게로 돌려주었다. 백석대 정종성 교수는 "희년 제도는 사회의 최하위 계층과 고리대금의 수탈적 압박에 짓눌려 근근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호하려는 종교적 안전장치"라고 했다.

▲ 8월 31일 열린 희년 실천 주일 연합 예배에서 박득훈 목사(새맘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최고 가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것이다. 교회가 채무를 갚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빚을 탕감해 줘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준비 운동하다가 멈칫한 빚 탕감 운동

하지만 부채 탕감 운동은 올해 그리 널리 확산되지 않았다. 7·8월 희년함께와 복교연의 활동 이후로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희년함께는 희망살림과 함께 교회와 목회자 모임에서 다섯 차례 부채 탕감 운동 세미나를 열고, 교회 목회자와도 서너 차례 미팅을 가졌다. 채무자가 겪는 부채 문제의 실상과 잘못된 금융 제도의 문제점을 알리고, 부채 탕감 운동에 교회가 나설 것을 전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협력하겠다고 확답을 준 교회는 없다.

8월 한 달 간 한국교회와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모금도 기대에 못 미쳤다. 당시 희년함께 실무자들은 2000~3000만 원을 예측했지만, 성금은 500여만 원이 모였다고 했다. 100만 원은 교회 한 곳이 기부한 금액이다.

그러던 중 지자체와 불교계가 관심을 보였다. 지난 9월 성남시는 '빚 탕감 프로젝트 출범식'을 열어 118명의 약 25억 7600만 원의 채권을 소각했다. 11월에는 대한불교천태종 대광사가 '빚 탕감 프로젝트 모금 대법회'를 열어 68명의 2억 4700만 원 상당의 빚을 탕감했다.

부실 채권 태운다고 살림살이 나아질까

기자는 부채 탕감 세미나를 한 교회와 채권 소각을 추진하다가 중간에 고사한 교회에게 부채 탕감 운동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물었다. 대부분 교회는 부채 탕감 운동이 갖는 취지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공통으로 갖는 의문이 있었다. 채권 소각이 과연 채무자에게 실제로 이득이 가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부채 탕감 운동 때 소각하는 채권은 모두 대부업체에게 매입하거나 기증받은 것들로, 대부분 10년 이상 연체된 부실 채권이다. 채무자들은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사라진 사람들이다. 생사 여부도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라 대부업체도 추심(돈을 받는 행위)을 거의 포기한 상태다. 따라서 채권을 소각한다 해도 당사자에게 면제 사실을 전할 길이 없다. 주민등록에 기재된 주소로 통지문을 보내도 채무자들이 볼 확률은 적다.

또한, 오랫동안 채무를 갚지 못하는 이들 대다수는 다중 채무자다. 여러 기관에 빚을 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한 건의 채무를 벗긴다 해도 빚에 쫓기는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분당의 한 교회는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중 이러한 이유로 채권 소각이 채무자의 삶에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채권을 매입해 소각하려는 계획을 중단하고 다른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또 다른 목사도 "채권 소각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고 했다.

부채 탕감 운동을 진행해 온 희년함께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에게 교회가 품는 이러한 의문에 대해 물었다. 남 소장은 채무자에게 통보가 되지 않는 한계를 인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채권 소각은 채무자들을 돕는다고 했다.

남 소장은 제도 개선을 말했다.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부실 채권을 매입해 소각함으로써 금융권의 폐해와 채무자 문제를 여론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채무자를 위한 법안 마련의 동력이 된다.

당장 도움이 필요한 채무자를 금융 상담 및 지원으로 안내하는 역할도 한다. 채무자가 돈을 벌 사정이 안 돼 장기간 빚을 연체하면 금액을 조정하거나 상환 기관을 연장하는 등 대부업체와 협상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다수 채무자들은 잘 모르는 얘기다. 그래서 돌려 막기를 해 다중 채무자가 되거나 장기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기가 일쑤다. 남 소장은 채권 소각을 하고 나면 채무자들에게 문의가 많이 온다고 했다. 이들은 서울시 금융복지상담센터나 희망살림의 전문 상담사에게 연결된다. 이렇듯 채권 소각은 금융 제도 개선과 채무자 상담 지원을 견인하는 기관차 역할을 한다.

▲ 한국의 가계 부채와 장기 채무불이행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올해 국내에서 부채 탕감 운동을 처음 시작한 희망살림은 채무자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도표 제작 희망살림)

금융상담사 양성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

그렇다고 운동의 불씨가 아주 꺼진 건 아니다. 올해 말 희년함께는 기독 단체들과 함께 '쿼바디스 – 부채 탕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이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김 감독은 희년함께의 부채 탕감 운동을 위해 수익금 3000만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김 감독에게 계기를 묻자, "원래 부채 탕감은 교회가 할 일이에요. 그런 일을 하라고 위임받은 공동체잖아요"라고 했다.

'쿼바디스 – 부채 탕감 프로젝트'는 장기 프로젝트로, 교회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복지상담사 과정을 개설할 계획이다. 각 상담사는 교회에서 지역 주민의 채무 문제를 돕는다. 교회가 일종의 금융 상담 센터가 되는 것이다. 분당우리교회와 여수의 지역 교회들도 이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내년에 추진할지 검토 중이다. (관련 기사 : 영화 '쿼바디스' 수익금 어디에 쓰나 봤더니)

올해 야심차게 시작한 부채 탕감 프로젝트가 만성적인 개인 빚 갚아 주기에만 머물지 않고 채무자 상담 및 교육, 금융 제도 개선으로 발전할 수 있으려면, 더 많은 교회들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 올해 말, 희년함께는 기독 단체들과 '쿼바디스 - 부채 탕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들은 장기적으로 금융복지상담사를 양성해, 교회가 채무자 상담 및 지원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웹 자보 제작 청어람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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