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적 기업 희망살림에 의해 시작한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는 올해 총 452명의 44억 6000여만 원의 채권을 소각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개신교를 비롯해 불교·지자체도 참여했다. (희망살림 홈페이지 갈무리)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이 운동은 10년 가까이 장기 연체된 부실 채권을 원금의 1~3% 가격으로 구입한 뒤, 이를 소각해 채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주빌리(Jubilee)'는 고대 유대인들이 50년에 한 번씩 서로의 빚을 탕감하고 본래 주인에게 땅을 되돌려 주는 '희년' 제도를 의미한다.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는 미국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2012년 시민 단체 OWS(Occupy Wall Street:월가를 점령하라)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들은 채권이 금융시장에서 원금의 1~3% 가격으로 거래되는 점을 착안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국내에는 올해 처음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가 시작했다. 지난 4월 14일 금융 상담과 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사회적 기업 희망살림이 금융감독원 건물 앞에서 117명의 약 4억 6700만 원 상당의 채권을 소각했다. 당시 희망살림은 시민들의 모은 1300여만 원의 성금으로 채권을 매입했다. 원금의 약 2.7%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희망살림의 채권 소각 행사가 언론에 보도되자, 당시 희망살림 사무실은 채무 상담 전화로 업무가 마비되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 부채는 200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4년 1분기 말에는 1024조 원을 넘어섰다. 개개인의 빚 문제가 심각해지는 상황에서,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 지난 7월 21일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희년함께·희망살림이 공동으로 주최한 '2차 채권 소각 및 토론회'에 참가한 이 아무개 씨가 11년 동안 빚에 시달렸던 경험을 얘기하고 있다. 이 씨는 채무자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외부 요인에 의해 장기 채무로 전락하는 게 오늘날의 현실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제일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은 개신교였다. 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과 희년함께가 지난 7월 21일 희망살림과 함께 '2차 채권 소각 및 토론회'를 주최했다. 이날 대부업체에서 기증받은 채권을 소각해 99명의 약 9억 7600만 원의 빚을 탕감했다. (관련 기사 : 희망살림, 99명의 10억 빚 모두 탕감)

이후 희년함께와 희망살림은 8월 3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3차 채권 소각 퍼포먼스를 가졌다. 이날은 '희년 실천 주일 연합 예배'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예수살기·평화누리·한국복음주의교회연합·희년함께가 공동으로 주관한 예배에는 70여 명의 교인들이 참석했다.

교인들은 예배 이후 퍼포먼스에 참가했다. 대부업체가 채무자들에게 보내는 가압류 통지서, 빚 독촉 딱지 등을 찢었다. 이날 제윤경 상임이사는 50명의 빚 1억 9000여만 원을 탕감했다며 기독교인들이 부채 탕감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관련 기사 : '부채 탕감' 선포한 희년 실천 주일)

희년함께는 8월 한 달간 희망살림과 함께 시민과 교회를 대상으로 성금을 모았다. 성금은 채무자들이 장기 채무자가 되지 않도록 돕는 채무 상담과 금융 교육에 쓰였다.

▲ 8월 3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희년 실천 주일 연합 예배'에서 참가자들이 빚 독촉장과 채권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올해 하반기에는 지방자치단체와 다른 종교계가 동참하면서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의 불씨가 더 커졌다. 지난 9월 12일 성남시는 희망살림과 함께 성남시청 앞에서 '빚 탕감 프로젝트 출범식'을 열었다. 이날 118명의 약 25억 7600만 원의 채권을 소각했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지난 11월에는 대한불교천태종 대광사가 개최한 '성남시와 함께하는 빚 탕감 프로젝트 모금 대법회'에서 68명의 2억 4700만 원 상당의 빚을 구제했다. 희망살림 제윤경 대표는 성남시 이재명 시장이 '빚 탕감 프로젝트'에 관심이 많다며, 성남시 산하 기관과 종교 기관이 함께 프로젝트를 계속할 거라고 했다.

채권 헐값에 넘기는 금융 시장의 실태 고발…기독교 깐 영화 '쿼바디스'와 '부채 탕감'

부채 탕감 운동이 주목되는 이유는 단순히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장기간 연체된 채권이 금융시장에서 원금의 1~3%의 가격으로 거래되는 실태를 고발하는 측면도 갖고 있다. 제윤경 상임이사는 은행이 채무액을 연체하는 채무자와 금액을 조정하는 등의 지원 제도는 마련하지 않고 채권을 헐값에 대부 업체로 넘긴다고 지적했다.

운동은 채무자의 채무액을 일부 조정하고 상환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는 정부의 국민행복기금과도 비교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4월, 가계 부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민행복기금을 출범했다. 국민행복기금 박병원 이사장은 지난 3월 28일 출범 1주년 기념식에서 국민행복기금이 총 24만 9000명의 채무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절반에 달하는 13만 5188명의 평균 월 소득은 50만 원이 안 된다. 백석대 정종성 교수는 정부의 국민행복기금이 극빈층을 대상으로 10년간 채권 추심을 '대행'하는 제도라고 비판했다.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를 주관하는 단체들은 가계 부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채권 소각이 채무자 지원 및 금융 제도 개선 등 다양한 형태의 운동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희망살림 이현욱 공동대표는 금융기관이 소비자의 상환 능력을 근거로 대출하도록 공정 대출법·대부업법·이자 제한법 등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희년함께 토지+자유연구소 남기업 소장은 교회가 프로젝트에 헌금을 내는 것 이외에도, 지역 교회 단위로 금융상담사를 양성해 채무자를 돕거나, 교인 간의 부채 관계를 해결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했다.

▲ 희년함께·청어람M·교회개혁실천연대·<복음과상황>·<뉴스앤조이>는 올해 12월 말부터 '쿼바디스 - 부채 탕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들은 앞으로 금융복지상담사를 양성할 계획이다. (사진 제공 청어람M)

그런 면에서 올해 12월 희년함께가 청어람M·교회개혁실천연대·<복음과상황>·<뉴스앤조이> 등 몇몇 기독 단체와 공동으로 진행하는 '쿼바디스 – 부채 탕감 프로젝트'는 참고할 만한 사례다. '쿼바디스 – 부채 탕감 프로젝트'는 영화 '쿼바디스'의 김재환 감독이 수익금을 기부하면서 시작되었다. 올해 12월 20일 20억 원 상당의 채권 소각 퍼포먼스를 갖고, 내년 초에는 교회를 대상으로 채무 상담 교육 과정을 개설해 금융복지상담사를 양성할 계획이다. 각 상담사는 교회 인근 지역에 빚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돕는다. (관련 기사 : 영화 '쿼바디스' 수익금 어디서 쓰나 봤더니

올해 시작한 '한국판 롤링 주빌리 프로젝트'는 세 분기 만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44억 6000여만 원의 채권을 소각해 총 452명의 채무자를 구제했다. 직원 수가 5명도 안 되는 한 사회적 기업이 시작한 프로젝트에, 지금은 기독 단체를 포함한 사찰, 지자체 등 여러 기관이 동참하고 있다. 방식도 채권 소각에서 채무자 상담 및 지원, 입법 운동 등 다양한 방법이 제안되고 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빚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계 부채가 매 분기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4년 3분기 말에는 가계 부채가 1060조 원을 넘어섰다. 정부도 이러한 심각성을 알고, 지난 12월 11일 농협·신협·새마을금고 등 금융권의 가계 대출을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부채 탕감 운동이 이 난국을 타개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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