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법정을 오가는 목사들이 있다. 이들은 업무상 횡령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수억 원의 교회 재정을 임의로 사용했는데, 당회나 공동의회를 거치지 않았다. 당연히 교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지난 9월 17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40년 넘게 목회를 해 온 A교회 김 아무개 목사(80)가 법정 구속됐다. 죄목은 업무상 횡령. 은퇴 이후 활동과 생활을 대비해 교회 재정을 임의로 사용했다. 담임목사 재직 시에는 교인들이 낸 십일조의 10%를 가져다 쓰기도 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문용선 재판장)는 김 목사가 총 23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목사가 80세의 고령이고, 교회 개척과 부흥에 앞장선 것은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다고 했다.

한때 교회 살리기 운동으로 유명세를 탔던 부천시 원미구 중동 B교회의 66살 윤 아무개 목사는 형사소송에 휘말려 사회 법정을 오가고 있다. 윤 목사는 지난 2009년 12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총 272회에 걸쳐 교회 통장에서 29억여 원을 가로챈 혐의(업무상 횡령)로 지난 7월 불구속 기소됐다.

지난 2010년 은퇴한 서울 관악구 봉천동 C교회의 74살 박 아무개 원로목사도 사회 법정을 오가고 있다. 2012년 교회에서 받은 은퇴금 8억 원이 문제였다. 당시 C교회는 장로 징계 문제로 내홍을 겪었는데, 박 목사를 지지하는 일부 장로들이 당회 결의 없이 은퇴금을 먼저 지급했다. 그러자 반대 측 장로들은 박 목사와 이 아무개 장로를 업무상 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 목회자들의 재정 전횡은 교인 이탈과 교회 분쟁으로 이어진다. 사진은 위임목사 청빙 문제로 분쟁을 벌였던 C교회 모습. 장로 징계 문제와 원로목사 은퇴금 지급 문제로 인해 갈등이 장기화됐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목회자들의 재정 전횡…쪼개지는 교회들

세 목사에게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교회가 정한 규정과 절차를 밟지 않고 헌금을 유용한 점 △목사들로 인해 교회에 내분이 발생한 점 △현재 횡령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김 목사의 경우 당회나 공동의회를 거치지 않은 채 6억 7000만 원의 은퇴금을 취했다. 은퇴 이후 활동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4000만 원을 챙겼다. A교회 장로들과 교인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B교회 윤 목사도 절차를 무시하고 교회 재정을 유용했다. B교회는 주간 지출 계획서와 일계표 등을 작성하고 재정위원장의 결재를 거친 다음 예산을 집행해 왔다. 하지만 윤 목사는 2009년 12월부터 2013년 9월까지 이와 같은 절차를 밟지 않고 교회 돈을 임의로 사용했다.

교회는 목사들의 재정 전횡을 비롯해 행정 문제로 내홍을 겪어야 했다. A교회 김 목사는 은퇴 이후 후임 목사와 재정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교인들은 김 목사 지지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대립하기도 했다.

B교회 교인 200여 명은 윤 목사의 재정 유용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은 윤 목사를 검찰에 고발했고, 사회 법정에 서게 만들었다. 이들은 현재 교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따로 예배를 하고 있다.

C교회의 분쟁은 박 목사가 무더기로 장로를 징계하면서 벌어졌다. 이후 박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과 반대하는 교인들로 나뉘어 대립했다. 그러다가 박 목사의 재정 횡령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양측의 갈등은 심화됐다.

현재 세 목사는 재판을 받고 있다. 23억 원을 횡령한 김 목사는 법정 구속을 피하지 못했다. 윤 목사는 1심 재판을 받고 있고, 박 목사는 2심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목회자들의 고질병, '재정 전횡’

목회자들의 재정 전횡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월 교회개혁실천연대(개혁연대·공동대표 박종운·방인성·백종국)는 2002년부터 해 온 교회 상담 결과를 발표했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이뤄진 상담 주제 중 '교회 재정 전횡' 비중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437건의 상담 중 53.1%를 차지했다. 2013년에 한 상담도 재정 문제가 가장 높았다. (관련 기사 : 지나친 권력 가진 담임목사가 교회 망친다)

개혁연대 김애희 사무국장은 교회 내 권력이 담임목사에게 집중돼 있고, 많은 교회가 재정 공개를 기피하기 때문에 재정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봤다.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일반 기업보다 청렴하고 투명해야 할 교회가 목회자의 재정 문제로 인해,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고 비판했다.

목회자들의 재정 전횡은 한국교회 신뢰도 하락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2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공동대표 박은조·백종국·임성빈·전재중)이 발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의 신뢰도는 19.4%로 천주교(32.7%)와 불교(26.6%)보다 낮았다. 당시 여론조사를 수행한 글로벌리서치 지용근 대표는 "일반 기업은 5점 척도로 3.75점 이상을 받아야 제품을 출시하는데, 한국교회의 신뢰도는 2.62점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관련 기사 : "기업 제품으로 치면, 개신교는 출시 불가")

비기독교인들은 한국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교회 내부 비리와 부정부패', '언행일치가 되지 않는 점' 등을 가장 큰 이유로 들었다. 기윤실은 설문 조사를 바탕으로 한국교회가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점으로 '불투명한 재정 사용'과 타 종교에 대한 태도 등을 꼽았다.

▲ 교회 재정 사고는 1차적으로 목회자들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교인들도 재정 사고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목회자들의 재정 전횡과 관련해 교인들의 책임 의식을 강조한 정재영 교수는 "제직회나 공동의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 1월 12일 열린 사랑의교회 공동의회 모습. ⓒ뉴스앤조이 구권효

믿고 맡기기보다, 교인이 직접 들여다봐야

목회자의 불투명한 교회 재정 운용은 교회 분열과 한국교회 신뢰도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교회재정건강성운동(실행위원장 최호윤 회계사)은 교회가 재정 공개와 보고를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교회 구성원인 교인들은 재정 보고가 이뤄지는 제직회나 공동의회에 책임 의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재영 교수(실천신대 종교사회학)는 목회자의 재정 전횡과 관련해 1차적으로 해당 목회자들에게 책임이 있지만, 수수방관하는 교인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사전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하지 않게 해야 함에도 대부분의 교인들이 '방치' 입장을 견지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목회자에게) 믿고 맡기기보다, 일단 공동의회에 참석해 우리 교회는 재정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하는지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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