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월 7일, 입주민의 인격 모독과 언어폭력을 견디지 못한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A동 경비원 이 아무개 씨가 분신했다. 한 달 뒤 이 씨가 숨을 거두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관리 부실 등의 이유로 기존의 용역 업체와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경비원 분신과 사실상의 해고 통보 조치에 대해 기독 입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취재했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지난 10월 7일 오전 9시 30분. 서울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A동에서 근무하던 경비원 이 아무개 씨(53)가 승용차 안에서 분신했다.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 소식은 일파만파 퍼졌다. 입주민의 인격 모독과 폭언 등을 견디지 못했다는 뉴스가 연일 쏟아졌다.

신현대아파트 논란은 이 씨의 죽음 이후로도 계속됐다. 11월 7일 이 씨가 사망하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기존의 경비 용역 업체에 관리 부실 등의 이유를 들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터넷과 SNS에는 갑의 횡포라는 비판의 글이 쇄도했다. "분신한 경비원만 불쌍하다", "누가 봐도 보복성 해고", "이 아파트에는 교회 다니는 사람도 없는가."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진 12월 4일과 5일, <뉴스앤조이> 기자는 압구정 신현대아파트를 찾았다. 아파트 주민 중에는 기독인도 있을 것이다. 경비원 분신과 입주자대표회의의 경비 업체 변경에 대해 기독인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기독 주민들, "안타깝지만, 할 수 있는 일 없어"

취재는 순탄하지 않았다. 경비원들은 입주민을 취재하고 싶다는 기자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주민들이 싫어한다면서 기자를 막아섰다. 승강이는 한동안 계속됐고, 계속되는 설득 끝에 취재를 할 수 있었다.

A~E동(35평)까지, 교회 문패가 걸려 있는 집을 대상으로 취재를 시작했다. 각 동마다 98가구가 거주하는데, 교회 문패는 평균 15개 정도 부착돼 있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소망교회, 광림교회 문패가 60~70%를 차지했다. 기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맨 꼭대기 층으로 올라간 다음, 한 층씩 내려오면서 취재를 진행했다.

복도식으로 된 낡은 아파트 통로에는 창문이 없었다. 고층에서 맞는 바람은 지상보다 차갑고 따가웠다. 교회 문패가 박혀 있는 집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있는 집을 발견할 때면 반가운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이동 중 광림교회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초인종을 누르자, 잠시 뒤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기독 언론 <뉴스앤조이>에서 취재 나왔습니다. 최근 경비원 문제와 관련해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문을 열고 나온 30대 남성은 경비원 문제에 대해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이 인격 모독을 당하고, 이를 견디지 못해 분신한 것을 얼마 전 방송을 통해 알았다고 했다. 그는 "이번 일로 (경비원 전원을) 해고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신앙과 상관없이,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말했다.

오히려 입주자대표회의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하는 주민도 있었다. 주님의교회에 다니는 한 40대 여성은 같은 질문에 "입주자대표회의가 이번 일을 지혜롭게 처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입주자대표회의가 해고 카드를 꺼내면서, 아파트 입주민이 사회적으로 더 큰 비난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경비원은 성실하다고 했다. 부당한 처우를 받고도 응수하지 못한 이 씨가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경비원 문제에 안타까움을 내비친 교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신앙'과 별개의 문제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광림교회에 다니는 50대 여성 권사는 경비원의 분신과 전원 해고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펄쩍 뛰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번 일에 직접 개입할 수 없고, 또 나선다고 해도 해결될 것 같지도 않다며 소극적인 반응을 취했다. 또 다른 여성 주민은 "기도는 하겠지만, 신앙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해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비원이 문제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의견을 가진 교인도 있었다. 한 60대 여성은 경비들의 태도가 예전만 하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도 본체만체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 씨의 인격을 모독한 것으로 알려진 주민을 옹호하면서 "그 할머니의 지적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그래도 5층에서 과일을 던진 것은 도가 지나친 것 같다"고 말하자, "다리가 불편해서 던져 준 것인데, 그것마저 이해 못 하면 어떡하느냐"고 말했다.

신현대아파트에서 평수가 제일 큰 F동(60평)은 단 한 명도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78가구 중 13곳에 교회 문패가 부착돼 있었고, 역시 소망교회와 광림교회가 제일 많았다. 이들은 기자의 질문에 "필요 없다", "말할 준비가 안 돼 있다", "하고 싶지 않다"면서 취재를 거부했다.

▲ 경비원 문제에 안타까움을 내비친 교인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아픔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면서도, 자신들의 신앙과는 결부시키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지극히 작은 사람을 위해 일해야"

압구정 신현대아파트는 건축된 지 3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지만, '부자 동네'로 통한다. 35평은 14억, 60평은 25억 원대에 거래된다고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말했다. 부자 동네라서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둔감한 것은 아닐까.

"꼭 부자 동네 사람들이라서 (경비원 문제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임대 아파트도 상황은 다르지 않은데, 관리비 아끼겠다고 경비원 자르는 임대 아파트들도 있다." 조성돈 교수(실천신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경제 논리와 연관성이 없다고 했다. 다만 조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인이라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능력이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강원돈 교수(한신대)는 기존의 신앙 체계가 바뀌지 않는 이상, 신앙인들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다수의 신앙인은 경제 부흥, 자녀 진학, 남편 출세, 건강 등 개인적인 문제에만 매달린다면서 교회가 제대로 된 신앙을 교육해야 한다고 했다. 강 교수는 "성경에 '지극히 작은 사람을 위해서 한 일이 하나님을 위해서 한 일'이라고 나온다. 작은 사람, 즉 사회적 약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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