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참사 이후 계절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어느새 겨울이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광화문광장 농성장과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유가족은 밤을 지새운다.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실종자 '수색 종료'를 선언하고 철수했지만, 희생자 가족은 아직 그곳에 있다. 그들은 진도체육관에서 나와 팽목항 근처 컨테이너에서 지낸다. 인양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유가족은 전국 각지를 다니며 진상 규명을 위한 간담회를 한다. 유가족에게 참사 이전에 누렸던 평범한 일상은 아직 먼 이야기이다.

▲ 안산에 있는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 내부 모습이다. 분향소에는 희생당한 단원고 학생들의 영정 사진이 걸려 있다. 누구든지 분향소에 와서 조문할 수 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기자가 만난 세월호 유가족 대부분은 고통을 호소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기억력이 점점 더 감퇴한다고 했다. '죽은 아들이 꿈에 나타났다'던 고 이창현 군 어머니 최순화 씨는 소화가 잘 안 되고, 늘 머리가 아프다. '하나님이 있다고, 천국이 있다고 믿고 싶다'던 고 이영만 군 어머니 이미경 씨는 그전에 없었던 아토피와 중이염이 생겼다.

정신적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혼자 있으면 우울해지고 좋지 않은 생각마저 한다는 유가족도 있다. 유가족 중 기독인도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거기에 신앙적 어려움이 겹친다.

▲ 세월호 참사 이후 6개월이 지났다. 추운 겨울이 되었지만, 세월호 유가족은 여전히 광장을 지키고 있다. 여름부터 광장을 지켜 온 유가족은 얼굴이 시커멓게 탔고 살도 많이 빠졌다. 아픈 곳투성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아침에 '눈 뜨지 않기'를 바라는 유가족

기자가 만난 기독인 유가족 일부는 '죽음'을 기다린다. 하루라도 빨리 자식을 만나고 싶어 죽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기다림'의 대상이 되었다. 이 소망이 없이는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분노가 치밀어도 하나님을 떠날 수 없다고 유가족은 말한다. 이미경 씨는 그동안 '선데이 크리스천'으로 살아왔지만, 앞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천국에서 아들을 만나지 못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안정과 불안을 동시에 느꼈다. (관련 기사: "하나님이 있다고, 천국이 있다고 믿고 싶다")

이제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믿지 않아

안산 분향소에서 만난 고 유예은 양 어머니 박은희 전도사가 예은이의 반 부모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부모들이 모여서 함께 식사할 때였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은 없다고 했다. "신이 있다면, 아이들이 그토록 살고자 몸부림칠 때 잡아 주었어야 하지 않았나. 신은 왜 가만히 있었는가." 박 전도사는 차마 그들에게 "신이 살아 있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슴 아파했다.

기독인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다. 그 순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지, 왜 아이들을 구하지 않으셨는지 궁금해한다. 인터뷰 내내 눈물을 흘렸던 고 유예은 양 이모 박명희 씨는 유가족은 하나님께 답을 듣고 싶다고 했다. "왜 모르는 척하셨는지, 도대체 그 순간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지." (관련 기사: "하나님, 답을 듣고 싶어요. 왜 모른 척하셨나요")

참사 초기, 유가족 대부분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이 많았다. 하지만 참사 원인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악의 세력이라고 결론지었다. 박 전도사는 인간의 탐욕과 욕망에서 비롯된 맘몬 앞에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순간 아이들을 구하지 않은 하나님은, 그들에게 더는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니라고 했다.

'교회 밖' 신앙생활로 눈 돌려

최순화 씨는 참사 전에는 교회와 집밖에는 몰랐다고 했다. 하지만 참사가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했다. 내 자식, 내 남편, 내 가족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세상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전에 하나님은 교회에만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세상의 고통받는 사람들 중에 계신다고 생각한다. (관련 기사: 죽은 아들이 왜 엄마 꿈에 나타났을까)

고 김주희 양 어머니 이선미 씨는 외동딸인 주희를 잃었지만, 일정이 되는 대로 간담회를 다니며 발언을 한다. 희생당한 자녀만이 아닌, 다음 세대를 위한 행동이라고 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안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함이다.

▲ 광화문광장 개신교 농성장에서는 릴레이 기도가 계속된다. 누구든지 개신교 농성장에 와서 기도할 수 있다. 사진은 예장통합 일하는예수회 회원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모습. ⓒ뉴스앤조이 이사라

교회를 떠나는 유가족

개신교는 그동안 여러 모양으로 유가족과 연대해 왔다. 광화문광장,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청운동주민센터 앞 등에서 꾸준히 기도회를 하고, 진보·보수 목회자 500여 명이 함께 모여 철야 기도회를 하기도 했다.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해 40일 동안 단식을 했던 목회자들도 있었고, 1인 피켓 시위, 서명운동, 일일 릴레이 단식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광화문광장에서는 릴레이 기도회와 교회2.0 천막 카페가 있다.

하지만 유가족은 그들이 거주하는 안산 지역에서 그들과 연대하는 교회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유가족의 처절한 움직임을 외면한 채, 이제는 그만두라고 하는 목사도 있다고 했다. 이선미 씨는 교회에 위로의 '말'만 있고 행동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색안경'을 끼고 본다고 했다. 욕하며 비난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선미 씨는 10년 넘게 다녔던 교회를 떠났다. (관련 기사: "내가 믿었던 신앙이 나를 배신했다")

안산 분향소에서 만난 유가족은 안산 지역 교회 중 유가족을 위해 앞장서는 교회를 보기 힘들다고 했다. 그는 유가족이 안산 지역에서 보이는 움직임으로 전체를 생각하기 때문에, 개신교의 영향력을 여전히 미미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 교회2.0목회자운동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4·16 약속 지킴이 사랑방'카페이다. 세월호 유가족이 광장에 있는 한, 카페는 계속 운영될 예정이다. 카페에는 세월호 유가족, 자원봉사자, 기독인, 일반 시민 등이 모두 모인다. 아래 사진은 카페에서 고 김유민 양 아버지 김영오 씨가 시민과 만나는 모습. ⓒ 뉴스앤조이 이사라

가톨릭에 호감 갖는 유가족…개신교에서 개종하기도 해

그는 유가족이 개신교와 다르게 가톨릭에 호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안산 분향소에 있는 가톨릭 부스에서는 유가족을 위해 매일 빠짐없이 미사가 진행돼 왔다. 적게는 30명, 많게는 70명까지 미사에 참석한다. 유가족에게 미사에 오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유가족이 참석을 하든지 안 하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유가족은 그 점을 고맙게 생각했다.

전국에서 신부들, 수녀들, 신자들이 수시로 분향소에 조문하러 온다. 조문을 마친 후 유가족을 만나 위로하고 떠나지만, 어떨 때는 그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바로 돌아가기도 한다. 유가족을 위한 음식을 준비해서 소리 없이 살며시 놓고 가는 수녀도 있다. 가톨릭에선 단체로 꾸준히 분향소를 찾고 있다. 그래서일까. 최근에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가족도 있다.

▲ 최근 날씨가 추워지면서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있던 천막 부스가 컨테이너로 바뀌었다. 박은희 전도사는 누구든지 와서 예배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스 안에는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모든 분들과 모든 모임에 열려 있는 공간'이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유가족 눈엔 '생색내는' 개신교로 비쳐지기도 

날씨가 추워지면서,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 있던 천막들이 컨테이너로 바뀌었다. 새로 설치된 개신교 컨테이너는 유가족대책위기독인모임에서 관리한다. 박은희 전도사는 누구든지 와서 예배해 달라고 부탁했다. 

목사들도 분향소를 찾아온다. 유가족은 그들의 방문이 감사하지만 간혹 그 방문이 이벤트로 보인다고 했다. 목사가 오면, 기념 촬영을 한다. 어떤 목사는 자신을 소개하며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 온 것인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유가족도 개신교가 기도회를 하는 것을 감사하지만 번번이 일회성으로 끝나는 것이 아쉽다고, 지속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지길 바랐다.

끝까지 개신교에 대한 기대 놓지 않아

취재 현장에서 만난 유가족들은 신앙인이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상처가 더 깊다고 했다. 그래도 기대를 놓지 않았다. 그들이 사랑했던 교회가 그들의 편이 되어 주기를 바랐다. 박은희 전도사는 뒤늦게라도 개신교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하지만 유가족과 연대하는 교회는 주로 '작은 교회'이다.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자원봉사자는 여전히 대형 교회의 움직임이 없어 아쉬워했다. 유가족이 교회로 간담회를 다니고 있지만, 대부분 작은 교회다. 간담회를 신청하는 대형 교회를 보기는 힘들다.

유가족이 원하는 것은 이벤트가 아니라 꾸준한 연대다. 박 전도사는 그렇게 해야만 그동안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 했다. 특별히 아직도 분향소를 찾지 않은 개신교인이 있다면, 이제라도 방문하여 아이들의 영정 사진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가족은 단순한 위로가 아닌, 무엇 때문에 답답한지, 무엇을 도와주면 좋겠는지를 물어보면 좋겠다고 한다. 최순화 씨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있다"고 했다. 남아 있는 실종자 9명과 인양 문제이다. 그는 이 문제에 실제적인 방안을 주는 곳이 없다며, 개신교가 그 역할을 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 유가족은 개신교에 실망했지만 여전히 기대를 놓지 않았다. 작은 교회뿐만 아니라 대형 교회도 함께 연대해 주길 기대했다. 특별히 아직도 분향소를 찾지 않은 개신교인이 있다면, 이제라도 방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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