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을 전후해, 두 영화가 개봉했다. '카트'와 '제자 옥한흠'. 카트는 부당 해고를 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제자 옥한흠은 옥 목사의 일대기를 다룬 전혀 다른 주제의 두 영화이지만 함께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이야기는 7년 전으로 돌아간다. 2007년 7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 같은 시간 그 안과 밖에서 대비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안에서는 평양 대부흥 운동 100주년 기념 대회가 열리고 있었고, 밖에서는 이랜드 홈에버 노동자 파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관련 기사: 한쪽에서는 축제, 다른 쪽에서는 생사 건 싸움)

▲ 2007년 7월 8일, 같은 장소에서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서울월드컵경기장 안에서는 평양 대부흥 운동 100주년 기념 대회가 열리고 있었고(사진 위), 바깥에서는 하루아침에 해고 당한 사람들의 파업이 벌어지고 있었다(사진 아래).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카트'와 '제자 옥한흠'이 엮이는 건, 월드컵경기장을 사이에 두고 어느 한쪽도 서로에게 넘어가지 못한 그날 때문이다. 기독교 기업으로 이름을 날린 회사가 하루아침에 이윤을 위해 1000명이 되는 사람들을 해고했다. 노동자들은 파업에 나섰지만 회사는 꿈쩍하지 않았다. 애초 노조도 인정하지 않은 회사였다. 510일 투쟁 끝에 홈플러스테스코가 홈에버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사건은 종결했다.

당시 이랜드 일반 노조 사무국장이었던 홍윤경 부장(영등포산업선교회)은 사실상 이랜드와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홍 부장은 그 중심에 박성수 회장이 있다고 봤다. 박 회장은 사랑의교회 제자 훈련 1세대다. 제자 훈련의 철학은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100주년 기념 대회 설교자였던 고 옥한흠 목사가 경기장 안에서 "한국교회를 살려 주소서" 외쳤을 때, 저편에선 옥 목사가 가르친 박성수 회장의 회사 직원들이 "비정규직의 생존권을 보장하라" 외치고 있었다.

7년이 지난 지금, 개봉한 두 영화를 찾는 사람들도 그때 서울월드컵경기장만큼이나 두 쪽으로 나뉘어 있을까. 홍윤경 부장과 김종일(동네작은교회)·남오성(일산은혜교회 청년1부) 목사를 만났다. 얘기를 위해 김종일·남오성 목사는 두 영화를 모두 봤다. 김종일 목사는 옥한흠 목사가 제자 훈련을 시작한 성도교회에서 옥 목사 이후 청년부를 담당한 일이 있다. 남오성 목사는 교회개혁실천연대 사무국장을 지냈다. 

- 영화 어떻게 봤나. 간단한 소감을 부탁한다.

▲ 이랜드 홈에버 사태 때, 홍윤경 영등포산업선교회 부장은 일반노조 사무국장이었다. 홍 부장은 이랜드에 입사하면서 '노동자에게 복음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는 예수를 따르는 제자라면 약자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홍윤경: 카트는 벌써 3번 봤다. 사실 영화라서 상업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었을 것으로 생각해 큰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시사회 때 보니까, 실제 투쟁했던 모습과 상당 부분 비슷했다. 볼 때마다 운다. 카트를 본 이랜드 조합원 한 명은 '참 지금과 똑같다', 그렇게 말하더라. 현실과 영화의 차이점 중 하나는 이랜드는 본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조가 통합이었다는 점이다.

옥한흠 목사를 개인적으로 존경한다. 1993년 노조를 만들고 만났다. 옥 목사는 "회사 내 어려운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노조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2007년 파업할 때 옥 목사를 다시 만나고자 공문을 2~3번 보냈는데 건강상 이유로 거절했다.

김종일: 카트를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가 여전히 우리 시대에 있다는 걸 느꼈다. 제자 옥한흠을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복음이 교회 안에 갇혀 있다. 가장 제자 훈련을 열심히 한, 누구보다 균형을 갖췄다고 말한 한스 큉의 교회론에 매달린 옥 목사의 현장이 그랬다. 여전히 교회가 세상으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카트에서 봤다. 우리 시대 교회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오성: 나는, 세상이 전태일 열사가 살았던 시대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에는 자본가 대 노동가가 싸웠다면 지금은 노동 진영 안에서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계층이 나뉘어 노동자들끼리 싸운다. 오히려 싸움이 정교해지고 치밀해졌다. 권력은 벌금으로 압제하고.

-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변한 게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복음이 교회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는데.

남오성: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제자 훈련의 큰 이유는 '변화'다. 그런데 그 변화를 '착한 남편' 됐다는 걸로 얘기한다. 제자 옥한흠에서 보듯이 골프 안 치는 거, 에어로빅하지 않는 것, 땅 투기 안 하는 걸 얘기한다.

목회하면서 '버리고 따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복음서를 보면 제자들이 예수를 따를 때 배, 그물, 부모, 그리고 물고기를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물고기 때문에 예수를 만났는데 제자의 길은 그것마저도 버리고 가는 거다. 영화에서 주인공 한선희(배역 염정아)도 버린다. 한선희가 정규직 전환이라는 특혜를 포기함으로써 모든 것이 시작한다.

제자 옥한흠에서 제자들은 과연 뭘 버렸나, 욕심, 탐욕, 교만, 음란 등이 있을 거다. 그래서 나타난 현상이 무엇이었나. 변화는 있었을 거다. 하지만 사랑의교회와 교인들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짐작해 보면, 그들이 그렇게 버린 일이 있었다면 세상은 더 많이 변하지 않았겠는가.

김종일: 남오성 목사가 말한 대로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더 교묘해졌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대안을 고민하고, 그동안 세상이 보여 준 방식과는 다른 것을 내놔야 한다. 이랜드는 옥한흠 목사의 1대 제자가 세운 회사였다. 옥 목사가 그렇게 얘기한 평신도를 깨운다는 제자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을 보면 전혀 하나님나라 가치관이 적용되지 않았다.

홍윤경: 강남 사랑의교회 앞에서 5개월 동안 농성할 때, 언젠가 밤을 새우고 새벽 예배에 갔다. 오정현 목사는 우리를 정확하게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셨다. 이 시련을 잘 견뎌야 한다"고 했다. 그래도 사랑의교회가 이랜드보다 낫다. 전기와 화장실을 사용하게 해 줬다. 지나가던 교인들은 선전지를 나눠 주면 잘 받는 사람, 욕하는 사람 두 부류였다. 무관심한 사람도 있지만, 음료수를 주는 권사님들, 관심을 보이는 청년들도 있었다.

▲ 남오성(왼쪽), 김종일 목사는 옥한흠 목사의 제자 훈련이 잘못됐다고만 보지 않았다. 옥 목사 개인에게 잘못을 묻기보다 그 시대의 한계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 이랜드 홈에버 사태 배후에는 박성수 회장이 있었다. 옥한흠 목사가 한 제자 훈련은 어떤 것이었나.

김종일: 나도 교회에서 소그룹을 하고, 삼일교회 대학부에서 제자 훈련 코스를 거쳤다. 지나고 보니 우리 훈련이 지극히 지성적이라는 것을 느낀다. 훈련의 목적은 현장에서 능력으로 나타나는 데 있다. 훈련받은 대로 실제 삶에서 살아 내야 한다. 제자 훈련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머리는 아는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훈련은 된다. 아내한테 남편한테 집에서 교회에서 잘하는 건 될지 몰라도, 일터에서 부딪히는 상당 부분 문제에는 무기력하다.

옥한흠 목사가 제자 훈련의 방점을, 다시 세상으로 보내겠다는 데 두긴 했다. '훈련받고 나가서 세상을 변화시켜라.' 그런데 훈련은 여전히 교회라는 공간과 시간에 갇혀 있었다. 결국 옥한흠 목사는 주일 메시지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한 주에 30시간씩 준비했다. 현장은 보지 못한 채 제자 훈련만 강조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세상으로 보냄받은 교회, 변화된 크리스천이라 그러면서 박성수 회장이 세운 이랜드에서 정작 중요한 건 실적이었다. 일터를 교회처럼 만들자고 하면서 직원 휴게실 축소해 기도실을 만들고 신우회를 만들었다. 기도실에 걸린 기도 제목은 ①매출 증가, ②멤버쉽 가입 회원 수 증가… 마지막 6번 직원 복음화였다. 이미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또 다시 분리된 교회를 만들어 낸 것 아닌가.

남오성: 옥한흠 목사가 반복해서 5~6명 데리고 제자 훈련할 때가 좋았다고 말하는 걸 보면서, 진정성은 느꼈다. 그렇다면 대형 교회가 되었을 때, 제자 훈련이 아직도 가능한 것인지 옥 목사는 물어야 했다. 그는 아마 생각했을 거다. 가능하다고 봤던 것 같다. 여기에 성장을 중시했던 시대의 한계가 있다. 영화 이름을 '제자 옥한흠'이 아니라 '제자 옥한흠의 시대'라고 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 한 개인이 잘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시절의 공과를 얘기해야 한다.

- 시대와 제자 훈련의 한계를 말했다. 2007년 서울월드컵경기장 안과 밖에서 보았듯이, 저마다 한국교회의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후는 다르지 않겠나.

▲ 성장 가도를 달리던 한국교회 리더십은 이제 교체됐다. 두 목사는 삶의 현장에서 훈련의 힘을 발휘하는 교회가 나타날 것이라고 봤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김종일: 아주 작은 몸짓이지만 7년이 지난 지금, 현장을 지키려고 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느낀다. 교인들과 목회자들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목회 현장을 바라보는 인식이 바뀌고 있다. 한국교회가 성장을 멈췄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기 때문이다. 옥한흠 목사를 비롯해 성장 가도를 달렸던 리더십은 교체됐고, 바뀐 리더십은 흔들거린다. 빨리 정리를 끝내고, 현장에서 시작하는 교회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카트와 제자 옥한흠을 본 것이 의미 있었다. 내 목회지는 어딘지, 나는 교인들과 어디 있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 주었다. 더 이상은 모호하게 갈 수 없다. 신앙 색깔이 분명해지고 있다.

남오성: 사실이다. 2007년 100주년 기념 대회 때 '한국교회를 살려 주소서' 기도했지만 얼마나 허무했는가. 바깥에서는 그 기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교회를 살리려면 '노동자를 살려 주소서' 기도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노동자들과 함께하면서 '이들을 살려 주소서' 하고 기도해야 한다.

홍윤경: 지금도 영화 카트의 마지막 장면처럼 노동자들은 싸우고 있다. 제자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가 아닌가. 예수가 지금 이 땅에 온다면 그의 마구간은 어디가 될지, 고민하고 그곳을 지키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책임일 것이다. 비정규직뿐만 아니라 소외된 사람들, 장애인, 세월호 가족 등에게 관심 갖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두 영화는 한쪽으로 치우친 신앙의 한계를 보여 줬다. 하지만 그래서 7년이 지난 지금,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은 비교적 분명해진 것 아닐까. ⓒ뉴스앤조이 이사라

영화를 본 세 사람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말은 "그때와 지금, 변한 게 없다"였다. 올해 8월, 비정규직 수가 처음으로 600만이 넘었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나왔다. 11월, 쌍용자동차 노동자 대량 해고는 유효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한스 큉은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것과 동시에 세상으로 보냄받은 사명이 있다고 말했다. 예수의 제자라면, 여전히 우리 사회 안에 함께 있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와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2014년 한국교회의 모습은 7년 전과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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