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을 지내고, 대림절을 앞둔 가을. 한 해의 결실을 수확하는 것처럼 교회도 1년을 결산하고 새해 계획을 세울 때다. 때맞춰 새해 일꾼을 세우기 위해 일부 교회는 임직식 준비에 한창이다.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장로나 권사로 취임하려면 얼마의 돈을 교회에 내거나 기증을 해야 한다고 알려졌다. 장로는 500만 원, 안수집사와 권사는 300만 원, 이런 식이다.

관행을 깨고 '다른' 임직식을 하는 교회들이 있다. 일절 돈을 받지 않고, 기증도 받지 않는다. 임직패는 교회에서 준비한다. 외부 인사를 초청하지 않거나, 초대하더라도 그날 설교자를 포함한 내빈에게 식사비 정도의 사례만 한다. 직분을 받는 이들이 하는 감사 헌금까지는 막지 않는다. 형편과 양심에 따라 하는 헌금을, 누가 얼마 했는지 담임목사는 확인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대안적인 임직식을 실천하는 교회로 용산구 청파동에 위치한 효창교회(김종원 목사)가 있다. 직분자를 세우기로 결정한 효창교회는 6월 8일 임시당회와 6월 19일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9명의 안수집사, 10명의 권사, 2명의 명예권사 후보를 추천했다. 이어 6월 29일 공동의회에서 찬반 선거로 임직자를 결정했다. 교회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11월 30일 임직 예배를 준비하고 있다.

효창교회 담임 김종원 목사는 주보에 싣는 목회 편지와 광고 등을 통해 교인들에게 임직식의 의미와 방침을 수차례 말했다.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니 성의를 모아 피아노라도 기증하겠다고 임직자들이 자원한 일도 있었다. 김 목사는 사양했다. 아직 피아노를 바꿀 때가 아니라고 했다. 교인들에게는 그만큼 이런 임직식이 낯설었던 모양이다. (아래 목회 편지 전문 참고)

덕풍교회(최헌영 목사) 역시 12월 14일 권사·안수집사 임직식을 앞두고 있다. 6월 22일 당회에서 후보를 추천하고, 6월 29일 공동의회에서 선거로 후보자를 선출했다. 추천안대로 안수집사 4명, 권사 5명이 뽑혔다.

최헌영 목사는 10월 제직회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직분을 위한 약정 혹은 작정 헌금은 없다. 감사 헌금은 무명으로 한다. 외부 인사 초청은 없다. 임직패와 작은 선물은 교회에서 준비한다. 식사는 각자의 손님들과 개별적으로 예식 후에 해 달라. 그간의 선례와는 달라 어색한 안건을, 제직회에 참석한 교인들은 흔쾌히 받았다. (아래 제직회 발언 전문 참고)

한편, 덕풍교회가 준비한 임직패에는 목사 이름이 없다. 단지 교회 이름만 있을 뿐이다. 목사의 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니고 교회 일꾼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최 목사는 설명했다.

효창교회와 덕풍교회 말고도 참신하고 대안적인 임직식을 하는 교회가 있을 것이다. <뉴스앤조이>가 비슷한 사례를 찾고 있다. 그런 교회를 알거나 그러한 교회에 속해 있다면 기고 바란다. (이메일 newsnjoy@newsnjoy.or.kr, 페이스북 메시지 facebook.com/newsnjoy, <뉴스앤조이> 제보 게시판 이용 가능)

다음은 효창교회 목회 편지 전문.
 

임직식을 준비하면서… -효창교회 김종원 목사(11월 2일 자 주보)

가을이 지고 대림절이 시작되는 이달의 마지막 날 오후 3시에 안수집사와 권사를 세우는 임직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 공동체가 일꾼을 세운다는 것은 보람된 일입니다. 공동체뿐 아니라 개인이나 가족에게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나름의 가치관과 지키고 싶은 우선순위들이 다름을 느낍니다. 때로는 이런 조금의 다름이 큰 갈등으로 키워져 아픔과 분열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임직식을 준비하면서 궁금해하는 몇 가지를 나눔으로 우리교회의 정체성을 살리려 합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공동의회에서 결정했지만 임직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가"입니다. ("단, 공동의회 결과 후에 사퇴하는 것은 개인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추천된 분들이 공동의회 전에 사퇴를 하는 것은 받지 않기로 하였고, 공동의회 결과에 따른 임직식과 관련한 건은 본인의 의견을 인정하는 것으로 하였기에 가능합니다.

이어지는 말은 "'부족하기에', '부담이 되어' 다음 기회에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에 답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직분에 대해 큰 부담을 가지지 말라고 하면 직분을 쉽게 여기는 뉘앙스를 풍기고 공동체의 결정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답을 하기도 목사의 양심상 어렵습니다. 다음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이른 시간에 다시 기회가 올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은 아주 먼 일, 다시는 올 수 없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직분이니 영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얼마나 부담스럽겠습니까, 그래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하시되 조금만 더 하시겠다는 마음으로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부담이 안 될 수는 없지만, 공동체의 결정도 존중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는 늘 부족한 상태에서 주께서 만들어가는 일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만큼의 은혜가 뒤따를 것입니다.

그 다음은 "임직식을 하면 '돈을 많이 내야 한다, 기증을 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부담이 된다"는 것입니다. ("임직식에 대한 의논도 미리 필요하다고 설명하여 그 안을 묻다", "임직식에 필요 이상의 경비 외에는 부담을 주지 않기로 하고 헌금은 개인의 형편과 양심에 맡기기로 하다.") 임직식의 후유증은 돈과 관련된 부분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 당회는 공동의회를 하기 전, 유불리를 떠나 임직과 관련된 결정을 미리 하였습니다. 헌금은 개인의 형편과 양심에 맡기기로 하였습니다. 기증이라는 명목으로 돈을 모으는 것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앙 유산에는 기증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공동체에 유익이 되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분들의 헌신 때문에 후손들이 더 좋은 환경을 누립니다. 그러나 이번 임직식과 관련하여 기증을 받는 부분은 득(得)보다는 실(失)이 많다고 여겼습니다. 우선 개인의 형편과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기증이 가지고 있는 좋은 뜻과 기증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함정도 생각해 보는 기회였으면 합니다.

누구나 내가(우리가) 기증한 것에 대해 시선이 더 가고 애착이 가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때론 구약 성전의 성물처럼 여겨져, 초림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사람)가 성전 됨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비신앙적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기증한 것을 아무도 손 못 대는, 움직이지 못하는 성물처럼 여기는 분들도 보았습니다.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를 차지할 움직이지 못할 성물은 없습니다. 그분만이 성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세우는 직분이니 '임직패'와 설교를 비롯한 임직 순서를 맡는 분에게 예를 갖추는 부분은 공식 재정으로 지출하고, 축하해 주시기 위해 오시는 가족 및 친지들과 나누는 식사(혹 작은 선물)는 임직자들이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여깁니다.

'오전 예배 때 집사님들이 대표 기도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하시거나, '임직자 교육은 빨리 받으면 좋겠는데 왜 늦어지냐'는 질문도 있습니다. ("임직식은 11월 말에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는데 새해 조직 개편 때문이다. 직분자를 우리 안의 리더로 세우는 부분으로 안수집사로 피택된 분들은 오전 예배, 권사 피택된 분들은 오후 예배에 대표 기도하는 것으로 하고")

오전 예배 때는 장로님들만 대표로 기도하는 게 익숙합니다. 솔직한 질문입니다. 교인들의 대표로 세운 장로님들이 기도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성경적인 것처럼 인식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집사님들의 대표 기도는 임직자 교육의 과정이기도 하고 우리의 리더를 세워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임직자 교육은 폼 나게, 빨리,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개인 사정으로 늦추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공동의회부터 임직식을 준비하는 지금, 목사의 마음은 마치 '깨진 독 안고 가는 심정'입니다. 그리고 교육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가는 것, 한 분이라도 더 직분받음에 동참토록 해야겠다는 마음 때문입니다.

교회 직분에 대해 확신에 찬 분들은 직분을 무겁게 느끼는 여린 분들을 품었으면 합니다. 부담되어 힘든 분들은 다른 임직자들을 위해서라도 마음을 추스르는 결정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공동의회부터 임직이 되는 일련의 모든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먼저 고백하고 임직식을 통해 주의 뜻을 품고 내일을 향해 뛸 수 있는 가슴 벅찬 웃음을 담았으면 합니다. 남은 기간 차분히 준비하면서 서로 마음으로 말로 행동으로 응원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주께서 세우시는 사람입니다."

덕풍교회 제직회에서의 발언도 그대로 옮긴다.

선례와 다른 임직식을 하겠습니다 - 덕풍교회 최헌영 목사(10월 제직회에서)

"지난 선례를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그 선례는 제가 없을 때의 이야기라 잘 모르겠습니다.

이번 임직식에는, 권사는 얼마 집사는 얼마를 하는 등의 약정 및 작정 헌금은 없습니다.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전에 임직 선거를 앞두고 최 목사는, 집사란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설교했다. -편집자 주) 무슨 헌금을 얼마 했네, 많네, 적네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런 거 왜 하나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누가 얼마의 헌금을 하셨는지 그런 거 저는 잘 모릅니다. 혹 감사 헌금을 하실 분들은 무명으로 하여 주십시오. 재정부원 및 담임목사도 사람인지라 '아, 누구누구는 얼마 했구나' 하게 될까 두렵습니다.

축사 및 권면의 말씀을 위한 외부 인사 초청도 없습니다. 우리 교인들을 잘 모르는 분들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이야기를 듣기가 탐탁지 않습니다.

그리고 임직받으시는 분들에게 드릴 임직패와 오시는 손님들에게 드릴 조그마한 선물은 교회에서 준비하겠습니다. 식사는, 예식 후에 손님들과 개별적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서 따로 준비하지 않습니다.

교우들께서는 임직 예식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임직 받으시는 분들은 기도로 많이 준비를 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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