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을이 되면 하염없이 길을 걷는다. 3년 전에는 태종대를 걸었다. 재작년에는 광안리를 걸었다. 그리고 요즘은 학교 운동장을 걷는다. 가을이 되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불어오는 알싸한 바람이 괜스레 싱숭생숭한 마음을 더욱 부추긴다. 도대체 세상이란, 인간이란, 신이란 무엇이며, 나의 삶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인지 알지 못할 질문들로 온 머리가 가득 찬다. 톡 건드리면 눈물이 나올 것 같고, 자꾸만 바람 부는 곳을 향해 떠나가고 싶은 계절, 그 가을에 본인은 한 책을 펼쳐 들었다.

▲ <살아 봐야 알게 되는 것> / 김관성 지음 / 넥서스CROSS 펴냄 / 256쪽 / 1만 2000원

2.
페이스북 스타라 알려진 김관성 목사의 신간 <살아 봐야 알게 되는 것>이 그 책이다. 이 책은 어머님께 드리는 헌사로 시작된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시던, 그럼에도 저자에게 삶의 희망을 거셨던, 하지만 지금은 곁에 없어서 한없이 미안하게 만드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어떤 면에서 그의 저서 <살아 봐야 알게 되는 것>은 어머니를 고스란히 닮아 있다. 울산 성남시장에서 고래 고기를 파시던, 전혀 세련미가 없고 투박한 어머니지만, 그 속에 있는 자식을 향한 사랑만큼은 진국이시던 어머니, 그의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어머니가 그려진다. 투박하지만, 오히려 투박하기에 사람의 마음을, 삶을 움직이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 말이다.

3.
그러한 투박함 속에서는 '어머니의 일갈'과 닮은 김관성 목사의 일갈도 발견된다. '하나님'을 핑계로 돈을 섬기고, 명예를 섬기고, 궁극적으로는 성공을 갈취하려는 삯꾼의 기질이 있는 아우들에게 그는 '자기 부인의 길'을 걸어갈 것을 프롤로그에서 외친다. 그뿐만 아니다. 온갖 학위, 학벌, 독서의 수준, 경험 등등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사회 속에서, '겉치레'의 유혹에 빠지는 이들에게는 "진실해라!"고 외치기도 하며, 일사 각오의 정신으로 생떼 쓰듯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사람에게는 "기도를 오해하지 말라!"고 외치기도 한다. 글들 속에 틈틈이 묻어나는 그의 일갈들을 듣고 있자면 괜스레 그를 향해 '옳은 길, 바른 길'을 외치셨으리라 보이는 어머니의 뒷모습이 아른거린다.

4.
물론 그러한 '일갈'들은 결국 위로로 귀결된다. 보통의 어머니들의 일갈은 어설프지만, 우리네 삶을 움직인다. 그 이유는 '일갈'이라는 단순한 현상 이면에, 수없는 삶의 질곡들과 자식들을 향한 사랑이 묻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단편들 속에도 이러한 인생들에 대한 '애정'이 켜켜이 묻어난다. 이를테면 그에게 있어서 비천한 삶이란, 영광된 삶과는 하등 차이가 없는, 하나님 앞에서는 동일하게 귀한 삶이며, 또한 미국의 데스밸리의 장관을 형성하는 수많은 잡목들처럼, 우리네 인생들도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해 내는 귀한 '인생'이라 말한다. 이러한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애정'을 읽어 내고 있자면 괜스레 마음이 따스해진다. 그의 일갈들 이면에 있는 인생들에 대한 사랑 덕분에.

5.
또한 이러한 '일갈'들을 들으면서, 그 이면에 담겨진 '사랑'을 읽어 내다 보면 어느새 그가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인상이 새겨진다. 그의 하나님은 역전의 하나님이다. 단순히 세상에서 벌어지는 천박한 역전이 아닌, 예수 안에서 일어나는 고결한 역전이다. 이를테면 그는 일본의 정치 지도자 사카모토 료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지녔던 '누군가 도와주지 않으면 망하거나 큰일 날 것 같은 어설픔'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말하기를 이러한 '어설픔'이 오히려 그를 돕게 만드는 사람의 애정을 불러왔고, 결국 일본 최고의 정치 지도자가 되었다며, 이러한 '어설픔'이 우리에게도 복이 되지 않겠냐며 묻는다. 사실 예수를 만난다는 것은 이와 같다. 예수 안에서 약함이 강함이 되는 것이며, 비천함이 고귀함이 되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의 글들을 읽고 있자면 한없이 초라해 보였던 인생이 처음 예수를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감격, 보잘것없고 비천한 인생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때 경험했던 그 감격이 떠오른다. 그리고는 괜히 눈물이 핑 돈다.

6.
서두에서 말했듯이 가을은 지독히도 고뇌가 깊어지는 계절이다. 고뇌가 깊어진 만큼 스스로에 대한 좌절과 낙담도 커져만 간다. 이런 시점에서 본인은 김관성 목사의 글들을 읽었다. 마치 생각이 깊은, 그리고 삶을 치열하게 살아 내는 형님과 곱창 집에 앉아서 대화를 주고받는 느낌이었다. 시끌벅적하고, 곱창을 굽는 연기로 자욱하기에, 논리가 탄탄한 학문적 대화를 주고받지는 못하지만, 괜스레 오고가는 삶의 소소한 에피소드들 속에 묻어난 선배만의 고유한 향취, 그 향취를 맡으며 위로받고 힘을 얻는 느낌, 딱 그 느낌이었다. 또한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선배의 잔상으로 인하여 괜스레 마음이 따스해지는 그런 느낌말이다. 어쩌면 이 가을에 그의 책은, 홀로 고독하게 고뇌하는 이들에게 좋은 말벗이 되어 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리의 짧은 인식의 폭으로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스러운 현실이 독이 될 것이라고 낙심하지 말자. 인생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경지의 깊고 오묘함이 있는 게 분명해.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고 싶었던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만들어 내시는 오묘한 섭리의 은혜를 꼭 맛볼 수 있기를 바랄게." - (<살아 봐야 알게 되는 것>, 221쪽)

홍동우 / 부산장신대학교 신학과 학부생. 학생과 전도사의 경계, 부산과 대구의 경계, 보수적 기독교와 진보적 기독교의 경계, 인문학과 신학의 경계 사이에서 양자와 서로 대화하며, 갈팡질팡 방황하는 한 평범한 청년 전도사이자 경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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