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기도와 하나님 나라>/ 톰 라이트 지음 / 전의우 옮김 / IVP 펴냄 / 120쪽 / 8000원

톰라이트는 우리 사이에서 국제적인 신약학자이자 영국 성공회 목회자로 이미 유명하다. 수십 년의 학문적 업적과 목회 가운데 나타난 그의 글쓰기와 심오한 논쟁적 글쓰기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과 진한 영적인 감동을 준다. 이제 그가 주기도 강연집으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왔다.

사실 개인적인 생각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독자에게 '주기도문 강연집'이라고 말할 것 같으면, 이미 개인 서재에 한두 권 이상 소장하고 있을, 생각보다 진부한 주제와 내용으로 여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의 소책자를 읽다 보면, 이 주제가 갖고 있을 것 같은 진부함이나 익숙함은 사라지고 참신함과 역동성이 마음속에서 솟아오름을 발견하게 된다.

톰라이트에게 있어서 주기도는 '정의와 빵과 용서와 해방을 부르짖는' 행동과 실천의 헌장인 것이다. 이것은 예수의 소명이며 실천이며 제자들과 신자들에게는 유언과 같은 것이다. 또한 이 기도의 특징은 개인의 욕망과 안락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뜻과 관련하여 시작한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본서는 크게 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주기도의 중요한 단락들을 주해하는 성경을 취한다.

1장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다. '하나님 아버지'라는 말은 인사말이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는 말이다.

1) 출애굽기 4:22-23의 경우처럼, 이제 이스라엘은 바로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이끌림을 받아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한 상속자로 전환한다. 그와 관련하여 예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름으로 해서 이스라엘과 온 인류에 대한 새로운 출애굽을 준비하게 한다. 이것은 대림절의 소망이며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소망하는 것이다.

2) 사무엘하 7:14의 경우처럼, 하나님과 다윗 왕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마지막 때에 메시아의 통치와 해방 사역으로 확대된다. 예수의 일은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나라를 땅에서도 임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명은 아버지의 사명을 배우고 실행해 나가는 아들로서 그의 사역 전반에서 잘 나타나며, 이제 마지막으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가 사용한 '아버지'란 칭호는 그 나라의 도래와 완성을 위한 궁극적인 도전을 위한 결의가 드러난다. 감람산에서의 기도는 아버지가 보내신 자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고 그것을 통하여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를 알게 하는 일의 완수에 관한 것이었다.

2장은 "당신의 나라가 임하소서!"다. 마지막에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임하듯이, 톰라이트의 표현에 따르면, "하늘에서의 뜻이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듯이" 하늘과 땅이 만난다. 이 세상에 임할 하나님나라는 개인 구원뿐만 아니라, 정치적 해방을 포괄하는 평화의 왕국 예언의 실현이다. 기도를 통한 이러한 나라의 실현은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균형 잡힌 세상에 대한 시각을 갖게 만든다.

1) 아름다운 창조의 세계에 대한 창조자의 사랑의 시각과 2) 어그러진 세상에 대한 창조자의 깊은 슬픔의 시각. 기도는 강력한 염원이며 그 뜻대로 살 것에 대한 의지의 표현이다. 기도는 내가 아닌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전적인 위탁이 아니다("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세요!"). 기도하시고 행동하신 예수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것은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기도는 결국 그렇게 하겠다는 서명 방식이다.

3장은 "오늘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다. 예수가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일은 하나님나라의 구현을 위한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이러한 잔치는 종말의 메시아의 잔치였다. 흥미롭게도 마태복음은 내일의 양식을 오늘 달라(미리 맛보게?) 하고, 누가복음은 오늘 양식을 오늘 달라(매일의 순종과 만족?)고 한다. 하나님나라의 약속은 육체적인 측면을 포함하며 그러한 필요가 절대로 부차적인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이 기도의 핵심 항목은 다음과 같다.

1) 우리의 '깊고 자연스러운 갈망'을 드러낸다. 2) 구체적인 필요를 기도하라고 말하게 한다. 3) 나를 넘어서는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살펴보게 한다. 즉 우리는 굶주린 자들과 '함께' 기도하게 한다. 4)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실제 굶주림을 채우는 측면에서 주의 만찬이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전달되는 통로와 매개가 되게 한다.

4장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소서!"다. 관용과 용서는 다르다. 죄의 용서는 '달리는 아버지'의 비유를 통해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다. 예수 당시까지 이스라엘이 겪고 있는 억압과 포로생활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죄의 용서이다.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를 받는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으나 예수는 그 메시지를 죄의 용서가 필요한 실제 거리와 마을로 옮겼으며,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는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나라가 도래하게 하였으며 제자들의 실천이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를 하게 하였다. 용서는 삶에서 나타난 하나님나라의 실현이다. 그런데 이것은 도덕적인 빚이 아니라, 경제적인 빚이었다. 정의와 평화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임하는 새로운 날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빚을 권하고 착취하는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5장은 "악에서 구출하소서!"다. 여기서 하나님 아버지는 '달려오는 아버지'상 대신에 '기다리는 어머니'상으로 묘사된다. 현재의 아픔과 고통을 통해 새 시대가 열린다. 여기서 시험은 평가나 환란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 시험의 때를 미리 대비하여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깊은 어두움의 시대를 지나야 새로운 빛의 시대가 올 것을 안다. 그 통과의 때에 안전하게 지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탄원)인 것이다.

악에서의 구출은 1) 악을 외면하라 2) 악을 내버려 두라 3) 자기의의 과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시험이 없는 악이 없는 세상을 지향하지만, 그것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당당히 승리하기를 염원한다. 6장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송영이다. 예수의 출생은 아우구스투스가 로마의 평화를 이룩한 즈음이었다. 로마의 절대군주가 제국의 평화를 구가하던 시절에 유대 변방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는데 오히려 그가 세상의 절대군주이며 온 세상에 평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선언된다. 목자들이 듣고 경배한 그곳은 평화와 안정이 넘치는 곳이 아니라, 두 거대한 왕국이 경쟁하는 곳이며 전혀 다르게 지배하는 세상들이 만나는 곳이다.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 세상은 그 영광과 권세가 가득해졌다. 그러므로 첫째로 그 영광과 권세가 세상에 드러나도록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세상의 권세와 영광에 동의하지 말아야 함을 말해 준다.

둘째로 우리는 그러한 영광과 권세 속에서 행동하며 살아야 한다. 셋째로 그가 왕이신 것을 확신하고 그에 대하여 헌신하겠다고 기도하며 약속해야 한다. 주기도는 하나님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것이 어떻게 관련되는가? 이 책의 부제가 말해주듯이, 하나님나라의 완전한 도래는 아직 미래의 일로 우리가 간절하게 희망해야 하는 것이며 그 하나님나라를 통하여 이 세상이 온전히 치유될 수 있다는 희망과 열정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굳이 이 책의 흠을 언급하라고 한다면, 무척 중요한 개념 하나에 대한 설명이나 적절한 번역어 제시 없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97페이지에 보면, 마리아와 테오토코이를 대조하는 단락이 있다. 마리아는 테오토코스(단수)라고 불리며 신자들은 테오토코이(복수)라고 불린다. 둘 다 문자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을 품은 자(God-bearer[s])'라는 말이다. 전자는 하나님의 모친이라고 번역되며 후자는 '하나님을 품은 자들'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번역과 신학적 입장에 따라 미묘할 수 있으나, 마리아가 하나님을 태중에 품은 자였던 것처럼, 우리 신자들은 하나님을 품은 자들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묵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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