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차별금지법이 처음 통과된 것은 50년 전인 1964년이다. '민권법(Civil Rights Act)'은 성별·종교·인종에 의한 차별을 금지했다. 현재 미국의 차별금지법에는 한 가지 기준이 더 추가되어 있다. 바로 성적 지향(sexual orientation)이다. 공적인 장소에서 성 소수자를 향한 신체·언어상의 폭력과 차별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 최근 미국에서 성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주가 늘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종교적 신념을 수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개인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크리스채너티투데이>는 휴스턴의 동성애자 시장이 지난 6월 제정한 차별 금지 조례에 반대하는 목사 5명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고 보도했다. 소환장은 법원이 발부하는 체포·수색 영장은 아니지만 국회나 각종 조사위원회가 강제로 소환할 수 있게 하는 장치다. 이번에 발부된 소환장은 차별 금지 조례와 관련된 목사들의 모든 발언을 시 검사에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미국 휴스턴 시의 시장 애니스 파커(Annise Parker)는 동성애자다. 그녀는 지난 1월, 20년 넘게 함께한 동성 연인과 결혼했다. 파커 시장은 시에서 차별 금지 조례를 지난 6월 통과시켰다. (휴스턴 시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많은 이들에게 공권력 남용이라 비판받는 이 일은, 애니스 파커(Annise Parker) 시장이 휴스턴 시에서 차별 금지 조례를 제정하면서 시작되었다. 파커 시장은 지난 6월 HERO(Houston Equal Rights Ordinance)라는 차별 금지 조례를 통과시켰다. 조례 내용 중에 반대파가 가장 문제 삼은 부분은 트랜스젠더가 원하는 대로 화장실을 이용하게 한 부분이다. 예를 들어 아직 여성으로 전환하는 수술을 거치지 않은 남성이 여자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으면 겉모습은 남자라 할지라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이 조례는 지역 교회 연합 등 기독교인의 큰 반발을 샀다. 일부 목사들은 설교 시간에 파커 시장이 동성애자인 것을 문제 삼으며 인신 공격성 발언을 거침없이 내뱉기도 했다.

휴스턴목사협의회(Houston Area Pastor's Council)는 반대 서명을 주도하여 5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이들은 이미 제정된 조례를 주민 투표에 붙여 폐기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다. 그러나 휴스턴 시는 서명한 사람들 중 대부분의 신원을 확인할 수 없다며 반대자들의 요구를 없던 일로 처리했다.

목사들의 거센 반발에도 파커 시장은 반대 서명을 주도한 5명의 목사들을 지목해 자신과 차별 금지 조례를 언급한 모든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 원래는 주일예배 설교까지 전부 원했지만 미국 전역에서 반감이 커지자 '설교문'은 제외했다. 대신 교회에서 교인들과 차별 금지 조례에 대해 나눈 이야기의 기록, 휴대폰으로 차별 금지 조례 폐기에 찬성하라고 권하는 문자 등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냈다면 모두 시 검사에게 제출해야 한다. 5명의 목사 중에는 휴스턴의 대표적인 대형 교회인 그레이스커뮤니티교회(Grace Community Church)의 스티브 리글(Steve Riggle) 목사도 있다.

리글 목사와 다른 4명의 목사들은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이 가장 짙은 법률 단체인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ADF)의 도움을 받는다. ADF는 이번에 소환장을 발부받은 다섯 목사들의 변호를 맡고 있다. ADF의 라루(La Rue) 변호사는 "목사들은 동성 결혼과 낙태·환경·이민 등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있다. 발언을 한다고 해서 딱히 잘못된 것도 없고 무엇보다 발언 자체가 불법은 아니"라고 했다.

아이다호 주는 지난 10월 8일 동성 결혼을 합법화했다. 대중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사람들은 주에서 정한 차별금지법에 따라 동성 결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 현재 결혼식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웨딩 채플을 운영 중인 도널드와 이블린 냅 (Donald and Evelyn Knapp) 부부는 안수받은 목사다. 이들은 자신들이 가진 종교적 신념과 반하는 동성 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고 거부 의사를 밝혔다. (<릴리전뉴스서비스> 기사 갈무리)

ADF가 돕는 또 다른 목사 부부가 있다. <릴리전뉴스서비스>는 아이다호 주에 살고 있는 도널드와 이블린 냅(Donald and Evelyn Knapp) 부부를 소개했다. 냅 부부는 둘 다 오순절 계열 교단에서 안수받은 목사들이다. 아이다호 주의 작은 도시 커들레인(Coeur d'Alene)에서 전문적으로 결혼식만 여는 히칭포스트(Hitching Post)라는 웨딩 채플을 운영 중이었다. 평범한 냅 부부의 일상이 변한 것은 지난 10월 8일 아이다호 주가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면서부터다. 이들은 10월 8일 이후 일주일에 2건 정도 동성 커플의 결혼 문의 전화를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동성 결혼이 합법화되자 커들레인 시가 자신들에게 동성 커플 결혼식을 받아 주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동성 결혼을 거절할 경우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감옥에 갈 수도, 고액의 벌금을 낼 수도 있다고 했다. 냅 부부는 ADF와 함께 아이다호 주 연방 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자신들은 10월 초 히칭포스트를 일반 사업자에서 '종교법인'으로 변환 신청했고 이 법인은 결혼이 '남'과 '여' 사이에서의 결합이라는 설립자의 신념을 반영한 곳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자신들의 사업장에서 동성 결혼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커들레인 시 대변인 키이스 에릭슨(Keith Erikson)은 자신들은 냅 부부에게 위협을 가한 사실도, 동성 결혼을 강요한 사실도 없다고 했다. ADF와 냅 부부가 주장하는 고액의 벌금이라는 것도 정확한 기준이 아닌, 냅 부부가 반복적으로 법을 위반한다는 조건하에서 산정된 금액이라고 했다. 또한 냅 부부의 웨딩채플은 이미 '종교법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주의 차별금지법은 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유엔의 자문기관으로 인권과 언론의 자유를 옹호하는 기관인 미국 자유인권협회(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ACLU) 아이다호 지부의 레오 모랄레스(Leo Morales) 국장은 10월 23일 냅 부부의 예외를 인정했다. 모랄레스 국장은 앞으로 냅 부부가 히칭포스트에서 예배 형식의 결혼식만 연다면 동성 결혼을 거절한다 하더라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히칭포스트가 예배 형식이 아닌 일반적인 결혼식에서조차 동성 커플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법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은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이 가장 짙은 보수적인 법률 단체다. 이들은 주로 동성애 반대, 종교의 자유, 종교 교육의 자유 등을 미국에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이같은 이슈로 소송 중인 기독교인을 대변하기도 한다. (자유수호연맹 홈페이지 갈무리)

미국에서 동성 결혼이 가능한 주가 점점 늘어나면서 종교적 신념을 내세우는 개인과 차별금지법 사이의 긴장감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앞서 미국의 여러 법원들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자들이 모든 사람, 즉 성 소수자까지 포함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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