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 한복판. 새까만 얼굴에 투박하게 자란 수염, 그와 대비되는 순백 사제복 차림의 신부들이 보였다. 이들의 뒤에는, 노란색 리본 목걸이를 목에 걸고 십자가 묵주를 손에 쥔 40여 명의 교인이 따라 걸었다. 시민들은 그들의 행렬이 신기한 듯 연신 고개를 돌리며 그들을 살폈다. 진도 팽목항에서 출발해 서울 광화문광장을 목표로 20일째 순례 중인 대한성공회(김근상 대주교) 사제들과 교인들이 서울 여의도를 지나고 있었다.

▲ 성공회 순례단은 10월 18일 오전 7시 성공회대학교에서 도보 순례 마지막 일정을 시작했다. 최종 목적지는 서울 광화문광장이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이 주관하고 대한성공회 본부와 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가 참여했다. 순례단은 해남, 무안, 나주, 광주, 장성, 안산 등을 거쳐 10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순례단은 9월 29일 진도 팽목항에 도착했다. 진도실내체육관에서 하루를 묵은 뒤, 도보 순례를 시작했다. 9월 30일 팽목항을 떠나 10월 1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순례 여정은 진도 팽목항에서부터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김제 6·25 참전 기념비, 병천 아우내 3·1운동 유적지, 안산 세월호 합동 분향소, 단원고, 서울 광화문광장으로 이어졌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이 주관한 이번 순례에는 성공회에 속한 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가 참여했다. 557km 전체 거리를 종주한 김현호 신부(동두천나눔의집), 박순진 신부(춘천나눔의집), 최석진 신부(씨앗교회) 외에도 구간별로 각 교구의 사제와 교인이 동참했다. 전국에 있는 성공회 교회들은 순례단에게 잠자리와 음식을 제공했다. 17일에는 대한성공회 김근상 대주교가 안산에 직접 들러 순례단을 격려했다. 18일 아침에는 성공회대학교 교수들과 교직원이 마지막 일정을 떠나는 신부들과 교인들을 배웅했다.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 순례 선택…"전국이 킬링필드"

도보 순례 마지막 날인 10월 18일, 서울 마포역 인근에서 순례단을 만날 수 있었다. 순례단은 마포역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사람들은 젖은 양말을 갈아 신거나 시원한 물로 마른 목을 축였다. 한편에는 마지막 순례 일정에 합류하기 위해 모여든 서울교구 소속 교인들과 신부들이 보였다. 대한성공회 정의평화사제단 총무 김현호 신부는 동료 신부들과 해단 예배 순서를 조율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강행군으로 피곤할 법도 하지만, 김현호 신부는 기자의 인터뷰 요구에 흔쾌히 응해 주었다.

▲ 순례단은 점심 식사 후 기도회를 열었다. 실종자 10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며 이들의 귀환을 위해 기도했다. 순례단의 기도 제목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실 규명을 위한 연대 △분열의 아픔을 되새기고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모아 역사적 진실을 마주할 수 있는 내적 용기 회복 △생명과 평화를 회복하는 교회 갱신 운동의 시작 등이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순례는 김현호 신부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김 신부는 200일이 다 되도록 매일 아침 가족을 찾아 먼바다로 떠나는 실종자 가족들을 진도 팽목항에서 만났다. 세월호 사건은 과거가 아닌 현재의 일이었지만, 국민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 가고 있었다. 김 신부는 자신도 그중 하나라는 걸 느꼈고, 진실을 마주할 내면의 용기를 회복하고자 순례길에 올랐다.

"세월호 사건은 불편한 진실이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유가족의 행동을 정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기득권 세력의 의도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왜 국민들이 생명의 죽음 앞에 충분히 애도하지 못할까라는 질문을 했어요. 한반도 근현대사에 민초들의 무고한 죽음은 끊임없이 반복됐습니다. 힘 있는 자들은 진실을 왜곡하고 숨기기에 급급했고, 순진한 국민들은 번번이 이들의 꾐에 넘어갔습니다.

한번 시작한 관성을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진실을 직시할 힘을 잃었어요. 나부터가 양심의 소리를 배척했습니다. 유가족을 위해 걷는 순례를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순례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경험입니다. 진실 앞에 용기 있게 설 수 있는 믿음을 얻기 위해,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얻기 위해 걷고 있습니다."

순례단은 1시간가량을 걸은 뒤 10분간 휴식을 취했다. 키가 훤칠한 최석진 신부는 순례단 맨 앞에서 교우들을 이끌었다. 최석진 신부는 "20세기 역사는 학살의 세기라고 부를 정도로 대량 학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21세기에 와서도 이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하고 말았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역시 기득권 세력에 의한 양민 학살이라고 말했다. 차오르는 분노 때문인지, 학생들을 지켜 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그는 기자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굳은 표정이었다.

"진도에서 서울까지 걸으며 어느 지역에나 양민 학살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안산마저도 그중 한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국은 발전이 아니라 치유가 필요합니다. 나라 전체가 킬링필드입니다. 국가는 양민 학살을 반복했고, 진실은 번번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세월호 사건을 분수령으로 삼아 정의와 진실이 살아 있는 나라로 변화해야 합니다. 역사 속에 살아 있는 민초들의 정의와 평화에 대한 갈망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순례단은 전국 곳곳에 산재한 근현대사의 역사적 장소를 직접 방문했다.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정읍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천안 병천 아우내 3·1운동 유적지 등 1890년대 이후 민초들의 희생을 기념하는 유적지를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한국교회는 죽음의 세력에 맞설 수 있는 동력을 잃었다"

▲ 순례단은 오후 3시께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는 해단 예배를 준비했다. 순례 완주자들은 각자의 소회와 기도 제목을 전했다. 전체 구간을 걸은 3명의 신부가 노래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을 부르고 있다. 사진 맨 앞에 안경 쓴 이가 김현호 신부, 그 뒤로 박순진(오른쪽)·최석진(왼쪽) 신부. ⓒ뉴스앤조이 장성현

20일을 꼬박 걸었다. 10월 18일 오후 3시께 성공회 순례단은 광화문광장에 도착했다. 세월호 유족들과 시민들은 광화문광장 사거리에서 20일간의 기도를 마무리하는 순례단을 맞았다. 순례단이 광화문광장 중앙에 들어서자 시민들은 감사의 박수를 그들에게 전했다. 이어진 해단 예배에서 557km를 종주한 3명의 신부는 각자의 소회를 전했다.

순례단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발에 난 물집도, 내리쬐는 햇볕도 아니었다. 9월 30일 있었던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합의가 순례단의 힘을 쏙 빼놓았다. 사제단 유시경 신부는 생명과 평화는 종교가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라고 말했다. 정치권과 언론이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는 이때, 희망의 불씨가 꺼져가는 바로 지금이 생명의 부활을 믿는 기독교인들이 나설 때라고 했다. 하지만 자족하는 데 익숙해진 한국교회는 죽음의 세력에 맞설 수 있는 동력을 잃었다고 말했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진실이 가진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동학농민운동, 5·18광주민주화운동 등 국가는 진실을 숨기기에 급급했지만, 역사와 민초들은 진실을 밝혀냈습니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고된 싸움이 될 것입니다. 모두가 외면하더라도 우리 성직자들은 끝까지 유가족 곁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성직자들의 역할이자 의무입니다."

▲ 해단 예배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신들은 아무런 힘이 없지만,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기독교인들이 끝까지 유족들을 도와 달라고 호소했다. 유가족들은 감사의 뜻을 모아 순례단에게 큰절로 인사했고, 순례단도 맞절로 화답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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