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신대학교 사당캠퍼스에는 현 김영우 재단이사장과 길자연 총장이 99회 총회 결의를 준수하고 사퇴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총신대학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백남선 총회장) 직영 신학교다. 교육부의 인가를 받은 학교로서 사립학교법의 적용을 받지만, 기본적으로 교단의 지도와 감독을 받는다. 하지만 총신대는 수년간 총회가 결의한 내용을 잘 지키지 않았다. 지난 9월 말 열린 예장합동 99회 총회에서는 총신대 재단이사들의 임기 및 선출 과정과 총장의 정년제 때문에 논란이 일었다. 몇 번이나 결의를 해도 제멋대로 운영되는 총신대를 향해 총회는 강수를 뒀다.

먼저, '재단이사의 임기는 4년이고 한 번만 연임할 수 있다'는 96회 총회 결의를 재확인하고 현 이사들에게 소급 적용하는 내용으로 총신대 정관을 개정하게 했다. 개방이사 선출에 대해서는 총회 실행위원회가 배수 추천하는 방법으로 정관을 개정하라고 지시했다. 총장에게는 만 70세가 넘으면 교단 산하 기관에서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교단법을 준수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현 김영우 재단이사장과 길자연 총장은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 (관련 기사 : [총회21] 총신 길자연 총장, 김영우 이사장 퇴진 임박)

총회가 끝난 후 총신대 교수·학생과 예장합동 구성원들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총신을 바라보고 있다. 총회가 빼도 박도 못하게 결의해 놨으니 이번에야말로 지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도, 그동안 봐 왔듯이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 본관 1층에는 10월 13일부터 17일까지 총학생회 주관으로 99회 총회 결의를 지지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마르투스 구권효

신학대학원 교수 8명은 10월 7일 99회 총회 결의를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재단이사회에는 정관을 개정하라고, 총장에게는 정년제를 지키라고 주문했다. 총신대 총학생회는 10월 13일부터 17일까지 본관 1층에서 총회 결의를 지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총회 결의를 준수하라는 대자보와 현수막을 걸었다. 대자보에는 신학과·기독교교육과 등 7개 학과와 총학생회·총여학생회·학생복지위원회의 직인이 찍혔다.

하지만 이런 구성원들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총신 운영자들은 교단의 결정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김영우 이사장과 길자연 총장의 행보는 총신과 총회에 더 큰 혼란을 예고하고 있다.

"총회 결의 존중하겠다"면서, '총회 결의 효력 정지' 소송 제기

▲ 김영우 이사장은 다른 재단이사들과 함께 10월 10일 총회 결의를 존중하겠다는 동의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14일 김 이사장이 총회를 상대로 '총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 알려졌다. ⓒ마르투스 구권효

총신대 재단이사회는 10월 10일 모여 "총회 결의를 존중하겠다"는 동의서를 제출했다. 99회 총회가 일단 10일까지 동의서를 제출하라고 했기 때문에, 이사회가 이에 따른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김영우 이사장을 비롯해 8명의 이사들이 동의서에 서명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본인은 99회 총회의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신대학교 재단이사 임기 관련 결의와 개방이사 관련 결의를 존중하며 99회 총회 결의가 총회 헌법과 사립학교법 등 관련 법에 위배되지 않는지 법적인 판단을 받아 합법적인 범위 안에서 정관이 정한 개정의 절차에 따라 99회 총회 결의를 존중하여 정관을 개정하겠습니다."

이사회가 총회 결의대로 동의서를 제출한 것은 환영받았지만, 문구 중 "법적인 판단을 받아" 부분에서 해석이 엇갈렸다. 이사회가 소송을 염두에 두고 문구를 작성했다는 의견도 있었고, 설마 소송까지 가겠느냐는 의견도 있었다. 한 총신대 교수는 "변호사에게 자문받는 수준 아니겠나. 총신대가 교단법뿐 아니라 사학법의 영향도 받고 있으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0월 14일, 김영우 이사장이 교단을 상대로 '총회 결의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한 것이 알려졌다. 소송 첫 심리는 22일 오후 2시 40분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58법정에서 열린다. 한 신대원 교수는 "(김 이사장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설마가 항상 사실로 드러난다"며 "소송은 악수(惡手)다. 지면 정말 빼도 박도 못할 것이고, 이겨도 교단 및 학교 구성원들이 '총회 말 안 듣고 학교를 사유화하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고 말했다.

99회 총회 결의대로라면 재단이사회는 정관을 10월 31일까지 고쳐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현 이사들은 11월 1일부로 모든 공직을 정지당한다. 그러나 김 이사장이 소송을 진행하면서 10월 말까지 정관을 개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됐다.

"총신 발전과 하나님의 영광 위해 총장직 수행하겠다"

▲ 길자연 총장은 10월 14일 신대원생들과의 간담회에서 총장의 거취는 재단이사회와 교육부 소관이기 때문에 이사회의 조치를 기다리자고 말했다. 그는 학교를 더욱 발전시키겠다는 포부를 펴기도 했다. (마르투스 자료 사진)

길자연 총장은 재단이사들처럼 총회의 결의를 존중한다는 동의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99회 총회는 총신대 총장에게도 정년제를 적용해야 한다면서도, 만약 길 총장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어떻게 조치한다는 내용을 결의하지 않았다. 총회 결의를 준수해 자리를 내려놓을지, 총회 결의를 무시하고 계속 눌러앉을지는 길 총장의 결정에 달렸다.

총신대 교수들의 예측은 비관적이었다. 아무리 총회에서 결정해도, 지금까지의 행보로 볼 때 길자연 총장은 교단의 뜻을 순순히 따르지 않을 거라고 봤다. 한 총신대 교수는 "교단이 결의하고 학생들이 서명운동을 해도 길 총장은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신대원 교수도 "길 총장은 사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99회 총회에서 강제 규정을 마련하지 않았는데 그가 스스로 물러나겠느냐"고 말했다.

역시나 길자연 총장은 사퇴할 생각이 없었다. 10월 14일 길 총장은 신대원생들과의 간담회에서, "99회 총회에서는 '만 70세가 넘긴 사람이 교단 산하 기관에서 공직을 맡을 수 없다'는 98회 총회 결의를 확인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 총장과 관련한 조사처리위원회가 만들어졌으니 거기에 맡기는 게 좋지 않겠나. 총장의 신상은 어디까지나 재단이사회와 교육부에 예속돼 있기 때문에 이사회의 결정을 지켜보는 게 낫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길자연 총장은 자신에 대해 좀 더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 달라고 신대원생들에게 부탁했다. 그는 "나는 내 명예를 걸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총장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몇 년 동안 기다려 보시면 좋은 결과가 생기고 뜻밖의 일들이 많이 생기리라 확신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총신의 발전을 위해 총장직을 잘 수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짓밟힌 총회 결의

99회 총회를 마치면서 총대들은 나름대로 뿌듯해했다. 마지막 날, 초미의 관심사였던 총신대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개혁적인 결의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총회를 무시하고 달리던 총신대에 제동을 걸고, 10여 년 동안 총신대를 주름잡고 있던 인사들을 바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총신대 운영진들은 또 다시 총회의 결의를 무시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김영우 이사장과 길자연 총장에 대한 교단 목회자들과 총신대 학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한 총회 중진 목사는 "이렇게 총회를 우습게 보는 사람들이 총신대를 운영한다는 게 슬프다. 총회가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어떤 조치를 취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총신대 신대원생들과 학부생들도 99회 총회 결의를 지켜 현 재단이사장과 총장이 퇴진해야 한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구권효 / <마르투스>·<뉴스앤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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