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11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2014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작은교회박람회'가 열렸다. 참여 교회와 단체는 박람회를 통해 서로 배우고 관계 맺는 시간을 가졌다. 행사를 마친 참석자들이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10월 11일, 작은 교회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생명평화마당(공동대표 김정숙·방인성·이정배)이 작년에 이어 '2014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작은 교회 박람회'를 개최했다. 평소라면 주말이라 한적했을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정도 이날만큼은 박람회를 보러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사람들의 손에는 저마다 박람회 팸플릿과 자료집이 들려 있었다. 겉에는 "생명 평화 교회가 대안이다"라는 박람회 취지 문구가 커다랗게 적혀 있었다.

작은교회박람회준비위원회(준비위원회)는 작년과 똑같이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를 박람회 주제로 내세웠다. 성장주의에 물든 한국교회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했다. 특히, 올해 한국교회가 세월호 참사에 대응한 모습은 사회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았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유가족들의 아픔을 공감하기는커녕 상처를 주어 사회에 물의를 빚기도 했다.

준비위원회 정경일 원장(새길기독사회문화원)은 여는 예배에서 "작은 교회가 희망이다. 작은 교회는 성장과 탐욕의 체제에 대항하여 새로운 대안을 찾는 교회"라고 말했다. 대안이란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아파하는 교회', '스스로 가난해지는 교회',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이다. 정 원장은 참여 교회와 참석자들에게 이번 박람회에서 세 가지 대안을 놓고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람회에는 45개 교회와 12개 기독교 단체가 참여했다. 작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작년보다 더 증가했다. 준비위원회는 참여 교회와 단체를 △성서 연구 △영성 수련 △예배 △예전 △교회 음악 △마을·지역 운동 △소수자 운동 △환경 생태 운동 △평신도·탈성직 △민주적 교회 정관 △교회 분립 △건물 없는 교회 △길 찾는 교회 등 13개의 소주제로 구분했다. 같은 주제의 교회와 단체는 한 강의실에 모았다. 각 교회와 단체는 부스를 설치하고 찾아오는 이에게 자신들을 소개했다. 주보나 사진, 영상 자료를 보여 주고 교회와 단체에서 만든 교육 자료, 간행물, 장식품 등을 판매했다.

박람회는 참여 교회와 단체들이 서로 교류하는 장이기도 했다. 참가 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다른 부스를 돌아다니며, 이웃 교회나 단체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관심 있게 봤다. 교회와 단체들이 주제별로 한 강의실을 이용한 덕분에, 같은 성격의 교회가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비슷한 고민과 어려움을 나눴다.

주최 측이 의도한 모습이었다. 준비위원회 이정배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참여 교회가 소위 진보, 보수, 에큐메니컬, 복음주의 등 여러 진영으로 나눠지지만 이들은 소속 교단보다 작은 교회라는 유대감이 더 크다고 했다. 박람회는 이들이 서로 교제하고 배우며 연대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 왼쪽 위) 언덕교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하는 교회다. 민주적 정관, 건물 없는 교회, 평신도 중심의 운영위원회 구성 등을 내세우며 한국교회에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언덕교회부터 시계 방향으로 너머서교회, 새길교회, 새맘교회 부스 모습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씨알예배공동체는 평신도의 자발적인 예수 운동을 지향한다. 이들은 매주 파주에 있는 씨알공동체생각의집에 모여 말씀 묵상, 관상 기도, 죄 고백, 생활 나눔 등을 한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섬돌향린교회는 성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교회다. 신앙과 성 정체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편견 없이 바라보고, 따뜻하게 대한다. 섬돌향린교회 부스의 무지개 장식이 눈에 띈다. ⓒ 뉴스앤조이 박요셉

박람회에서 만난 교회들

1985년 창립한 경기도 군포시의 한무리교회(우예현 목사)는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교회다. 교회 개척 당시 군포, 안양에는 공단이 조성되어 노동자들이 몰려들었다. 한무리교회는 '사랑방학교'라는 야학과 노동 상담소를 개소해 노동자 교육과 인권 문제를 돕기에 나섰다. 우예현 목사는 그렇게 만난 한 노동자가 용접해서 만든 철제 십자가를 의미 있게 내보이기도 했다. 이제 한무리교회는 지역 아동을 돕는 일에 새로운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단법인 한무리사랑나눔회를 만들어 한무리지역아동센터, 기쁨지역아동센터 등을 운영하며 아이들에게 방과 후 교실이나 진로 및 가정 상담을 제공한다.

언덕교회(박창훈 목사)는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해 온 교회다. 교회는 운영위원회를 두어 평신도 중심으로 운영하고, 목회자는 설교에만 집중하게 했다. 그리고 교회 내 의결 사항은 대화와 토론 등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정해지도록 했다. 언덕교회 부스 옆에는 너머서교회(이헌주 목사), 새맘교회(박득훈 목사) 등 비슷한 지향을 가진 교회가 자리했다. 이들은 모두 민주적 정관, 건물 없는 교회 등에 뜻을 두고 한국교회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시골에서 올라온 교회도 볼 수 있었다. 쌍샘자연교회(백영기 목사)는 말씀과 영성,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교회다. 교회는 1992년 청주 시내에서 사회 선교의 뜻을 두고 창립했다가, 2002년 낭성명 초정리로 이전했다. 농촌으로 간 교회는 신앙선교영성위원회, 생명자연생태위원회, 문화사회공동체위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생태자연도서관, 민들레학교, 황토로 지은 사랑방카페 등을 운영하며 시골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준비위원회는 부스 활동 이외에도 작은 교회가 도움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들로 부대 행사를 마련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목회자 청빙, 어떻게 하고 계십니까'라는 주제로 집담회를 가졌고, 갈등전환센터에서는 '교회와 갈등 전환'이라는 제목으로 교회 안의 갈등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강의했다. 길목협동조합은 주일학교 교사들을 위한 '좋은 교회 학교 교사 강습회'를 준비했다.

 

▲ 한무리교회(왼쪽)는 80년대 공단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창립했다. 우예현 목사는 30년 전 한 노동자가 용접해서 만든 십자가를 보였다. 십자가에는 "주여, 인갑답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색동교회(오른쪽)는 절기별로 특별한 시간을 갖는다. 지난 사순절에는 전 교인들이 자아 십자가에 못을 박았다. 못은 색깔별로 각각의 죄를 상징하고 있다. 금색은 이기심, 녹색은 탐욕, 붉은색은 분노, 푸른색은 교만, 은색은 불안과 나약함이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박람회에는 충청남도에서 올라온 교회도 있었다. 단비교회(왼쪽)는 디아코니아 가족 공동체를 지향한다. 지역에서 농사를 하는 한편, 황토방으로 지은 교회 건물을 쉼터, 공동체 학교로 마을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쌍샘자연교회(오른쪽)도 농촌에서 민들레학교, 사랑방카페 등을 운영하며 시골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주님의가족공동체(왼쪽)와 꿈이있는교회(오른쪽)는 지역을 섬기는 데 앞장선다. 주님의가족공동체는 사단법인 해피트리를 운영하며 지역 청소년과 이주민들에게 방과 후 학교, 직업 체험 등을 제공한다. 꿈이있는교회는 지역 내 외국인 노동자와 독거노인을 위해 매주 꾸준히 무료 급식, 미용 봉사, 빨래 봉사 등을 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사회에 열려 있고, 가난해지고, 함께 아파하는 교회

오후 네 시가 되자, 참여 교회와 단체, 참석자들은 감리교신학대학교 100주년기념관 앞에 모였다. 이들은 박람회 마지막 순서로 다 같이 다짐 예배를 했다. 예배는 예배 공동체인 브라운워십이 토크 콘서트 방식으로 진행했다. 토크 콘서트에는 새롬교회(이원돈 목사), 동네작은교회(김종일 목사), 새길교회 등 세 교회의 목사와 교인이 패널로 참석했다. 이들은 여는 예배에서 정경일 원장이 언급한 세 가지 대안을 각각 지향하는 교회였다. 패널들은 자신의 교회가 추구하는 바를 간단히 소개했다. 그것은 단순하고 명료했다.

"한 사람을 전도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마을로 나아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다니고 싶은 교회가 아니라, 살고 싶은 마을을 목표로 합니다." (새롬교회)

"사과나무의 열매는 사과가 아니라 또 하나의 사과나무입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열매는 교인이 아니라 또 하나의 교회입니다." (동네작은교회)

"교회는 고난받고, 아파하고, 눈물 흘리는 이와 함께 해야 합니다. 그들의 곁을 지켜야 합니다." (새길교회)

이정배 교수는 작은 교회 박람회가 매년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라고 했다. 세월호 이후 드러난 한국교회의 민낯을 회개하고, 작은 교회가 연대해 새로운 길을 제시하자고 했다.

예배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위해 광화문광장에서 40일 동안 단식에 나섰던 방인성 목사가 '흩어지는 기도'로 마무리했다. 방 목사는 여기에 모인 교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한국교회의 쇄신과 회복을 위해 힘써 나서겠다고 기도했다.

모든 순서를 마치고, 박람회에 참여한 교회와 단체는 다시 각자의 지역으로 흩어졌다. 그중에는 경기도 연천이나 충청남도 천안도 있었다. 바로 출발해도 도착하면 한밤중에 도착하는 곳이다. 다음 날 전할 주일예배 설교를 준비하기에 몸도 피곤하고 시간도 부족할 텐데, 작은 교회 목사들의 표정은 밝았다. 박람회에서 만났던 교회 얘기를 주일예배 때 전할 생각인지, 오히려 신이 나 보였다. 이들은 오랫동안 교정과 주차장을 떠나지 않고 서로 인사를 나눴다.

 

▲ 모든 순서가 마치고, 백주념기념관 앞에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브라운워십이 토크 콘서트를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노랫말에는 작은 교회 운동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사진은 브라운워십의 안내에 따라 사람들이 율동을 따라하는 모습을 찍었다. 이때 부른 노래는 적은 음식이라도 서로 나눠 먹고 보살피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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