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성 원장은 9월 14일부터 10월 5일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매일 아침 8시에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동조 단식을 한 김홍술 목사(59·애빈교회)와 방인성 목사(61·함께여는교회)의 건강 검진을 위해서였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매일 아침 8시, 광화문광장에 나타나는 의사가 있었다. 조계성 원장이다. 조 원장은 9월 14일부터 10월 5일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광장을 찾았다. 세월호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을 위해 동조 단식을 하고 있던 김홍술 목사(59·애빈교회)와 방인성 목사(61·함께여는교회)의 건강 검진 때문이었다. 조계성 원장은 신림에 일신연세의원을 개업하여 10년째 운영하고 있다. 현재 기독청년의료인회 회장이다. 목동에 있는 산돌교회 집사이기도 하다. 두 목사의 40일 단식이 끝난 후 10월 8일 점심, 일신연세의원에서 조계성 원장을 만났다. 그동안 두 목사를 의사로서 지켜본 조계성 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 김홍술 목사와 방인성 목사의 건강 검진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지승룡 목사님의 소개로 검진을 시작했다. 지 목사님과는 페이스북 친구인데, 어느 날 메시지가 왔다.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하는 두 목사님이 있는데 검진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처음에는 부담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단식하는 사람의 진료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들을 맡아도 괜찮을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나이도 많으신데 40일씩이나 단식을 한다니 겁난다'가 처음 든 생각이다.

- 두 목사의 진료가 부담스러웠겠다. 그런데 어떻게 진료를 계속하게 되었나.

9월 14일, 처음 두 목사님을 만났을 때 생각이 바뀌었다. 이분들을 도와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깐, 나에게 맡기셨겠지. 기도하면서 열심히 해야지'라는 편안한 생각을 했다. 같이 두 목사님을 만나러 갔던 남편도 "도와 드려야 하지 않겠나"라고 해서 용기가 생겼다. 아마 내 생각엔, 방문한 첫날 목사님들은 '지나가는 사람이 왔구나' 했을 것 이다. 진료를 매일 오니, 두 목사님은 나를 괜찮다고 생각한 것 같다.

- 매일 아침 신림동에 있는 병원으로 출근하기 전, 광장에 들른 것으로 안다. 힘들지는 않았나.

처음에는 저녁에 갔다. 저녁에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본래 환자랑 의사는 조용하게 만나야 한다. 그래서 환자가 속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환경이 그럴 수가 없었다. 또 몇 번을 방문하니 두 목사님이 나를 종일 기다리는 느낌도 받았다. 그래서 두 목사님이 기다리지 않게 아침에 가서 진료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후로는 아침 8시에 방문했다. 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라서, 학교에 일찍 간다. 나는 딸을 학교에 보내고, 집 근처 지하철역인 오목교에서 차를 타고 광화문에 갔다. 그런데 진료를 마친 후, 신림에 있는 병원까지 지하철을 타 보니 한 시간이 걸렸다. 원래 진료 시간이 9시인데, 9시 30분에 도착을 했다. 병원에는 어린이집 가는 아이들, 직장 나가는 사람들, 할아버지, 할머니 등 환자들이 나를 기다렸다. 진료 시간이 늦어지니 환자가 화를 많이 내기도 했다. 그래서 택시를 탔다. 20분이 단축되어, 10분만 지각해도 됐다. 후로는 출근할 때 주로 택시를 탔다.

- 두 목사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진료했는데,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나.

보통 사람은 며칠만 단식해도 기운이 없어 정신을 못 차리고 누워 있을 텐데, 목사님들이라 그런지 달랐다. 나는 두 목사님이 힘이 들까 봐 길게 대화를 하지 않고, 단답식 질문만 하려고 했다. 그런데 두 목사님은 기운도 없을 텐데,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랬다. 심지어 나보다 말을 더 많이 하시기도 했다.

보름 이상을 진료했다. 나는 아침에 목사님들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검진 끝나고 하는 기도가 참 좋았다. 두 목사님이 종종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내가 목사님들의 건강을 걱정하면, "먼저 하나님의 의와 나라를 구하라. 그러면 된다. 건강이 우선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검진을 마친 후에는 늘 같이 기도했다. 기도하면서 눈물을 자주 흘렸다. 기도는 내가 하기도 하고, 묵상기도를 하기도 했다. 가끔은 광장에 함께 있는 목사님들이 눈물로 기도해 주셨다. 사람들의 그런 기도가 매우 큰 힘이 되었을 것 같다. 분명 두 목사님도 힘이 드셨을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들은 무엇보다 우리의 단식이 아니라, 세월호에 관심을 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매일 아침, 광화문광장을 찾아 김홍술·방인성 목사를 진료한 조계성 원장. 적지 않은 나이에 40일 단식에 나선 두 목사의 건강을 돌보는 게 처음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단식이 끝난 이제는 이들이 얼마나 한 뜻으로 단식을 이어 가고 있는지 보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지난 날을 기억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 건강 검진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

단식 중간에 방인성 목사님이 목욕탕에서 쓰러졌단 이야기에 놀랐다. 그런데도 중단하지 않고 끝까지 단식을 마치셨다. 꿋꿋하게 마음을 지켜 가신 것이다. 건강을 유지하는 가장 첫 번째 조건이 그것이다. 두 목사님은 마음과 정신을 잘 가다듬고 단식을 했다. 목적이 분명하셨던 것 같다. 나약함을 보여 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두 목사님은 기도하는 마음으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모습이었다. 김홍술 목사님은 강하고, 방인성 목사님은 유연했다. 두 목사님 모두 굉장한 의지를 갖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오히려 우리가 너무 나약하게 봤다. 아마도 두 목사님은 하나님이 그렇게 나약한 분이 아님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다.

- 10월 5일 두 목사가 단식을 마쳤다. 그런데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은 아직도 제자리이다.

세월호 가족과 공감이 부족해서, 해결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들과 눈물 흘리고, 함께 손을 잡아 주는 공감의 부족이다. 예수가 있었다면 정치적 싸움이 아닌, 공감을 하셨을 것이다. 기독교인이 먼저 '그리스도인다움'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정말 연민과 공감으로 이 문제를 품을 수 있다면, 사회가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겹다는 말을 한다.

해단 예배에서, 방인성 목사님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월호는 정치적 관점에서 볼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의 싸웠던 방식이 아니라, 예수가 했던 방식을 잘 기억하자고 했다. 예수가 십자가상에 있는 그 모습은 나약해 보일 수 있으나, 결코 나약한 모습이 아니었다.

▲ 10월 8일 저녁 조계성 원장은 김홍술 목사와 방인성 목사가 입원해 있는 녹색병원으로 향했다. 조 원장은 손목이나 발목에 착용할 수 있는 0.5kg의 모래주머니를 각각 2개씩 준비해서 병원을 찾았다. 김홍술 목사와 방인성 목사는 조계성 원장이 병실에 도착하자 환하게 웃었다. 조계성 원장이 선물로 준비한 모래주머니를 손목과 발목에 착용해 보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조계성 원장은 두 목사가 단식을 마친 후, 10월 6일부터 검진을 안 가니 많이 허전하다고 했다.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쫓겨서 조금 힘들기도 했지만, 참 행복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한 10월 8일 저녁 조계성 원장은 병원 진료를 마친 후, 두 목사가 입원해 있는 녹색병원으로 향했다. 두 목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동행한 기자에게 묻기도 했다. 조 원장은 손목이나 발목에 착용할 수 있는 0.5kg의 모래주머니를 각각 2개씩 준비해서 병원을 찾았다. 모래주머니를 차고만 있어도, 기초대사량이 늘어나고 근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조계성 원장이 병실에 도착했다. 김홍술 목사와 방인성 목사는 조 원장을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먼저 서로를 포옹했다. 3일 동안 병원에서 두 목사를 간병한 사람은 조계성 원장의 방문을 그 누구 때보다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했다. 두 목사는 신이 나서, 그동안 검진받았던 이야기, 식사를 잘 하고 있다는 이야기, 또 매일 못 봐서 아쉽다는 이야기 등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이야기했다. 조계성 원장은 그동안 두 목사를 진료하면서, 너무 행복했다고 했다. 김홍술·방인성 목사는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퇴원하면 꼭 다시 보자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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