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22일 예장백석 총대들이 예장대신과의 교단 통합을 기립 박수로 결의하는 모습. 2014년 총회 역시 장로교단을 중심으로 교단 통합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다. 예장백석과 예장대신이 교단 통합에 이르는 듯했지만, 예장대신 전광훈 총회장의 일방적인 합의서 파기로 두 교단의 통합은 불투명해졌다. 교계 관계자들은 교단 통합 논의가 파행을 거듭하는 이유로 △교단 통합을 교세 확장, 재정 문제 해결을 위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점 △교단 지도층의 계속되는 기득권 다툼 등의 이유를 들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었다. 총회를 앞두고 교단 통합을 위한 추진 위원회는 지속적인 모임을 열고, 총회에 보고할 세부 조항을 확정했다. 이번에야말로 '주류 교단'의 교단 통합이 가시화했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소문만 무성할 뿐,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이번 총회에서 교단 통합을 결의한 곳은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예장백석·장종현 총회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신(예장대신·전광훈 총회장)이다. 양 교단은, 앞서 교단 통합 논의가 5번이나 무산된 바 있다. 통합 결의는 예장대신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9월 15일부터 18일까지 새중앙교회수양관에서 49회 총회를 개최한 예장대신은 총회 대부분 시간을 백석 총회와의 통합 논의에 할애했다. 전광훈 총회장은 백석과의 통합을 밀어붙였지만, 일부 총대들은 교단 통합이 아닌 '흡수'가 될 공산이 크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총회 마지막 날인 9월 18일, 전광훈 총회장의 끈질긴 설득 끝에 예장대신은 백석과의 '조건부' 통합을 결의했다. 전광훈 총회장은 4개 항을 조건으로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조건 4개 항은 예장대신 측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9월 19일 장종현 총회장과 전광훈 총회장이 결의한 통합 합의서는 대신 총회에서 결의한 조건과는 달랐다. 예장백석은 총회 첫날인 9월 22일 예장대신과의 교단 통합 논의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통합 조건은 대신 측의 4개항이 아닌, 9월 19일 합의서에 기초했다. 두 교단은 서로 다른 조건의 교단 통합을 결의한 꼴이 됐다. (관련 기사: 백석-대신 통합, 기립 박수 만장일치 결의)

대신 총대들은 즉각 반발했다. 대신 총회 내부 인사들은 양 총회장의 합의서가 알려진 후 "총회 결의와 헌법을 무시한 굴욕적 통합 논의를 즉각 중단하라"고 성토했다. 예장대신 전 총회장단은 9월 27일 백석 총회와의 통합 선언은 원천 무효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일부 총대들은 대신교단바로세우기협의회를 구성해 "불법과 거짓 통합을 인정할 수 없다. 계속해서 통합을 추진한다면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통합을 밀어붙이던 전광훈 총회장은 결국 예장백석과의 합의서를 파기했다. 내부 논란을 잠재우지 못한 전광훈 총회장은 직전 총회장인 최순영 목사와 만나 통합 문제를 재논의했다. 회의 끝에 두 목사는 백석 총회가 대신 총회의 조건부 4개 항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통합에 응하지 않겠다고 10월 1일 선언했다. 결국 어느 한쪽에서 통 큰 양보를 하지 않는 이상, 양 교단 통합 결의는 없던 일이 될 공산이 커졌다. (관련 기사: 백석-대신 통합 물 건너가나)

내부 갈등에 휩싸인 예장대신과는 다르게 예장백석은 경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백석 총회 한 노회장은 "통합이 급한 건 대신이지 우리가 아니다. 대신은 직영 신학교도 없는 상황이다. 재정 상황도 썩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백석 총회는 양 총회장의 합의서에 따라 통합을 결의했다. 우리 쪽에서도 많은 반발이 있었다. 대신 측의 무리한 요구를 수용하면서까지 통합을 추진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고신·합신, 교단 통합 잠정 중단…예장합신, 합동추진위원회 해체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예장고신·김철봉 총회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예장합신·우종휴 총회장)의 통합 논의는 잠정 중단됐다. 이번 총회에서 예장고신은 합동추진위원회(추진위)를 남겨 뒀지만, 예장합신은 추진위를 해산했다. 예장고신은 교단 통합 후 교단 정체성을 맞춰 나가자고 한 반면, 예장합신은 정체성을 맞춘 후 교단을 통합하자는 분위기가 확산돼 있었다. 이로써 지난 3년간 진행됐던 양 교단의 통합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예장고신과 예장합신은 2011년 12월부터 교단 통합 논의를 시작했다. 당시 양 교단 총회 임원들은 추진위를 구성하고 교단 통합을 위한 물밑 작업을 활발히 진행했다. 양 교단은 △개혁주의 신학 표방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교리 문답을 신조로 채택 △고 박윤선 목사로부터 이어져 오는 신학적 뿌리가 같다는 데 동의했다.

교단 통합 논의는 3년간 답보 상태에 머물렀다. 형식적인 교류는 지속했지만 통합을 위한 구체적인 내용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추진위는 "잘 진행되고 있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99회 총회에서도 예장고신 총대들은 "교류만 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진행하라"고 추진위에 촉구했다. 하지만 추진위 서기 배굉호 목사는 교류를 통해 한 단계씩 추진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교단 통합을 먼저 제안한 고신 측은 적극적인 자세로 통합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하지만 고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세가 약한 합신 측은 '통합'이 아닌 '흡수'를 우려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예장합신은 여전히 신중한 모습이었다. 예장합신 총대들 사이에서는 교단의 정체성을 부인한 채 다른 교단과의 통합을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여론이 팽배했다. 결국 추진위는 해체됐다. 하지만 우종휴 총회장을 비롯한 일부 총대들은 외부의 시선을 의식해 합신·고신·대신 '3개교단하나됨을위한교류추진위원회'의 구성을 가결했다. 이마저도 대신이 백석과 통합한 마당에 대신을 교류 대상에 포함시킬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나와 총회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연합 운동 취지 흐려져…"세 불리기라는 비판 피하기 어려울 것"

교계 인사들은 교단 통합 논의가 본래 취지에서 멀어졌다는 비판적인 견해를 보였다. 정재영 교수(실천신대)는 "대신과 백석, 고신과 합신의 상황이 서로 다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네 교단이 통합을 논의하는 이유가 한국교회의 공동체성·공공성 회복 차원은 아니다"라고 했다. 정 교수는 "한국교회의 분열의 이유는 신학적 갈등이 아닌 정치적 이유였다. 교단 통합 역시 정치적인 이유로 진행되고 있어 연합 운동의 본래 취지에서 멀어졌다"고 했다. 한국교회의 연합 운동과 통합 노력은 꼭 필요하지만, 현재의 통합 시도는 각 교단의 세 불리기 차원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교단총회공동대책위원회 구교형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는 10월 6일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2014년 교단 총회 참관 결과를 발표했다. 구 목사는 네 교단 모두 역사와 신학이 유사한 교단들이 연합의 정신 아래 하나가 된다는 표면적 취지를 내걸었다고 했다. "합신과 고신은 교단 통합을 위해 수많은 교류와 연구 기간을 거쳤다. 그런 점에 있어 통합은 실패했지만 긍정적이다"라고 했다. 하지만 백석과 대신의 통합은, 양 총회장이 결의한 합의서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교회 세 불리기라고 말했다. 그는 힘의 논리로 한쪽이 한쪽을 흡수하는 것은 기업의 합병 방식이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연합 방식은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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