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단원고 2학년 5반 고 이창현 군의 어머니 최순화 씨를 만났다. 벌써 3번째 만남이다. 그동안 만났던 세월호 유가족 중, 일부 기독교인은 더러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었다. 신앙인이기 때문에 4·16참사를 받아들이기가 더 어렵다는 사람도 있었다. 만날 때마다 단정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던 최순화 씨는 어떨지 궁금했다. 그동안 인터뷰를 꺼리던 최순화 씨가 인터뷰에 응해 주었다.

고 이창현 군은 4월 17일 저녁 7시 45분에 발견된 11번째 사망자였다. 세월호에서 200미터 떨어진 곳에서 어부들이 발견했다. 그 후 해병이 인도했다. 18일 새벽 1시경, 시신을 실은 구급차가 진도체육관에 도착했다. 당시 체육관에는 최순화 씨의 식구 8명과 출석하는 교회 담임목사가 같이 있었다. 대학교 1학년인 딸이 창현이를 알아보았다. 바로 안산에 가서 장례를 치렀다.

▲ 단원고 2학년 5반 고 이창현 군의 어머니 최순화 씨를 만났다. 창현 군은 최근 엄마 꿈에 나타났다. 꿈에서도 아들이 죽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진실을 밝히려는 부모의 노력이 옳다고 말하기 위해 찾아왔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최순화 씨가 광화문광장 집회에서 발언하는 모습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4·16참사 이후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벌써 10월이 되었다. 처음에 나는 정리가 빨리 될 줄 알았다. 다른 집은 아직 사망 신고 안 한 집도 있다. 하지만 나는 참사 이후 곧 사망 신고를 했다. 정리가 빨리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착각이었다. 최근 가장 힘들었던 것이 있다. 건강보험증이 새로 온 것이다. 그런데 거기에 창현이 이름이 없었다. 충격을 받았다. 창현이의 죽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슬프고, 더 힘들다.

- 광화문광장, 청운동주민센터에서 자주 봤다. 대학교 강연도 다니는 줄 안다.

평일(월요일부터 금요일)에는 진상 규명을 위해 여기저기 다니고 있다. 남편과 청운동주민센터에 자주 간다. 남편은 그곳에 주로 있다. 거기서, 대통령 면담 신청서를 내러 청와대에 간다. 그러다 종종 경찰과 대치하기도 한다. 나는 대학교에 찾아가서 강연도 하고, 얼마 전에는 광화문광장에서 발언도 했다.

- 광화문광장에서 발언할 때, 꿈에 창현이가 나왔다고 들었다.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최근 한 교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을 초청했다. 교회에서 십자가 목걸이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책을 선물해 주었다. 그날은 선물 받은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는데, 창현이가 나왔다. 꿈속에서도 창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창현이가 집에 온 것이다. 바로 잠에서 깨고 한 생각이 들었다. 창현이가 꿈에 나온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와 남편이 진상 규명을 위해 애쓰는 것이 옳다고 말해 주기 위해서, 창현이가 온 것 같다.

▲ 올 초, 처음으로 간 가족 여행에서 찍은 사진이다. 창현 군의 누나는 세월호 침몰 이후 11번째로 발견된 동생의 시신을 알아봤다. 곧바로 장례를 치르고, 사태가 마무리될 줄 알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족들이 겪고 있는 고통은 그대로다. (사진 제공 최순화)

-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해 열심인 것 같다.

남편과 나는 생업도 포기하고 진상 규명에 매달리고 있다. 그래도 중심은 잃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분통 터지는 일은, 여당이나 야당이 진상 규명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관심조차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함께해 주는 국민이 있어서 희망을 있다고 본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도 있지만, 진실이 반드시 드러나리라고 믿는다. 국민 모두가 세월호 참사의 현장을 목격한 증인들이다. 그 증인들, 특히 기독교인이 함께 목소리를 크게 내 주었으면 좋겠다.

-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고 있나.

참사 이후에도 주일예배는 빼놓지 않고 남편과 함께 참석한다. 출석하는 교회 유·초등부 총무를 하고 있다. 그래서 토요일과 주일은 교회에서 보낸다. 유·초등부 살림을 거의 내가 다 도맡았다. 교사를 그만두지 않은 것은 중심을 잃고 싶지 않아서이다. 지나치게 진상 규명에 치우치고 싶지는 않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진상 규명을 위해 다니지만, 주말에는 교회에 있다. 평일에도 하나님 생각을 하지 않고 진상 규명에만 매달리면 분노가 차오른다. 그래서 항상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려고 한다.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최순화 씨가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다. 주중에는 진상 규명을 위해 이리저리 뛰고, 주말에는 교회 주일학교를 섬기고 있다. 최순화 씨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보다 세월호 참사를 왜곡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원망스럽다. (사진 제공 최순화)

- 하나님에 대한 원망은 없나.

하나님에게 원망은 없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조건 선하다는 명제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세월호 참사가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 아니고, 악의 세력이 한 것이다. 원망은 없다. 그저 일주일 정도 기도원에 다녀오고 싶다. 하나님 앞에 가서 며칠을 울고 싶다.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원망보단, 기독인들에 대한 반감이 있다.

- 기독인들에 대한 반감은 어떤 것인가.

지금은 광화문광장이나 여러 현장에서 목사들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 참사 초기와 사뭇 달라졌다. 하지만 참사 초기에는 기독인들이 많이 무관심했다. 큰 교회 목사들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또 일부 목사들은 유가족의 입장이 아닌, 자신들의 입장에서 참사를 해석하고, 그 입장을 강요하려고 한다. 또 나는 남편과 함께 진상 규명을 애쓰고 있는데, 어느 목사는 이 일을 그만두라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많이 힘들다.

- 참사 이후, 신앙생활에 변화는 없었나.

돌아보니, 내가 이전에 추구했던 가치들이 다 욕심이었다. 자식을 위해 했던 기도 제목들을 살펴봐도 그렇다. 자식이 잘되게 해 달라고 떼를 썼던 것 같다. 4·16참사 이후, 내가 많이 변했다. 그동안 교회 안에만 있어서 너무 몰랐던 부분이 많았다.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과 더 가까이 있는 것 같다. 그동안은 너무 몰랐다. 교회와 집만 왔다 갔다 하느라 세상을 바라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교회 안에 있으면 너무 모르게 되는 것 같다. 그게 전부인 것처럼, 잘하는 것처럼 사는 것이다. 교회에서 말하는 예수 잘 믿는 모습은, 정말로 예수를 잘 믿는 것이 아닌 것 같다.

- 무슨 의미인가. 교회가 말하는 '예수 잘 믿는 것'과 실제는 어떻게 다르다는 의미인가.

교회에서 목사는 예수를 잘 믿는다는 것을 마치 교회 생활을 잘하는 것쯤으로 말하는 것 같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금 잘하라고 하는 것 등이다. 한국교회는 '전도, 전도, 전도'를 외친다. 그런데 마치 그 모습이 정부에서 '성장, 성장, 경제 성장'를 외치는 것과 동일하게 들린다. 정말 영혼을 사랑해서 전도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교세 확장을 위한 외침으로 들린다.

최근 세례요한이 많이 생각난다. 세례요한은 헤롯 왕에게 말 한마디 잘못해서 목숨을 잃었다. 세례요한처럼, 그렇게 '정부를 향해 외칠 수 있는 목사는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 마지막으로, 창현이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창현아, 너는 엄마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괜찮은 아이였어. 그거 몰라줘서 미안해. 너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아이였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정말 빨리 천국에 가서 만나고 싶다. 엄마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일 핑계 대지 않고, 열심히 하면 빨리 만날 수 있겠지. 빨리 보고 싶다. 

▲ 최순화 씨는 아들을 잃고, 세상에 아픈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교회와 집밖에 모르던 그에게 큰 변화였다. 어서 아들을 만나고 싶지만,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일을 해내겠다고 창현 군에게 약속했다. (사진 제공 최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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