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 사실을 고발하는 책 <숨바꼭질>(대장간) 편집팀은 10월 6일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전병욱 목사는 "무엇"에 숨어 있나?'라는 주제로 출간 포럼을 개최했다. 편집팀은 포럼 개최 이유를 "진실이 만천하에 공개됐음에도 그에 대한 징계(치리)가 없는 이유와 전 목사를 숨겨 주는 세력의 실체를 밝히기 위함"이라고 전했다. ⓒ뉴스앤조이 유재홍

'스타 목사'였던 전병욱 목사의 불편한 진실을 다룬 책 <숨바꼭질>(대장간)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주요 도서 판매 사이트에서 종교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출간된 지 한 달이 채 안 돼 1쇄 2000부가 다 나갔다. 책은 총 6장으로 구성됐다. △전 목사가 저지른 성추행의 실체 △성추행을 당한 여성들의 증언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의 노회와 삼일교회의 안일한 대처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과 칼럼 등이 담겨 있다.

<숨바꼭질> 출간을 기념해 '전병욱 목사는 무엇에 숨어 있나'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온라인 카페 '전병욱목사진실을공개합니다' 운영자이자 <숨바꼭질> 책임 편집자인 이진오 목사는, 이번 포럼의 목적이 전 목사의 성범죄 실상을 세상에 알리고 그의 징계를 막고 있는 자들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함이라고 전했다. 포럼은 10월 6일 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진행됐다.

조에홀에는 포럼 시작 30분 전부터 2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 교계의 높은 관심을 대변했다. 기자들 외에도 신학생, 목회자, 교인 등 40명가량의 참석자가 자리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포럼 주제인 <숨바꼭질>을 훑어봤다. 어떤 이들은 조에홀 앞에 설치된 판매 부스에서 직접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포럼은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의 사회로 진행됐다. 패널로는 전병욱 목사가 소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합동) 평양노회 신동식 목사, 여신학자 강호숙 박사(총신대), CBS 시사 프로그램 크리스천NOW 진행을 맡았던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앞서 말한 이진오 목사, 삼일교회 장로가 나섰다.

포럼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처음 30분간은 각 패널의 기조 발언이 있었다. 이진오 목사, 삼일교회 장로, 신동식 목사, 강호숙 박사, 김응교 교수는 각각 △<숨바꼭질> 내용과 출판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삼일교회의 전병욱 사태 수습 과정과 내부적 어려움 △평양노회의 상황과 치리 여부 △여성 신학자의 측면에서 본 전병욱 사태 △평신도의 입장에서 본 전병욱 사태와 한국교회의 성 문제에 대해 발표했다. 패널들의 기조 발언 이후에는 전병욱 목사의 징계 여부와 재발 방지책을 놓고 자유롭게 토론했다. 포럼은 중간 휴식 시간 없이 2시간 연속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고 패널들의 대화에 집중했다.

▲ 패널들은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적인 회개 없이 여전히 '목사'로 불릴 수 있는 여러 이유에 대해 토론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진오 목사 (<숨바꼭질> 책임 편집자), 강호숙 박사(총신대), 신동식 목사(평양노회 소속 빛과소금교회), 김응교 교수(숙명여대), 삼일교회 장로. ⓒ뉴스앤조이 유재홍

"삼일교회가 평양노회 압박해야"…"노회 내 전병욱 비호 세력 많아"

포럼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주제는 전병욱 목사의 징계 여부였다. 삼일교회 교인들과 '전병욱목사성범죄기독교공동대책위원회'를 비롯한 시민단체는 2012년 이후로 예장합동 총회와 평양노회에 지속적으로 전병욱 목사의 목사직 박탈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평양노회는 절차상의 이유를 들며 안건을 상정조차 하지 않았다. 징계 청원은 4번이나 무산됐다. <숨바꼭질>이 출판된 이후 전병욱 목사를 징계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자 평양노회는 9월 29일 전병욱 목사 징계 청원서를 정식 안건으로 채택했다. 10월 13일 열리는 평양노회 정기 노회에서 전병욱 목사의 치리 여부가 결정된다.

패널들은 서로 엇갈린 전망을 내놨다. 이진오 목사는 이번에 반드시 징계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루어질 것으로 봤다. 그는 삼일교회가 평양노회를 압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일교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 시선이 있다. 교회가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교회가 공동체라고 한다면, 담임목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닌 삼일교회 전체의 문제로 생각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만여 명의 삼일교회 교인들이 평양노회를 압박한다면 징계안은 반드시 통과될 수 있다고 했다.

삼일교회 장로는 이진오 목사의 의견에 동의했다. 삼일교회 내부적으로 의견이 일치되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교인들 사이에 전병욱 사태를 자기 일로 인식하는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는 1만 명 이상의 교인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교인들의 인식 전환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고, 교회가 아직 안정 단계로 들어서지 못한 점을 감안해 달라고 했다.

또한 전병욱 목사 징계안이 노회에서 처리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평양노회 목사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했고 긍정적인 답변을 얻었다고 했다. 이번에 당회가 올린 안건은 치리 청원이 아닌 정식 고소 사건이기 때문에 평양노회에서 안건을 반려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평양노회 소속 신동식 목사는 평양노
회 안에 여전히 전병욱 목사를 두둔하는 세력이 많다고 했다. 자신도 전병욱 목사 치리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여러 중진 목사들이 전병욱 목사 징계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다고 했다. 여러 중진 목사들의 얘기를 들어 봤을 때 목사 면직 처분은 어렵지 않겠냐며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그는 징계안 상정이 번번이 좌절된 이유는 내부 '정치 세력'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상당히 오랫동안 사실이냐고 묻는 노회원들이 많았다. 지금도 많은 노회원들이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는 세력에 의해 안건 상정이 매번 기각됐다. 그들은 성범죄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쌍방 대질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질 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들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목사직 면직 처분은 어렵다고 주장한다"고 했다. 쉽진 않겠지만 이번 노회 이후에 평양노회가 둘로 나뉠 가능성이 크다며, 삼일교회와 시민단체가 끝까지 힘을 모아 평양노회를 압박해야 한다고 했다.

예장합동, 신학·교회·정치 모두 남성 중심…면직 사유에 '성범죄' 명시해야

패널들은 전병욱으로 상징되는 한국교회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강호숙 박사는 예장합동의 비성경적 여성관을 지적했다. 예장합동은 철저히 남성화된 교단이라며 신학·교회·정치 모두가 남성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는 "성경의 일부 구절을 근거로 여자들에게는 침묵과 희생을 강조한다. 여성을 경시하는 발언이 만연하다. 이러한 교단 내 분위기가 성범죄를 방관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교단 헌법 면직 조건에 성추행·성폭행 등을 명시해야 한다고 했다.

패널들은 강 박사의 의견에 공감했다. 김응교 교수는 일본의 사례를 들며 성범죄에 무감각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지적했다. 그는 일본 사회가 성에 개방적이지만, 성범죄를 처벌하는 데는 철저하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더라도 한 번의 성범죄로 직장에서 파면되는 등 사회에서 더는 활동할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그는 "성범죄 처벌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 성범죄를 저지르면 내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으켜야 한다"고 했다. 김종희 대표 역시 교단 헌법에 허점이 많다고 했다. "교단 헌법을 목사들이 만들 것이 아니라, 법학자나 전문가들이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목을 스스로 조이는 일이기 때문에 회피하고 있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전병욱 사건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했다. 하지만 책 출판과 전병욱 목사 징계가 너무 늦은 감이 있다며 아쉬워했다. 교회 집사인 김진욱 씨(36)는 전병욱 목사의 면직 여부도 중요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방지책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신대원에 재학 중인 이병진 씨(28)는 지인 중에 여전히 전병욱 목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면직 처분이 이루어져 목사는 물론 한국교회 모든 구성원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 줘야 한다고 했다. 

▲ 패널들의 기조 발언과 토론 후에는 참여자들의 자유 발언 시간이 30분간 주어졌다. 참석자들은 안타깝지만, 더는 평양노회에 희망을 걸 수 없다고 말했다. 범교단 차원에서 목회자의 성범죄 사건을 치리할 수 있는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또 전병욱 목사의 성범죄 사실이 알려진 후에도 계속 함께 활동했던 규장 출판사는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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