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5일,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하이 서울 페스티벌' 때문에 광화문 일대는 하루 종일 많은 인파가 몰렸다. 날씨도 전날보다 많이 따뜻해져서 가족 단위로 나온 관광객들이 많았다. 김홍술·방인성 목사는 42일·40일째 단식을 이어 가고 있다. 이날은 두 목사의 단식을 마무리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40일 단식 해단 및 안전한 사회를 촉구하는 기독인 연합 예배'가 열렸다.

▲ 함께여는교회 교인들이 주일예배가 끝난 후 삼삼오오 짝을 지어 방인성 목사를 찾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예배 시작 전부터 동조 단식 천막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갔다. 방인성 목사를 보기 위해 주일예배를 마치고 함께여는교회 교인들이 왔다. 김홍술 목사가 어제부터 물조차 입에 대지 않고 단식 중인 사실을 알고 그가 걱정되어 온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두 목사가 이번 단식을 하는 동안 매일 아침 그들의 건강 상태를 살펴 온 조계성 원장(일신연세의원)은 하루 종일 단식 천막에 상주하며 긴급 상황에 대비했다.

방인성 목사와 김홍술 목사는 원래 해단 예배가 끝남과 동시에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홍술 목사가 이마저도 거부하고 자신은 쓰러질 때까지 계속 단식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방인성 목사는, 그렇다면 10월 6일 새벽 6시까지 함께 있을 테니 같이 병원에 가자고 설득해 허락을 얻어 냈다. 40일을 함께한 동지를 광화문광장에 혼자 놓고 병원에 갈 수는 없어서다.

▲ 조계성 원장은 10월 5일, 광화문광장 동조 단식 천막에서 상주하며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긴급 상황에 대비했다. 오후 2시, 조 원장은 김홍술 목사의 혈당이 위험 수준인 69를 가리키자 119 구급대와 수액을 준비했다. 김 목사는 아직까지는 괜찮다며 결국 수액을 거부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예배 시간 오후 4시가 되자 광화문광장은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도 있고, 나이 지긋한 어른들도 보였다. 방인성 목사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함께했다.

해단 예배는 양희송 대표(청어람ARMC)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예배를 시작할 때는 약 150명 정도가 앉아 있었지만, 끝날 무렵에는 자리가 없어 서서 예배를 보는 사람까지 약 400명으로 늘어났다.

▲ 10월 5일, 단식 해단 예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100일이 안 된 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모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설교를 맡은 박득훈 목사(새맘교회)는 먼저 두 목사에게 사랑의 인사를 전했다. 그는 울음을 참기 위해 한동안 말을 멈춰야 했다. 박 목사는 단식을 마무리하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했다. 예수님도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영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단식을 하신 점을 상기시켰다. 박득훈 목사는 김홍술·방인성 목사가 오랜 기간 단식함으로 지켜보는 우리 모두를 준비시킨 것이라고 했다.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함께하자는 말로 설교를 끝맺었다.

▲ 방인성 목사가 예배 중간에 발언하고 있다. 그는 정치인이나 유명한 사람 등에 기대지 말고 우리 국민이 일어나야 한다고 했다. 방 목사는 맘몬의 고리를 끊어야 남북의 평화가 찾아올 수 있다고 호소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예배 중간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 조헌정 목사(향린교회)의 지지 발언도 있었다. 이어 휠체어를 타고 앞으로 나온 방인성 목사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그는 예수님이 이전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길을 걸으셨다고 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맘몬의 힘을 이기려면 모두가 낮아지고 허울을 벗어 버려야 한다고 외쳤다. "예전에 투쟁하던 방법 다 내려놓고, 순교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유명 인사들을 의지할 것도 없고 우리 국민·민중이 일어나야 합니다. 맘몬의 고리를 끊어야 합니다." 울음이 가득 섞인 목소리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우렁차고 호소력 있는 목소리였다.

발언을 마치고 다시 자리로 돌아온 방인성 목사는 당 조절을 위해 늘 마시는 이온 음료부터 마셨다. 이제 단식 막바지라 짧은 발언에도 에너지 소모가 큰 듯했다. 원래 예배가 끝나면 참석자들과 김홍술·방인성 목사는 함께 청와대까지 행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조금만 무리해도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사의 경고에 결국 행진은 포기했다.

▲ 예배를 마치고 참석한 사람들은 세종로를 따라 청운동까지 행진을 시작했다. 함께 행진하는 사람들 중에는 광장에서 나눠 준 '안전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요'라고 쓰인 노란 풍선을 든 아이들도 많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결국 두 목사는 광화문에 남고 나머지 사람들만 청와대까지 행진하기로 했다. 광화문에서 세종문화회관, 정부종합청사, 경복궁역을 지나 청운동주민센터 앞까지 가는 코스였다. 최욱준 사무총장(성서한국)이 나무 십자가를 들고 행렬의 맨 앞에 섰다. 예배에 참석한 기독교인들은 찬송을 부르며 행진을 이어 갔다.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행렬의 선두 그룹을 경찰 한 무리가 가로막았다. 더 이상 행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더 가려고 하는 기독교인들과 벽을 쌓아 막고 있는 경찰 사이에 잠시 실랑이가 벌어졌다. 행진하는 기독교인을 '채증'하기 위해 경찰에서는 카메라 여러 대를 들이댔다. 결국 두 진영은 목사 15명만 보내 주는 조건으로 타협했다.

최욱준 사무총장이 노란 천을 두른 나무 십자가를 앞에 들고 나머지 목사들이 뒤를 따랐다. 열댓 명이 되는 남성들이 큰 목소리로 찬송을 부르면서 걸어가니 지나가는 행인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눈길로 이들을 바라봤다. 청와대로 향하는 골목길은 모두 경찰이 가로막고 있었다.

청운동주민센터 앞에 도착하자 또 다른 난관이 봉착하고 있었다. 오늘 예배에서 발표한 성명서(하단 전문)를 청와대 민원실에 제출하려고 했으나 15명 모두를 들여보낼 수는 없고, 2명만 청와대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박득훈·조헌정 목사가 준비된 경찰차를 타고 청와대에 가서 성명서를 전달하고 돌아왔다.

▲ 청와대까지 가는 길에도 목사들은 끊임없이 찬송을 불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노란 십자가를 보고 어리둥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성명서는 박득훈·조헌정 목사만 청와대 경내로 들어가 제출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광화문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기독교인들이 유가족과 대화를 나누기 원해 정부종합청사 앞 소공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단원고 2학년 고 김재훈 군의 아버지 김기현 씨는 세월호가 침몰했을 당시 정부 기관들은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노력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던 제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른 평범한 가정에게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이 꼭 필요합니다"라고 했다. 

"유가족이 동의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과 진실 규명을 촉구합니다"

2014년 4월 16일 고난주간 수요일에 만난 세월호 참사는 우리 모두를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대로 이끌었습니다. 부모 잃은 자식들과 자식 잃은 부모들의 슬프고 슬픈 사연이 한국사회를 휘감았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참사의 목격자로서 전후좌우로 빈틈없이 작동한 자본의 논리와 무정한 권력 앞에 분노하고 또 분노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이제 여섯 달이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 우리는 참사로부터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한 채 한국 사회의 총체적 무기력과 무능력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던 국가와, 늘 비상사태라며 사회를 윽박지르던 이들은 오히려 유가족들에게 이 모든 사회적 절망의 책임을 전가하는 가운데 46일에 걸친 유가족 김영오 씨의 단식이 우리의 양심과 책임감을 일깨웠습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의를 행하고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이 참혹한 시대를 기억하며 참사 후부터 현재까지 광화문과 청운동에서 예배하고, 광장에서 단식하고, 일인 시위하며 정의와 생명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가족의 뜻을 이은 김홍술, 방인성 두 목사의 단식이 10월 5일로 예정한 40일을 맞이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밝혀지거나 해결된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습니다. 40일 단식은 오늘 이 자리에서 마무리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다시 광화문에 모였습니다. 우는 자들의 눈물이 그치는 날까지, 침몰한 정의가 세상을 다스리는 날까지 우리는 모이고, 외치고, 기도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유가족이 동의하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모든 진실이 온전하게 규명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 한국 사회와 한국교회에 다음과 같이 엄중히 촉구합니다.

1. 여야 정치권에 촉구합니다. 세월호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여야 누구도 유가족들의 의견과 동의를 무겁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특별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정치권은 자신들이 대변해야 할 시민들과 유리된 채 자신들만의 정치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여야 정치권은 정파적 이익을 떠나 유가족뿐 아니라 국민의 의구심을 해소할 법과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규명하는 일에 최우선으로 나서기를 촉구합니다.

2. 정부에 촉구합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전과 후로 똑똑히 드러난 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잊지 않습니다. 반성하지 않는 정권에 미래는 없습니다. 책임을 회피하고, 진실을 은폐하지 마십시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앞에 드러낸 적나라한 모습은 하늘이 보았고, 땅이 알았고, 바다가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직 진실을 말하고, 정직을 실천하기 바랍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마시고, 특별법에 따른 조사과정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안전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조치에 즉각 나서기를 촉구합니다.

3. 언론과 한국 사회에 촉구합니다. 사실을 왜곡하지 말고, 진실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세월호 특별법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된 우리와 다음 세대를 보호하자는 공익적 사안이며, 유가족들은 한국사회를 대표해서 이를 떠안게 된 공적 대리인입니다. 사람들이 보고, 듣고, 판단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언론 보도와 집단행동을 멈추기를 촉구합니다.

4. 한국교회에 촉구합니다. 세월호에서 살아오지 못한 이들과 살아 돌아온 모든 이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한국교회가 감싸 안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기 바랍니다. 이들을 악의적으로 비방하거나, 고립시키는 언행에 반대하고, 이들이 집으로 돌아가 건강하게 세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기도하고 지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들이 해소되지 않은 의문을 풀고, 정의로운 책임 규명을 목도하고, 서러운 눈물을 씻을 때까지 이들과 결연히 함께하기를 촉구합니다.

2014년 10월 5일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40일 단식 해단 및 안전 사회를 촉구하는 기독인 연합 예배>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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