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나라 못 살지?"

길을 지나다 마주친 할머니가 안은경 씨(37)에게 대뜸 말했다. 은경 씨는 '뚜 완'이라는 이름을 가진 베트남에서 온 이주 여성이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이여인터·대표 한국염 목사)에서 3년째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8년 전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면서 한국에서 살게 됐다. 8년 사이에 안 씨는 한국어를 배우고 아이를 낳고, 활동가가 됐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한국은 길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나는 게 더 이상 낯설지 않은 다문화 사회인데도, 이주민들은 왕왕 차별을 겪는다. 오죽하면 '다문화'라는 말에서마저 차별을 느끼는 이주민들이 있다. 중국에서 온 왕혜연(왕후이쥐안) 씨는 한국 사람들이 다문화라는 말을 할 때 얼굴 표정이 굳어지고, 말투가 바뀌는 걸 봤다. 혜연 씨는 유럽계 사람들이 한국인과 결혼하면 '글로벌 웨딩'이라고 하고 자신들에 대해서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을 쓴다며, 한국보다 좀 못 산다고 생각하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사람들을 '아래로' 본다고 했다.

한국이 다문화 사회가 된 건 이주민 수가 국내 인구 3%를 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학자들은 인구의 7%가 넘어야 다문화 국가 범주에 속한다고 말하지만, 유네스코와 OECD는 그 수의 급증률 때문에 한국을 다문화 사회로 분류했다. 지난해 안전행정부가 내놓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주민 수는 지난 5년간 50만 명이 늘었다. 국내 거주 이주민들은 150만여 명이 된다. 2006년부터 해마다 20% 이상씩 증가한 결과다. 현재 한국에는 157개국의 사람들이 이주 노동자로 와 있고, 127개국과는 국제결혼으로 맺어져 있다.

'다문화 사회'를 만드는 인권 운동…한국어 교실, 성폭력 예방 교육, 정책 제안 등

늘어나는 이주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2012년 국가인권위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관련 부처에 시행을 권고했다. 시민단체 활동은 훨씬 앞섰다. 비영리 민간단체로 가장 대표적인 곳이 이여인터다.

이여인터는 노동자 인권 센터 부설 기관으로 시작했다. 이주민에 대한 정부 대책이 전무했던 90년대 말, 민중 교회 목회를 하던 최정의팔·한국염 목사는 서울외국인노동자인권센터를 열었다. 부설 기관으로 한국염 목사는 이주 여성을 위한 쉼터를 2001년 개소했다. 가정 폭력을 당했거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지원이 필요한 여성들이 머물 공간을 마련하는 게 당시 가장 절실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한국염 목사는 노동자 인권 센터에서 이주 여성 문제를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간파하고, 쉼터를 독립했다. 2003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이여인터)'로 단체명을 정해 2005년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부 차원의 첫 사업인, 여성부의 '국제결혼 이주 여성 지원 사업'을 이끌어 냈다.

▲ 이여인터가 개소 때부터 해 온 상담은, 지난해 9월 서울이주여성상담센터가 위탁 운영하게 됐다. 위탁 운영 전 통계를 보면 이여인터는 한 달 평균 200건 정도 상담했다. 가정 문제 상담이 가장 많았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이여인터는 이주 여성 상담을 기반으로, 이주민과 자녀를 대상으로 성폭력 예방 교육을 하고, 가정 문제 해소를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생활과 법률 상식 매뉴얼을 발간하고, 한국어 교육뿐만 아니라 이주 여성의 남편에게 아내의 모국어를 배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금은 충북, 부산, 전남, 전북, 대구, 경남 등 전국에 6개 지부를 두고 5개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각 지부마다 대표가 따로 있고, 운영도 따로 한다.

이여인터가 지향하는 바는 이주 여성 당사자가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나서는 것이다. 누구보다 그들 자신이 내는 제안이 가장 실제에 가까울 거라는 판단에서다. 그래서 이주 여성을 대상으로 활동가 교육을 한다. 2013년 시작한 인권 전문가 양성 과정도 이주 여성 활동가가 같은 당사자를 돕도록 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정부가 수립한 2013~2017년 시행되는 제2차 외국인 정책 기본 계획에 관한 보고회를 열어 이주민 당사자들의 입장·제안을 담은 보고서를 펴내기도 했다. 매주 월, 수, 금 오전 10시 반부터 12시 반까지 자원봉사자들이 진행하는 한국어 교육의 목표도 큰 맥락은 같다. 시간과 요일은 지부마다 다르다.

교육을 받은 이들은 센터 상근 활동가로 일하기도 하고, 통역이나 프로젝트에 자원봉사 또는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8년 전 베트남에서 온 안은경 씨는 서울에 위치한 이여인터에서 일하는 상근 활동가 5명 중 1명이다. 이여인터는 직원이란 말을 쓰지 않고 활동가라고 한다.

'이여인터'라서 할 수 있는 교육·이슈화·지원 사업…10월 16일 후원 행사

시월의 첫날, 서울 센터에서 진행하는 한국어 교실을 엿봤다. 초급, 중급, 고급 세 반으로 나뉘어 볼리비아, 과테말라, 네팔, 베트남, 러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들이 자원봉사 교사와 한국어를 배우고 있었다. "센터에 버스로 와요", "지하철로 가요" 같은 비교적 쉬운 문장을 배우는가 하면, 가전제품을 살 때 상황을 가정해 실습해 보기도 했다.

쉼터에서 온 신상 보호가 필요한 여성도 있고, 스페인어 교사로 출강하는 이도 있었다. 사회적·경제적 수준보다 중요한 건, 한국어를 익히는 것이었다. 교실은 무료로 누구나, 언제나 시간에 맞춰 오면 배울 수 있게 운영하고 있다.

▲ 한국어 교실 풍경. 초급·중급·고급 세 반으로 나뉘어 매주 월, 수, 금 두 시간씩 운영하고 있다. 이주 여성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한국어 교사는 자원봉사로 지원한 이들이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대부분 가지고 있다. 수업 시간에는 서로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도 한다. (사진 제공 이여인터)

센터에서 5년째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한 자원봉사자는, 예전에는 학생들이 많았지만 수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여인터 초기에는 한 교실이 꽉 차기도 했는데 지금은 한 반에 두서너 명 정도의 이주 여성이 온다. 요즘에는 많은 기관에서 이주민 대상의 한국어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원이 적어졌다. 중급반 교사는 더 좋은 시설에서 배울 수 있을 텐데도 여전히 이주 여성들이 이여인터 교실을 찾는 이유는 인권 운동을 하는 이곳만의 분위기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여인터는 비영리 기관이기 때문에, 후원에 의지해 운영되고 있다. 매뉴얼 개발이나 워크숍, 프로그램 등은 관련 재단에서 지원을 받기도 하지만 인력과 행정 전반에 들어가는 비용은 134명 되는 후원자들에게 맡겨져 있다. 재정 자립도가 41%밖에 안 된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도 맡고 있는 한국염 대표가, 외부에서 인권 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받은 상금을 센터로 돌리고, 활동가들이 번역 일을 하고 받은 돈을 후원금으로 내도 살림살이는 빠듯하다.

한국염 대표는 "매달 임대료와 관리비, 활동가들 임금 주는 거에 절절매고 있지만 일을 그만둘 수가 없는 이유가 인권 문제에 큰 사건이 생기면 대응해서 일할 단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다누리 콜센터 상담 통합도 문제가 있는데, 이런 걸 따질 단체가 우리밖에 없는 거예요. 다른 단체도 우리가 해 주길 기대하고요. 제도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주 여성 개개인이 심각한 인권 문제에 부딪히면 그걸 나서서 싸워 주는 것도 해야 해요. 지역에서 못하고, 우리가 나서서 이슈화하고 재판 지원하고 이런 일들을 해야 해요. 그런데 일을 하려고 해도 사람이 일을 하는 건데, 그 사람 활동비도 못 주고 그러다 보니 이번에 후원 행사를 계획하게 됐어요."

10월 16일 목요일, 4년 만에 이여인터 후원 행사가 열린다. 인력이 부족해 매년 마련할 수도 없었던 자리다. 이유는 분명하다. 이여인터 운영을 위한 후원 행사다. '낯섦과 끌림 그리고 어울림'이라는 주제로 저녁 6~8시, 이화여대 ECC B4 이상봉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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