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도착한 광화문광장의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었다. 유가족은 어떻게든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한 발 물러나기까지 했지만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었다. 세월호참사희생자·실종자·생존자가족대책위원회가 9월 30일 타결된 세월호 특별법안을 거부하기로 함에 따라 앞으로 세월호 관련 정국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불투명하다.

간호사 되고 싶다던 영석이, 가수가 꿈이던 동진이, 모델 되려던 순범이

앙꼬 빠진 특별법 합의 소식에 광화문광장에서 38일·36일째 단식을 이어 가고 있는 김홍술·방인성 목사도 허탈해했다. 두 목사는 무엇보다 유가족을 제일 먼저 걱정했다. 자신들도 힘이 빠지는데 유가족은 심정이 어떻겠냐며 속상해했다. 이를 보고 있던 김창규 목사(청주 나눔교회)가 청운동에 있는 이윤상 목사(전주경동교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곳 주민센터 앞 천막에서 생활하고 있는 유가족을 두 목사가 방문하면 어떻겠냐고 말이다. 유가족의 동의를 받아 두 목사는 길을 나섰다.

김홍술·방인성 목사는 1일 아침 청운동주민센터를 찾았다. 앙꼬 빠진 세월호 특별법 합의 소식에 속상해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이윤상 목사(전주경동교회)와 단원고 학생 세 명의 엄마가 두 목사와 일행들을 맞았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장기간 단식으로 다리에 힘이 없어 지팡이를 짚고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청운동주민센터에는 이윤상 목사와 영석·동진·순범 세 학생들의 엄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김빠지는 특별법 제정 소식을 듣고 안산에 가서 가족 총회에 참여하고 돌아오느라 엄마들의 얼굴은 많이 상해 있었다. 그래도 두 목사가 천막을 방문하자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는 또 다른 누군가가 생기지 않도록, 이런 말도 안 되는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우리가 싸우는 거예요. 지금은 나만 잘살면 되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설령 싸울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체면 때문에 못 나서는 것 같아요. 어제 안산 가서 분향소에 들러 아이들 얼굴 보고 와서 좋았어요. 애들 한 명 한 명 둘러보면서 우리 애들은 그래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행복한 애들인 것 같아 감사했어요."

두 목사는 영석 엄마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영석 엄마는 두 목사를 보며 이제 그만 단식 멈추고 음식 먹으면서 힘차게 싸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이 이렇게 된 마당에 더 힘을 모아 길게 싸워야 한다고 오히려 두 목사를 위로했다.

▲ 방인성 목사의 얼굴은 이미 반쪽이 되었다. 청운동에 머무는 동안에도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계속 눈물지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10월 1일 방인성 목사의 몸무게가 의사가 정한 최저 한계인 70Kg 이하로 떨어졌다. 15kg이 빠졌다. 지인들과 가족들은 이제 정말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단식을 중단할 것을 부탁했지만 방 목사는 완강했다. 결국 의사가 권유한 물에 타서 섭취할 수 있는 보조 영양제를 마시기로 하고 40일까지 단식을 완주하겠다고 했다.

"정말 야만적인 정권이다. 정부는 세월호 사건을 틈타 서민과 가난한 사람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정책들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앞으로는 돈 있는 사람만 제대로 살 것이다. 우리는 40일 단식을 끝내고 싸움을 멈추자는 것이 아니다. 더 끈질기게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김홍술 목사는 이제 지팡이나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오래 걷기 힘들다. 지팡이를 짚고도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금방 숨이 찬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청운동을 방문한 목사들은 엄마들이 전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예쁜 여자를 많이 볼 수 있어서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던 영석이, 가수가 꿈이었다는 동진이, 큰 키에 맞게 모델이 되고 싶어했다는 막둥이 순범이. 한 엄마가 건네준 아이들의 사진을 돌려 보고 그 자리에 있는 모두는 눈물을 쏟아야 했다.

청운동에서 언제나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는 동진이 엄마는 계속 우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이 둥그렇게 앉아 손을 맞잡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말, 또 앞으로의 각오 등을 나누며 만남을 마무리했다.

허탈한 시민들, 두 목사에게 하소연

광화문광장으로 돌아온 목사들은 몸도 마음도 힘들어했다. 두 목사를 찾아온 사람들도 평소보다 많았다. 어제 특별법 합의 소식 때문인 것 같았다. 천막에 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은 "이럴 수는 없다. 정말 너무하다"였다. 다들 "믿었던 야당에 뒤통수를 맞았다"고 표현했다.

4대강 반대 운동을 한 김정욱 교수(서울대 명예)는 김홍술·방인성 목사의 상태가 걱정이 되어 왔다고 했다. 그는 "악하다. 사람들이 악해도 너무 악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김 교수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 참사 전후 바뀐 것도 없고 앞으로 바뀔 생각도 없는 것 같다고 했다.

▲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도 단식 천막을 찾았다. 이 교수는 단식을 오래 하는 사람들을 앞에 놓고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도 두 목사가 걱정되어 단식 천막에 왔다. 이 교수는 단식 오래하는 사람들 앞에 놓고 말 많이 하면 안 된다고 하며 두 목사의 손을 잡고 있었다. 자신은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겠다고 했지만 이내 '단식은 40일까지 할 거냐, 어디가 제일 안 좋냐' 등 궁금한 점을 물었다. 김홍술 목사가 자신은 40일 단식이 끝나면 물·소금·효소 다 끊고 계속 단식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지나가던 여고생이 천막에 들어와 김홍술·방인성 목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 목사는 활짝 웃으며 여고생을 맞았다. 요즘 두 목사를 웃게 만드는 것은 단식 천막을 방문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지나가던 여고생이 두 목사를 보고 멈칫거리다가 들어왔다. 무표정이던 두 목사가 활짝 웃어 보였다. 학생은 자신의 아버지도 군부대에서 일하는 목사라고 했다. 하나님이 함께하니 힘내시라고 하자 방인성 목사는 "우리가 미안해. 너희는 이제 '세월호 세대'라고 불리게 되었잖아"라고 했다. 학생은 기도하면서 응원하겠다고 말하고 자리를 떴다.

계속되는 국민 간담회와 촛불 문화제

매일 오후 5시면 유가족 국민 간담회가 광화문광장에서 열린다. 이날도 같은 옷을 맞춰 입은 2학년 4반 희생자의 어머니 두 명과 촛불 문화제에서 발언한 창현이 어머니, 영석이 아버지 등 유가족 여러 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광화문광장에서 매일 오후 5시엔 유가족 국민 간담회가 열리고 저녁 7시에는 촛불 문화제가 열린다. 10월 1일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단원고 2학년 5반 고 이창현 군의 어머니 최순화 씨가 발언을 했다.

"대부분 엄마들이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았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역사적으로 선이 이긴다고 생각합니다. 무고한 생명을 무참하게 학살한 사람들이 계속 잘 먹고 잘살았다면 우리 역사가 5000년을 이어 올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저들은 심판받을 것입니다.

저는 교회를 다닙니다. 세월호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목사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진실은 결국 밝혀질 것입니다. 싸움은 이제 시작입니다. 특별법·특검 그 이후의 과정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가족들은 끝까지 갈 것입니다. 여러분도 함께해 주십시오."

▲ 7시에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고 이창현 군의 어머니 최순화 씨가 발언하고 있다. 최 씨는 유가족들은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끝까지 갈 것이라며 국민들도 함께해 달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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