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유족 대표와 여야 대표가 이틀 연속 협상한 끝에 30일 늦은 저녁 타결 소식이 들려왔다. 3차 합의안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특검 후보를 선정할 때 유가족의 참여를 보장하지는 못했다. 참여 여부는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당장 단원고 유가족은 이 합의안에 크게 반발하며 거부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김홍술·방인성 목사는 그 누구보다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이 빨리 제정되길 바라며 하루를 보냈다. 두 목사는 광화문광장 단식 천막에서 유가족을 대신해 37일·35일째 단식 중이다. 의료진이 의학적으로 정한 단식이 가능한 최후 시점(32~35일)을 이미 넘겨 사람들은 김홍술·방인성 목사의 건강 상태를 걱정하고 있다.

▲ 김홍술·방인성 목사는 매일 아침 목욕탕을 찾는다. 소음이 가득한 광화문광장을 뒤로하고 간밤의 피로를 풀기 위해 길을 나선다. 이제는 두 목사 모두 지팡이의 도움 없이 오래 걷는 것이 힘들다. 30일 아침에는 김창규 목사(청주 나눔교회), 이진오 목사(더함공동체교회)가 함께 길을 나섰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목사들은 매일 아침 인근에 있는 사우나로 향한다. 씻어야 할 곳도 마땅치 않고, 잠을 잔다 해도 소음 때문에 지난밤 편히 쉬지 못해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해서다. 사우나는 성인 걸음으로 약 5분 거리에 있다. 9월 30일 아침에는 혈액 검사를 위해 피를 뽑아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출발했다.

처음에는 단둘이 다녀오기도 했지만 이제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늘 동행하는 사람이 있다. 오늘은 주 중이면 항상 천막에서 함께하는 김창규 목사(청주 나눔교회)와 월요일부터 단식에 동참하고 있는 이진오 목사(더함공동체교회)가 함께 길을 나섰다. 김홍술 목사는 오늘따라 유독 음식 냄새가 많이 난다며 "먹는 것도 축복이지만 음식 냄새만으로 욕구가 충족되는 것도 큰 축복"이라고 했다. 방인성 목사는 바람이 조금 차지만 해가 따뜻해 기분이 좋다면서 잠깐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쬐기도 했다.

매일 아침 김홍술·방인성 목사를 진료하는 조계성 원장(일신연세의원)의 부탁으로 119 구급대원이 하루 세 번 단식 천막을 찾는다. 혈압을 재고 혈당을 체크해 몸에 이상 여부를 수시로 살피기 위함이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두 목사의 건강은 매일 아침 의사가 와서 살핀다. 일신연세가정의원 조계성 원장은 출근하기 전에 잠깐 광화문광장에 들러 두 목사의 상태를 살핀다. 이틀 전부터 광화문광장에 상주하고 있는 119 구급대원이 하루 세 차례 단식 천막을 찾는다. 목사들의 건강 상태를 염려한 조계성 원장의 특별 부탁으로 목사들의 혈압과 혈당을 체크해서 보고한다. 김홍술 목사의 혈압은 정상이지만 방인성 목사의 혈압은 평균보다 많이 낮아 더욱 조심해야 한다. 혈당도 마찬가지다. 혈당이 70 이하로 떨어지면 쓰러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두 목사가 어디를 가든 누군가가 함께 간다.

화장실 갈 때도 늘 동행인이 있어야 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조심스럽다. 그래서 30일 광화문에는 깜짝 선물(?)이 도착했다. 조계성 원장과 세월호참사를기억하는기독인모임(세기모)이 두 목사를 걱정해 주문한 휠체어 두 대가 온 것이다. 휠체어를 타 보더니 두 목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진짜 좋다", "와, 이거 정말 좋다"라고 말하며 내친김에 화장실로 이동했다. 김홍술 목사는 광화문광장 끝까지 산책하고 돌아왔다.

오후에 반가운 선물이 도착했다. 오랜 단식으로 기력이 쇠한 두 목사들을 걱정해 조계성 원장(일신연세의원)과 세월호참사를기억하는기독인모임(세기모)이 휠체어를 대여한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산책을 나선 두 목사는 기대한 것 이상이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두 목사가 단식하기로 작정한 40일을 향한 막바지임에도 천막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가 잠시 들러 두 목사와 담소를 나눴다. 지금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최대 관심사였다. 떠나기 전 김영주 총무는 "온몸으로 고생하는 종들을 긍휼히 여겨 주시옵소서. 약자의 편에서 그들과 함께 울고 그들을 대변하는 종들의 결단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비록 사람의 작은 몸짓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귀하게 여겨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지방에 살아 자주 광화문을 오지 못하는 젊은이들도 왔다. 한국기독학생회(IVF) 사회부 소속 간사 16명은 광주·제주·춘천·대구·경기·천안·서울 등지에서 모였다. 이들은 현재 각 지역 대학 지부에서 활동하고 있다. 간사들을 통해 지방에서 세월호 참사가 얼마나 빠르게 잊히고 있는지를 들을 수 있었다.

광주에서 온 간사는 금남로에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천만인 서명'을 받는 부스가 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들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며 안타까워했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매주 화요일 광주지방법원 앞에서 사람들이 한 줄로 길게 줄지어 서서 피켓 시위를 진행했지만 사람 수가 급감한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영남·제주 등지에서 온 간사들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했다.

목욕을 마치고 김홍술·방인성 목사가 돌아오자 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두 목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방 목사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나무 십자가를 쥐고 기도하는 일뿐이라며 하루 빨리 특별법이 제정되길 바란다고 했다. 두 목사와 젊은 간사들은 같은 시각 국회에서 협상이 진행 중인 점을 상기하며 함께 기도했다.

목욕탕에서 돌아온 목사들을 반긴 것은 전국에서 모인 한국기독학생회(IVF) 사회부 간사들이다. 단식 천막에서 두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하루 빨리 유가족이 원하는 특별법이 제정되게 해 달라고 함께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아침부터 함께한 이진오 목사(더함공동체교회)는 세월호 사건이 한국 개신교인들에게 자신의 신앙·가치·정치관·인간을 보는 관점 등을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했다. 그는 비슷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는 더함공동체교회 내에서도 세월호 참사를 설교 시간에 계속 언급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더함공동체교회는 세월호 참사 이후 약 10주 동안 인천 주안역 앞에서 촛불 시위를 했다. 그런데 사건이 해결될 기미가 보아지 않고 장기화하면서, 그에 따른 다양한 견해가 등장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교인들 사이에서도 논의와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대안을 세우는 것이 진짜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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