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결혼과 독신에 대한 문제를 다룬다. 40절에 걸쳐서 장황하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은 당시 고린도 교회 내에 결혼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고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금욕주의적 경향이 팽배해 있었기 때문이다.

금욕주의적 경향은 인간의 욕망이나 욕정을 부정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억제하는 것이 경건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금욕주의는 그 대척점에 있는 쾌락주의와 비교해 볼 때 훨씬 낫고 고상한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쾌락주의는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거리며 이 세상에서의 쾌락을 즐기며 사는 입장인데, 이러한 관점보다야 금욕주의적 관점이 훨씬 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금욕주의가 성경적이고 바른 가르침은 아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결혼의 문제에 대해서 답을 할 때, 신중하게 의견을 표명하였다. 만일 금욕주의의 잘못을 지적하면 마치 바울이 쾌락주의를 지지하는 것처럼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고, 만일 쾌락주의의 잘못을 지적하면 마치 바울이 금욕주의를 지지하는 것처럼 오해를 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금욕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를 하는 것처럼 말하면서도(고전 7:1, 7, 8, 26, 32~34, 40), 결혼을 하는 것이 악한 것이라고 하는 금욕주의자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고전 7:5, 9~16, 27~28, 36~38).

바울이 고린도전서 7장에서 말하고 있는 긴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한다면, 결혼은 해도 좋은 것이고 하지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것도 잘하는 것이라는 말이다(고전 7:7). 결혼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가? 그러면 결혼을 하라. 독신으로 지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그러면 독신으로 지내라 하는 것이 바울이 말하려고 하는 바이다.

성경은 우리가 반드시 믿어야 하고 따라야 하는 절대적인 하나님의 명령이 있는가 하면,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것들도 있다. 결혼의 문제가 그렇다. 결혼을 반드시 해야만 한다고 말하거나, 반드시 독신으로만 지내야 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크게 오해한 것이다. 마치 성직자의 길을 모든 사람이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받은 은사에 따라 그리고 소명 여부 등등 여러 가지 상황에 따라 성직자의 길을 가는 것을 결정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성직자의 길을 걷는 것은 보람이 있고 장려할 만한 일이며 그 길에는 많은 영적인 유익이 있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성직자의 길을 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만일 성직자의 길을 가야 할 사람이 성직자의 길을 간다면 정말 잘하는 일일 것이고, 성직자의 길을 가지 않아야 할 사람이 그냥 이 세상에서의 길을 간다면 그것 역시 잘하는 일일 것이다. 결혼과 독신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울 사도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독신이 가져다주는 많은 장점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7장에서는 독신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강조는 성직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 성직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말하는 것과 같다. 성직자의 길이 너무나도 좋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성직의 길로 들어선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바울이 독신의 장점을 말한다 해도, 모든 사람이 독신의 길을 걸어야 할 필요도 없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오직 타고난 자라야 그런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마 19:10~12).

결혼에는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고린도전서 7장에서는 결혼의 단점을 말하고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우선하지 않고 배우자를 기쁘게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질 수 있다는 것이 단점이다(고전 7:32~35).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독신으로 살아갈 것도 아니다. 성직자의 길을 가지 않고 평범한 인생을 살아간다면, 아무래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보다는 이 세상의 일에 더 많은 관심이 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성직자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결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바울 사도는 아내가 있는 자들은 마치 아내가 없는 자 같이 살라고 한다(고전 7:29). 이 말씀은 결혼은 했지만 독방을 쓰면서 마치 독신처럼 지내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고전 7:3~5). 이 말씀은 결혼한 자들이 배우자를 기쁘게 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잘살지 못하는 그런 모습을 지양하라는 말씀이다.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최우선으로 삼으라는 말씀이다. 즉 아내가 없는 독신들이 오로지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하며 사는 것처럼, 결혼한 사람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라는 권고이다.

결혼의 장점에 대해서는 고린도전서 7장에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정말 장점이 많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 말씀하시며 배필을 만들어 주셨다(창 2:18~25). 부부가 사랑으로 함께하는 유익은 너무나도 크다(전 4:7~12).

독신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독신의 장점은 결혼의 단점에서 찾을 수 있고, 독신의 단점은 결혼의 장점에서 찾을 수 있다. 독신으로 사는 것도 장점과 단점이 있고, 결혼하여 사는 것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은사대로 하는 것이다.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고전 7: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고전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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