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은 가능성을 계산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철저히 절망하는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인간의 절망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믿고 있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이다. (사진 이만열 교수) ⓒ뉴스앤조이 구권효

언제부터인가 광화문 네거리 주변은 민초들이 개인 혹은 집단으로 자기 의사를 표출하는 시위 장소로 변모했다. 처음에는 복원된 청계천 주변이 촛불 시위와 평화 행진의 장소로 이용되었다. 그 무렵 서울시청 앞 광장도 그런 역할을 했지만 때로는 극우 세력의 반공 시위에 이용되기도 했다. 한편 건너편 대한문 앞은 약자들의 한을 푸는 제의 장소가 되었다.

가톨릭의 교종님이 시복식을 거행한 후 광화문이 잊히는가 했는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계기로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김영오 님이 40여 일간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호소하면서 단식을 결행하자 이곳은 동조 단식의 장소로 변했고, 한때 대한민국 정치의 1번지가 되는 듯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 앞에 즐비한 천막은 동조 단식자들의 공간으로 변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을 생각하면, 이곳이야말로 공감과 연민, 슬픔과 고통을 나누는 장소다. 이들의 단식은 세월호 참사로 먼저 간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유족들의 고통에 동참하며, 진실 접근에 무관심한 이들을 조용히 깨우치고, 특별법 제정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침묵으로 타이른다.

지난 9월 15일 저녁 8시부터 16일 정오까지 이곳 세종대왕상 앞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참사 5개월을 맞아 304위를 기억하면서 목회자 304인이 철야 기도회를 가졌다. 15일 저녁부터 16일 낮까지로 시간을 잡은 것은 세월호가 인천을 출발하던 4월 15일 저녁 시간과, 완전히 침몰한 4월 16일 정오에다 맞췄기 때문이다. 네 차례(15일 오후 8시와 12시, 16일 오전 6시와 10시) 예배를 드리고 첫 예배와 마지막 예배 뒤에는 성찬식이 거행되었다. 떡과 포도주를 취함으로 십자가의 죽음에 참예한 이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확인했다.

중요한 것은 한국의 진보 보수를 망라한 목회자 304명(저녁에는 5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이 이웃의 아픔과 겨레의 고통에 동참하면서 하룻밤을 같이 지냈다는 것이다. 과거 북한을 돕기 위해 한국교회 보수와 손을 잡은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민족적 아픔을 끌어안기 위해 진보권과 복음주의권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이를 두고 한국 교회사에서 초유의 사건으로 대서특필할 만한 것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다.

19일(금) 오후 단식하는 장소를 찾았다. 마침 이 날짜 <한겨레> 신문에 24일째 단식하는 방인성 목사에 대한 칼럼이 실린 터라, 방인성 목사와 김홍술 목사의 단식 처소가 그렇게 외롭게 보이지 않았다. 이들 곁에는 3~4일씩 동조 단식에 참여하는 이들이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방인성 목사는, 내가 22년 전 영국 옥스퍼드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신학 공부를 하면서 옥스퍼드 한인교회 목회자로 시무했고 우리들을 대접했다. 귀국 후 그는 강단에서 외치는 것 못지않게 실천하는 목회로 일관했다. 그가 10년 전에 자신의 신장 하나를 기증한 것이나, 교회 개혁 실천 운동과 통일 평화 운동의 현장에는 언제나 그가 선두에 서 있었다는 것, 그리고 세월호 유족을 격려하면서 그 진실 규명에 앞장서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목회 철학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의 조부 대로부터 시작된 듯한 영성적 전통을 무시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대째 목회자로 계승되고 있는 그 집안에서 그의 조부(방계성)는 일제 말 평양 산정현교회에서 주기철 목사와 함께 신사참배 반대 투쟁을 하다 옥고를 치렀고, 해방 후에는 "강단에 인공기를 내걸라"는 북한군의 지시를 무시했다가 총살당했다. 이것만 보면 그는 오늘날 '종북'이라는 말을 입에 물고 다니는 여느 극우적 목사들처럼 '반북(反北) 멸공'의 최전선에 서야 할 목사다. 그러나 그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민족적 아픔을 승화시켜 나갔다. 그러기에 그의 복음주의 목회 활동과 활발한 통일 평화 운동의 바탕에는 용서와 화해, 사랑과 공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녹아 있다.

이날 오후 광화문 거리에는 방인성·김홍술 목사의 단식과 많은 분들의 단식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동상 아래 천막 쪽에는 올해 들어 몇 번이나 단식 투쟁에 나섰다가 병원에 실려가 다시 삶을 회복한 춘몽(春夢)님이 회색빛 거사 복장에 "대법원은 2013년 1월 4일 제기한 18대 대선 선거 무효 소송을 속행하라" "19대 대선은 개표 조작까지 저지른 총체적 부정선거!!!" 등을 쓴 팻말을 앞세우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길 건너편 교통 안전 지대에는 태극기를 내걸고 십자가가 그려진 플래카드에 "세월호 특별법 웬말이냐 (전 국민이 특별법 반대한다) (종북 세력들 북한으로 가라!)"고 써 붙이고 몇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건너편의 단식 농성자들을 향해 들으라는 듯 확성기의 볼륨을 높였다.

불교 거사의 조용한 1인 시위와 십자가의 '소란스런' 시위가 대조되는 듯했다. 십자가가 남을 저주하는 듯 사용하는 데에 이렇게 남용되어도 괜찮은 것인지, '종북'을 소리 높여 외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묻고 싶다. 얼마 전에는 일베 류의 '패륜과 야만'의 폭식 행패가 공공연했으나 마치 우리 사회가 자신의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듯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이제는 십자가를 내세워 단식 농성자들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듯한 행태를 목도하게 된다.

이게 사랑과 정의의 상징인 십자가를 앞세우는 이들의 진심에서 나온 행동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저들이 어떤 종류의 십자가 열심꾼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이야말로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는, 마치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자들 모양으로, 반십자가적 세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의 길이냐 십자군의 길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심각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게 2014년 9월 중순, 광화문 거리에서 나타나고 있는 우리 사회와 종교계의 상징적인 한 장면이다.

두 분 목사님과 여러 시민단체의 단식 농성은 외롭고 긴 투쟁이다.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은 어리석은 노릇일 수 있다. 몇 년 전에 쌓았던 '명박산성'과는 달리 '근혜산성'은 형태도 드러내지 않은 채 더 강고한 듯이 보인다. 허공을 향해 헛발질하는 듯한 이 싸움은 인간적으로 보면 승산이 없어 보인다. 단식 농성을 하는 이들도 그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희망은 가능성을 계산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내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철저히 절망하는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인간의 절망에서 하나님의 능력은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믿고 있다. 나는 두 분 목사님과 동조 단식하는 이들에게 다음의 말로 위로, 격려하고 그 자리를 떴다. "인간의 끝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이만열 / 숙명여대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 글은 이만열 교수의 페이스북에 실린 것입니다.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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