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 입은 예언자 헨리 나우웬> / 마이클 앤드류 포드 지음 / 김명희 옮김 / 400쪽 / 1만 5000원

예언자란 누구일까? 아브라함 헤셸이 그의 대표작인 <예언자들>(삼인, 2004)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예언자는 자기 말로써 하나님을 보이게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우웬은 예언자임에 틀림없다. 그가 숨지기 전 10년 동안 봉사했던 데이브레이크 사람들은 나우웬을 향해서 '하나님을 보여 준 예언자'라고 스스럼없이 말했다(346). 그들이 10년 동안 나우웬을 직접 보고 내린 결론이니 다른 의견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는 숨지기 3주 전에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우리는 예언자들이 죽은 이후에야 그들을 칭송한다. 살아 있는 동안 우리는 예언자가 될 마음이 있는가?" 나우웬은 예언자가 되고 싶어했던 것일까?

<상처 입은 예언자 헨리 나우웬>(포이에마, 2014)은 언론인이자 방송인인 마이클 앤드루 포드가 쓴 나우웬 전기다. 포드는 신학을 전공했고 나우웬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니 나우웬의 전기 작가로서는 안성맞춤인 셈이다. 이 책은 1999년 나우웬이 숨을 거둔 지 10년이 되는 해 나우웬을 기념해서 출간된 것으로 영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캐나다, 미국, 남미에 거주하는 나우웬과 관련된 125명과 이런저런 형태로 나눈 대화의 결과물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이미 이 책을 2003년에 번역 출간한 바 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나우웬의 동성애 성향과 관련된 부분을 삭제 편집하여 독자들을 기만하였다. 그래서 이번에 포이에마 출판사에서 나우웬 서거 10주년 기념 서문을 포함한 완역본을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마음'으로 나우웬 생애의 중요한 주제들을 개략적으로 다룬다. 하지만 연대순으로 되어 있지 않다. 그의 내면과 외적 세계를 탐사하고 그의 성품의 어려움 조사했다. 반면 2부와 3부는 연대순으로 기술되었다. 2부 '지성'에서는 네덜란드에서의 어린 시절부터 학생, 교사, 교수로 지내며 심리학과 신학적 지식이 성장했던 시절 그리고 라르쉬에 합류하기까지의 삶을 따라간다. 3부 '몸'은 생애의 마지막이자 가장 의미 깊었을 10년을 다룬다. 회의와 고뇌, 부활과 기쁨의 시기를 지나 자신과 하나님 그리고 그의 말대로 몸이 어떻게 영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50쪽)

먼저 이 책은 나우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우리에게 전해 준다. 자료와 증언에 기초해서 나우웬의 신화적인 모습을 제거했다. 물론 나우웬의 글이 그의 생각을 다 담지 못하고, 포드가 만난 사람들이 나우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포드는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고 나우웬이 우리처럼 상처 입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알려 주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것은 아마도 포드가 사실에 근거해서 기사를 작성하는 훈련을 받은 저널리스트라는 점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을 분별하는 능력에 대해 매력적으로 썼지만 정작 자신은 고독을 좋아하지 않았고(85),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넘쳤다는 것(105), 심지어 그가 말한 내용과 그가 사는 모습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했다는 점은 우리를 놀라게 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그도 별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포드는 나우웬이 동성애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도 우리에게 알려 준다. 이런 나우웬의 모습이 나우웬의 명성을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 거짓이라는 점을 알게 될 때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포드는 우리가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친절하게 나우웬의 민낯을 보여 준다.

그리고 포드는 '치유자'가 나우웬을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우웬은 치유자 이상의 발자취를 남겼다. 그래서 그는 과감하게 나우웬을 '예언자'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나우웬을 예언자라고 부른다고 해서 치유자로서 그의 역할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나우웬의 치유자로서의 흔적은 그대로 예언자의 이미지 속으로 편입된다. 치유자로서 타인을 향한 동정심 즉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헤셸이 말한 대로 예언자의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나우웬은 예언자로서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치유하며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였다.

앞서 말한 데이브레이크 사람들의 증언 외에 포드는 나우웬이 예언자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고 있다. 나우웬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성령을 전했다는 점(78쪽), 사람들에게 특히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하나님을 보여 준 점(346쪽) 그리고 가톨릭 교인뿐만 아니라 개신교인 더 나아가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성찬을 개방했다는 점(379쪽)등이다. 그러나 <예언자>에서 헤셸은 예언을 이렇게 설명한다. "예언이란 인간의 아픔을 표현하라고 빌려 주신 말이며 착취당한 가난한 자들과 세상의 불경스런 부자들에게 내리신 말이다"(36쪽). 헤셸에 의하면 나우웬은 불완전한 예언자다.

나우웬은 인간의 아픔을 표현하며 그 아픔에 동참했다. 그리고 그들을 치유했다. 이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의 주된 사역이었다. 그것은 성령의 사역이고 예언자가 감당해야 하는 영역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예언자의 또 다른 사역인 '착취당한 가난한 자들과 세상의 불경스런 부자들에게' 나우웬이 어떤 말을 했는지 이 책에서는 소개되지 않는다. 물론 포드는 나우웬이 미국의 걸프 전쟁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것과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시위에 동참하며 사회적 정의를 위해 힘을 쏟은 사실을 알려 준다. 그뿐만 아니라 나우웬이 남미에서 만난 해방신학의 창시자 구티에레즈가 나우웬을 향해 "가난과 불의 그리고 가난을 일으키는 요인에 맞서는 사람이었다"고 말한 사실도 들려준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예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나우웬의 영성이 개인의 영성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면서 만난 구티에레즈 신부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나우웬은 구티에레즈로부터 가난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헌신을 배울 수 있었고 구티에레즈는 나우웬으로부터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이들에게도 영성 생활이 중요하다는 점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나우웬은 구티에르즈가 '역사 속 가난한 자들의 난입'이라 칭한 것을 충분히 이해했을 때 자신의 영성이 "영적으로 되었다"고 말했다. (256쪽) 그러므로 이 책은 영성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기에 충분하다. 참된 영성은 개인의 차원에 머무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 개인에게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지길 기대하고 계신다.

그가 숨지기 전 10년, 그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더 오랜 기간 동안 머물렀을 라르쉬 공동체로 들어간 것은 정의를 위한 그만의 해법이었는지 모른다. 이것은 그가 치유자를 넘어 예언자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 불의에 저항해야 한다. 그런데 불의에 저항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바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바로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내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가진 것에 의해서, 생긴 것에 의해서, 지능에 의해서 차별받지 않고 오직 존재 그 자체로 사랑받는 곳이 바로 라르쉬다. 여기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평화는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한 대로 정의의 결과다.

이와 같은 나우웬의 헌신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빛을 비춘다. 결국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를 드러내야 한다. 이 세상의 불의와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가 친히 정의와 평화의 삶을 살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교회다. 교회는 그런 공동체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교회의 공동체적인 부분이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와 평화를 이루어 가는 공동체가 아니라 사역을 위한 사역 단체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일은 있지만 정작 중요한 사람은 거기에 없다. 교회는 기계적 조직체가 아니라 유기체적 생명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는 이 땅에서 예언자적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드러내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하나님의 평화와 정의를 드러내는 일은 나우웬의 말대로 분노와 두려움이 아니라 원수에 대한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가난한 자들을 돌보며 불의한 부자들을 향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예언자의 사명을 잊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아쉽지만 나우웬은 이 점에서 약간은 불완전한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이런 불완전한 나우웬의 모습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개인을 치유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세상을 치유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넘쳐나도록 자신을 드려야 한다. 이 책이 그런 결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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