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석 연휴, 청운동에서 노숙하는 세월호 유가족은 서울교회(배안용 목사)에서 식사를 제공받았다. 9일 오후, 유가족 일부는 배 목사의 안내에 따라 동네 문화 유적지 산책을 하며, 참사 이후 처음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동행했던 이윤상 목사는 오랜만에 유가족의 평안한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4월 16일 참사 이후 첫 명절인 추석을 교회에서 보낸 세월호 유가족이 있다. 청운동에서 노숙하는 유가족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명절은 넘겨야 할 하나의 고비다. 온 가족이 오순도순 모여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명절이 그리움과 눈물의 시간일 뿐이다. 그런데 특별법 제정과 대통령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그들은 충분히 슬퍼할 겨를도, 아파할 겨를도 없다. 추석, 잠시나마 그들이 교회에서 평안한 시간을 보냈다. 

9월 8일 오전, 청운동주민센터를 찾았다. 세월호 유가족은 17일째, 친지들과 함께할 명절을 길바닥에서 보내고 있었다.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박동일 총회장)에서 유가족을 돕기 위해 파송한 이윤상 목사(전주경동교회)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이 목사는 청운동에서 노숙하던 대부분이 안산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아이들이 생전 좋아했던 음식을 기림상에 올리기 위해서였다. 

유가족 어머니 두 명만 청운동 주민센터에 남았다. 단원고 2학년 5반 고 박성호 군의 어머니, 정혜숙 씨는 차마 안산 합동 분향소에 내려갈 수 없었다고 했다. 몇 달이 지나도 시신을 찾지 못한 팽목항의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생각하면 미안해서이다. 정 씨는 명절이라 아이 생각이 많이 나지만, 억지로 슬픔을 참고, 억지로 아이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그런데 팽목항의 실종자 가족에게는 이 슬픔조차 부끄럽다며,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특별법 제정을 위해, 마음을 돌볼 시간도 없다는 정 씨는 "제발, 슬퍼할 시간을 주세요"라며, 애써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이 사진을 보여 주던 정 씨는 한편으론 감사한 점도 있다고 했다. 청운동에서 함께 노숙하고, 위로 방문 오는 목사 때문이다. 그들은 입으로만 믿는 신앙이 아닌, '몸으로 살아가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참그리스도인의 모습 같다고 했다. 공감할 줄 모르는 몇몇 지도자들과 달리, 공감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 했다. 

12시 30분경, 정 씨가 반갑게 맞이하는 방문객이 있었다. 인근에 있는 서울교회 배안용 목사이다. 배 목사는 교회 승합차로 세월호 유가족을 데리러 왔다. 서울교회가 소속한 기장에서 추석 연휴 기간 청운동에서 노숙하는 유가족 식사를 담당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청운동 유가족의 빨래 봉사를 해 온 서울교회는 추석 아침과 점심을 준비했다. 

 

▲ 서울교회가 준비한 추석 점심 메뉴는 국수, 파전, 김치가 전부였다. 세월호 유가족은 연신 미소를 지으며 식사했다. 국수를 두 그릇 먹는 이도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점심을 먹으러 5분 정도 차를 타고 서울교회로 이동했다. 교회에 도착하니, 유가족의 얼굴이 한결 밝아 보였다. 주민센터 앞에선 볼 수 없던 모습이었다. 인왕산 중턱에 있는 교회 마당에 서니, 멀리 청와대가 보였다. 물끄러미 청와대를 쳐다보던 그들은 식사 준비를 돕겠다고 서둘러 교회로 들어갔다. 

서울교회 교인들이 전날 소고깃국, 반찬 등 음식을 준비했다. 배 목사 가족들이 당일에 상을 차렸다. 배 목사의 고등학교 2학년생 조카는 파전을 부치며 음식 준비를 도왔다. 조카는 명절에도 집에 못 가는 세월호 유가족이 안타깝다며, 대통령이 빨리 만나 주길 바란다고 했다. 또한, 특별법이 제정되어 이런 참사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배 목사의 사모는 그들을 당연히 '내 이웃'으로 생각한다며, 오히려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 추석,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국민 한가위 상'행사가 있었다. 오후에는 김영오 씨(유민 아빠)와 세월호 유가족 90여 명이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진실의 배'에 소원을 적은 적은 노란 리본을 붙여 하늘로 띄웠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세월호 유가족과 위로 방문한 목사, 신부를 포함한 종교인, 배 목사 가족이 함께 점심을 먹었다. 메뉴는 국수와 파전, 김치가 전부였다. 주민센터를 떠나, 교회에서 식사하는 유가족은 연신 미소를 지었다. 국수를 두 그릇 먹는 이도 있었다. 식사 후, 그들은 주민센터로 돌아갔다. 

9월 9일, 청운동 세월호 유가족 30여 명은 다시 서울교회로 향했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까지 교회가 음식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점심은 서울교회, 저녁은 섬돌향린교회(임보라 목사)와 서울교회가 공동으로 했다. 유가족은 음식을 준비한 교회에 감사하단 말을 잊지 않았다.

점심 후, 유가족은 문화 유적지 산책을 했다. 배 목사가 인솔하여 조선 왕조 역사가 담긴 동네를 안내한 것이다. 인왕상 수석계곡도 갔다. 총 2시간가량의 시간이었다. 참사 이후, 그들이 처음 갖는 여유였다. 동행했던 이윤상 목사는 그들이 시름을 덜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며, 오랜만에 평안한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광화문광장에선 추석 연휴 '세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국민 한가위상' 행사가 있었다. 8일 오후에는 유가족 90여 명과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광장을 방문했다. 김 씨는 단식 농성 중인 방인성 목사와 청운동에서 유가족과 노숙하는 이윤상 목사를 만나 감사 인사를 했다. 김 씨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제는 먹으며 싸우겠다며, 시민들의 지지를 부탁했다. 하지만 광화문 맞은편, 십자가를 들고 특별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어 시민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교회와 광화문에서 추석 연휴를 보낸 세월호 유가족 일부는 안산, 청운동으로 돌아가고, 일부는 광화문 광장에 남았다. 유가족은 계속 싸우겠다고 한다. 안전한 사회 건설과 진상 규명을 위한 제대로 된 특별법이 제정될 때까지다. 

▲ 추석 오후, 김영오 씨(유민 아빠)와 세월호 유가족 90여 명이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유가족은 시민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울고 웃었다. 김영오 씨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제는 먹으며 싸우겠다며, 시민들의 지지를 부탁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 세월호 유가족은 '진실의 배'에 한 글자라도 더 적으려고 했다. 한 어머니가 '보고 싶어'라는 글씨를 쓰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사라
▲ 추석, 광화문 맞은편에선 십자가를 들고 특볍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현수막에는 "세월호 특별법 웬말이냐? 전 국민이 특별법 반대한다, 종북 세력들 북한으로 가라!"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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