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병호가 만난 예수님- 예수님을 알아야 진짜 크리스천이 될 수 있다> / 공병호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 / 332면 / 1만 5000원

'공병호'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가 누구인가? 1분 1초를 아끼며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한국의 대표적 자기 계발 강사가 아닌가. 그는 강사일뿐 아니라 스스로 빈틈없이 살아간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밤 10시에 잠자리에 든다고 한다. 공병호가 하루 깨어 있는 시간은 18시간 30분이며, 10분 단위로 잘게 쪼개 생활한다. 50분간 읽고 쓴 뒤 10분간 쉰다. 10분 동안 스트레칭을 하거나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한다. 오전 7시30분에 조식, 낮 12시30분에 점심, 저녁 6시30분 석식 시간을 갖는데, 식사하는 시간은 각 30분씩이다. 

그 외에는 모든 시간을 읽고 쓰는 데 투자한다. 혹여나 인터뷰나 외부 강의가 있을 경우 한꺼번에 몰아서 하고, 과음이나 폭식도 그에게는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다. 초인적인 그의 자기 관리 덕분에 22년간 무려 107권의 저서를 냈다. 한 해에 평균 5권을 써낸 셈이다.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내가 보기에 그는 괴물이다. 어쨌든 공병호의 철저한 자기 관리의 삶은 그를 비판하는 뭇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한다. 그는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다작의 비결을 '방대한 분량의 독서', '메모', 그리고 '철저한 시간관리'라고 밝혔다. 이것으로 불과 8개월 만에 생소한 기독교 서적을 3권이나 출간할 수 있었던 궁금증은 해소된 것 같다.

왜 기독교 서적인가?

'공병호=자기 계발'이다. 그런데 왜 그가 자기 계발서가 아닌 기독교 서적을 출판했을까? 그것도 기존의 기독교 출판사가 아닌 21세기북스에서 말이다. 직접 들어보자.

"사실 저는 늦깎이 그리스도입니다…예배당을 들락거렸지만 믿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조 정신이 강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이성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가방끈이 긴 사람들은 예수님을 중심에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 50줄에 접어들면서 절대 진리에 대한 갈증 때문에 서양 고전 철학을 파고들던 중에 영혼의 문제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러던 중 채소를 다듬으며 한 목회자의 설교를 듣고 있던 아내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순식간에 깨닫게 됐습니다."(18쪽)

진리에 대한 갈증이 낳은 책이다. 철학을 공부해도 궁극적인 답을 찾지 못했던 그가 우연히 설교를 듣는 중 성경이 진리임을 깨닫는다. 그 후 성경을 본격적으로 읽고 연구하기 시작한다. 출판사는 소개서에서 공병호의 '신앙고백서'로 소개 한다. 첫 책인 <공병호의 성경공부>가 자신의 체험적 신앙고백 속에서 깨달은 소소한 에세이 형식의 글이라면, <공병호가 만난 하나님>과 <공병호가 만난 예수님>, 그리고 앞으로 계속 쓰게 될 몇 권의 책은 자신의 신앙고백에 바탕을 둔 교리서이다. 만약 출판사의 소개서와 저자의 체험적 고백이 일치 한다면 이 책은 공병호 개인의 신앙고백서인 동시에 자기 계발서인 셈이다. 또한 21세기북스라는 자기계발전문 출판사에서 신앙 서적을 출간하게 된 이유도 이원석이 한 서평에서 일갈했듯이 '공병호라는 1인 기업의 퍼스널 브랜드를 판매하는 것'이 분명하며, 제목에 들어간 '공병호'를 통해 자기 계발서의 아우라가 보인다.

보편타당하지만 모호한 교리서

일단 쉽고 명료하다. 신론은 형이상학적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철학에 싶은 조예(造詣)가 없다면 접근하기 쉽지 않다. 이에 비해 기독론은 역사의 지평 속에서 계승되고 심화되었기 때문에 교회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교회사에 관련된 책을 몇 권만 읽어도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역사적 변화 속에서 예수를 다루지 않고 좀 더 심오한 주제를 다룬다. 그리스도의 선재성, 삼위일체로서의 기독론, 상승-하강 기독론 등 신학자들도 다루기 쉽지 않는 주제를 용맹스럽게 다룬다. 그러나 결코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즉 이런 식이다. "기독론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인격에서 신성과 인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이 둘 사이의 결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한 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28쪽) 이후 삼위일체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며 '폴 틸리히' '아리우스파' '오리게네스' 등을 언급한다. 그들이 주장했던 주장들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예수님의 선재성'을 통해 신성을 가지신 분으로 결론 맺는다. 즉 그는 심오한 주제를 다루는데, 내용은 전혀 심오하지 않다. 간략하고 평범한 이야기로 일관한다. 논쟁의 여지가 일어날 만한 경계선에서 중지(中止)한다.

자기 계발 작가로서의 경향이 기독교 서적에서도 여실이 들어난다. 결코 어렵게 쓰지 않는다. 초대교회로부터 현대 교회의 신학자까지 언급하는 박식함에 기가 눌릴 지경이다. 필자도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과정을 밟았고, 적지 않게 공부하고 있지만, 초대로부터 현대까지의 신학자들의 핵심을 짚어내기는 힘들다. 바로 그 이유가 저자의 담대함이 무모함으로 보이는 것이다. 모든 사상들을 정확하게 이해한 다음 저술했는가에 대한 의혹을 감출 수 없다.

저자는 '예수'와 '그리스도'란 용어부터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 듯하다. 예수는 역사 속의 실존 인물로서의 한 인간이다.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글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예수 그리스도'(28쪽), 또 어떤 부분에서는 '예수님의 신성'(33쪽)과 '그리스도의 신성'(33쪽)를 교차적으로 사용함으로 용어 구분의 신중성이 떨어진다. 또한 삼위를 구분하는 부분에서도 위험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성부하나님은 계획하시는 하나님(Planner), 성자 하나님은 실행하시는 하나님(Actor), 성령 하나님은 실하는 힘을 공급하는 하나님(Enabler)이십니다."(36쪽) 

또 다른 곳에서는 삼위일체를 '원탁 회의장의 비유'(104쪽)로 상호 관계를 설명하기 좋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1부에서 삼위일체를 설명하며 '창세 때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셨습니다'(68쪽)는 표현은 무지하거나 틀린 것이다. '한 분'은 삼위일체를 표현하기에 접합한 단어가 아니다. 이러한 모호한 용어 사용은 책 전반에 걸쳐 보인다. 이러한 정의는 매우 협소하며 다소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극단적 간소화는 결국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공병호의 기독론은 지극히 단순화하고 간략화한 기독론이며, 이로 인해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난맥상을 불러올 여지가 많다.

자기 계발의 한계를 보다

자기 계발과 교리에 함몰된 종교는 방향만 다를 뿐 서로 닮아 있다. 자기 계발은 부패한 구조에 대한 안목과 해석이 없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일방적 성공학에 기초한다. 한나 그렌트가 주목했던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착한 아버지 속에 담긴 가공할 만한 악의 문제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교리에 함몰된 종교 역시 철저하게 비현실적이며, 사회적 악과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읽어 낼 독법(讀法)이 없다. 예를 들어 '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을 언급하며, 치유와 회복의 문제는 삶이 아닌 영적인 문제로 보고 협소한 관점에 머무는 것 등이다. 예수의 삼중직을 설명하면서 예수가 참 선지자의 기초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에 굳건한 기초를 두고 있'(264쪽)다고 단정 짓는 것도 그렇다. 

선지자는 사회악과 부조리에 대한 고발과 비판이며, 행동하시는 말씀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데 이 책의 전체 주제인 '예수의 정체성'에 한정 짓고 있다. 교리에 함몰된 '예수의 정체성'은 예수의 삶은 없고, 예수가 누군인지에 대한 이론만 있다. 바로 이곳에서 자기 계발과 교리에 함몰된 보수적 기독교가 교우한다. 자기 계발이 한계는 기존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없다. 그 안에서 서로 경쟁하고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교회는 자기 계발과 일란성 쌍둥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공병호가 만난 예수님은 역동성이 결여되고, 기존 보수 교단의 삶이 배제된 교리관과 맞닿아 있다.

목사들에게 발칙한 도전

필자는 이 책을 다분히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일말의 가치도 없다고 말하기에는 몇 가지 점에서 탁월하다. 가장 먼저는, 목회자들에게 도전을 준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상당히 많은 목회자들이 신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공부도 중단한다. 수십 년을 설교와 성경 공부를 인도해야할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3년 동안 배운 걸 우려먹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성과 중심으로 변질된 목회는 공부할 틈이 없다. 

그런 반면 공병호는 공부를 시작한지 불과 몇 년 만에 벌써 3권의 기독교 서적을 출간했다. 그것도 결코 가볍지 않는 책들이다. 공부가 사라진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주는 질책은 아닐까. 말씀 중심에서 벗어난 한국교회는 목양(牧羊)을 하지 않고, 경영(經營)한다. 공동체가 사라진 교회는 반드시 말씀을 소외시키고, 타 교회보다 성공한 목회를 보여 주기 위한 성장에 몰입한다. 성경 공부는 성장의 수단이 된 지 오래다. 목회자들이 수십 년을 목회해도 말씀에 깊이도 없고, 책 한 권 쓰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내용을 떠나 이 책은 그릇된 성장주의에 빠진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주는 하나님의 경고처럼 들린다. 목사가 쓰지 않으면, 일반 교인들이 신학책을 쓸 것이라는.

나가면서

이 책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담대함과 무모함이 만들어 낸 어설픈 책이기는 하지만, '기독론'을 배우고 싶은 분들이라면 한번 읽어도 될 책이다. 또한 한국교회에 주는 경고이자 가능성이다. 말씀을 소외시킨 목사들에게는 경고를, 일반 교인들도 신학책을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께 주고 있다. 썩 달갑지도, 기분 좋은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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