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와 한국기독교목회자윤리위원회는 9월 2일 제27차 열린 마당 '설교 표절, 왜 심각한 문제인가?'를 개최했습니다. 한국교회 안에 만연한 '설교 표절' 실태와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논의했습니다. 정주채·한진환·안진섭 목사가 참여해 발제했습니다. 각각의 발제 전문을 나눕니다. -편집자 주

목회자들의 설교 표절은 한국교회의 경우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생명언어설교연구원(박필 대표)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90%의 목사들이 표절 설교를 한다고 한다. 많은 목사들이 예사로 다른 목사들의 설교를 베껴 설교하고 있다. 또 이렇게 하다가 교인들에게 발각되어 교회에서 사면을 당한 목사들도 있고, 그런 문제로 교회가 분란에 휩싸인 경우들도 있다. 또 어느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도 설교 표절을 하고 이것이 교인들에게 알려져 설교를 중단하고 몇 개월 동안 근신한 일이 있다.

특히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목회자들이 남의 설교를 표절하거나 도용하는 일들이 아주 쉬워졌고, 남몰래 하기에 쉬운 일이어서 양심의 가책도 주저함도 별로 없이 감행되고 있다. 또 이런 현상을 이용해서 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소위 목회 자료나 설교 자료를 제공한다는 미명하에 여러 교회들의 예배 현장에서 행해진 설교들을 녹취하여 그대로 올려놓고 있다. 필자는 이런 인터넷 사이트가 10곳도 더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성경의 어떤 본문이나 주제들을 찾아 몇 번 클릭만 하면 금세 설교 준비(?)를 끝낼 수도 있게 돼 있다. 그리고 서점에 가면 많은 훌륭한 목사들의 설교집들이 즐비하게 나와 있다. 이런 설교집들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으니 설교 표절이란 말 자체가 무색하고 새삼스러울 정도다.

설교는 계시된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해석하고 교훈하고 적용하여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지극히 거룩하고 중요한 사역인데, 이 사역이 불성실과 거짓으로 행하여진다면 교회의 쇠잔함은 물론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이루어지겠는가? 그리고 설교는 깊은 말씀 묵상과 기도 가운데서 준비되고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살전 1:5)으로 전달해야 하는 복음 전도 사역이다. 그런데 남의 설교를 베끼거나 도용해서 하는 설교에 성령께서 어떻게 함께하시며, 어디에서 확신과 능력이 나오겠는가.

설교 표절이란 무엇인가

설교 표절이 무엇인지 그 기준과 한계를 정하여 분명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표절이 무엇인가? 어디까지가 인용이고 어디까지가 표절인가? 남의 설교를 인용할 수도 있고 참고할 수도 있는데 어디까지가 인용이고 참고이며 어느 정도가 표절인가?

설교 표절은 논문 표절과 달라서 그 내용과 정도를 규정하기가 어렵다. 논문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책이나 논문을 참고하거나 인용하였으면 그 근거를 밝히면 된다. 설교에서도 논문에서처럼 그렇게 할 수도 있겠으나 글로 써서 전달하는 경우와는 달리 말로 전달하는 설교에서는 강한 현장성과 즉각성 때문에 인용한 내용이나 참고한 자료의 근거를 일일이 밝히는 일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더라도 인용 근거만 밝히면 표절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 표절이나 도용이라는 도덕적 비난은 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과연 그 설교가 진정한 설교이며 효력 있는 말씀의 증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설교 표절을 검증하는 시금석으로서의 설교자의 주체성

필자는 설교를 준비하는 설교자의 인격적인 주체성이 설교 표절을 검증하는 시금석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설교자의 인격과 삶을 통과하여 선포될 때 설교가 된다. 설교는 설교자의 인격과 삶을 통하여 나온 하나님의 말씀이다. 설교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표절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인격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인격과 노력을 통하여 나온 것을 자기에게서 나온 것처럼 설교하는 거짓 행위이다.

쉽게 말하면, 설교 준비를 하는 사람의 주체적인 활동 여부가 표절을 분별하는 시금석이란 말이다. 특히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설교 준비의 바탕이다.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소통하는 일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여기서 설교 준비의 바탕이 닦여야 한다. 설교를 준비할 때 구체적으로 기도하며 본문을 묵상하고, 주석이나 관련 서적들을 참고한다. 때론 다른 사람의 설교를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뒤로, 본문의 중심 주제를 파악하고 대소지(아웃라인)를 잡은 후 원고를 작성한다.

준비 과정은 약간씩 다를 수 있겠지만, 만약 설교자가 이런 과정을 밟으면서 자신이 주체적으로 설교를 준비했다면 그런 설교는 창작이지 표절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의 생략하고 참고서나 설교집 등을 참고하고 인용해서 쉽게 준비를 했다면, 그것은 표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표절을 판단하는 기준은 설교자가 얼마나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신이 주체적으로 준비해서 설교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왜 표절을 하는 것일까

첫째는 설교 횟수가 너무 많아서다. 한국교회의 경우 목사들이 공식적으로 해야 하는 설교만 해도 한 주간에 10회 이상이다. 작은 교회들은 담임목사 한 사람이 이 설교들을 다 맡아서 해야 한다. 그러니 항상 열심히 준비해도 역부족일 경우가 많을 것이다. 여기서 새벽 기도회에서 하는 설교를 정식 설교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주간에 세 번 이상 설교해야 하는데 이 정도만으로도 너무 무거운 짐임엔 틀림없다.

둘째는 게으름이다. 설교자가 말씀 묵상과 기도 생활에 게으른 것이다. 또 부지런히 일하는 목사라 하더라도 말씀 준비와 전파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다른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겨 말씀 사역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그 목사도 성실한 목사라고 할 수 없다.

셋째는 정직하지 못한 성품 때문이다. 정직함은 인격의 기초다. 이는 지도자에게 가장 강하게 요청되는 성품이다. 그런데 이것이 결여된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전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설교하면서도 정직하지 못 하다면 과연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통하여 무슨 일을 하실 수 있겠는가. 교인들이 그런 목사의 설교에 어떻게 은혜 받을 수 있겠는가.

넷째는 설교자로서의 기본 자격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적용하며 설교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기본적인 능력과 자격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설교는 계속해야 하고 준비는 잘 안되니 남의 것을 베끼는 수밖에 없다.

교회는 일정한 신학 과정을 이수한 사람을 심사하여 설교를 할 수 있는 면허를 준다. 그런데 이런 자격증이 난발되고 있다. 신학교에서 학점만 이수하면 별다른 검증 없이 자격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주 부실한 신학 훈련을 받은 사람들도 많다. 한국교회 쇠락의 원인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고 본다. 설교 표절 문제는 좀 더 원천적으로 말하면 신학 교육의 문제요 신학교 난립의 문제이다.

신학교 난립과 신학 교육의 부실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줄 알지만 이를 조정하고 통제할 어떤 사람도 기관도 없다. 설교자로서의 소양도 자격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목사가 되어 과중한 설교 사역을 하게 되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절도 하고 도용도 하게 되는 것이다.

설교 표절이 가져올 결과들

설교 표절이 왜 심각한 문제인가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설교 표절은 분명히 부정직하고 불경건한 일이다. 설교자는 하나님이 부르시고 세운 말씀의 사역자들로서 그가 수행하는 사역은 고상하고 거룩한 사역이고 고도의 영성과 경건이 요구되는 사역이다. 그러므로 설교 표절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설교 표절은 단순히 저작권에 대한 침해나 윤리적인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범죄 행위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표절은 게으름과 부정직에서 나오는 도둑질에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큰 불경이며 불충이다. 그리고 설교자 개인의 범죄를 넘어 표절 설교가 가져오게 될 결과를 생각하면 표절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가를 좀 더 심각하게 느낄 수 있다.

첫째로 설교 표절은 설교자 자신을 영적으로 황폐하게 만든다. 설교는 기록된 말씀이 설교자의 인격과 삶을 거쳐 선포되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설교자 자신이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연구하고, 그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여 경험하고 그런 가운데 자신이 은혜 받고 그 받은 은혜를 성도들에게 흘려보내야 한다. 그런데 설교자 자신에게 이런 노력도 몸부림도 없이, 그 말씀이 의의 말씀임(히 5:13)을 전혀 경험치 못하고 남이 준비한 것으로 설교하며 사역을 때운다면 그 목사의 영혼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의 믿음이 어떻게 되겠는가. 얼마 지나지 않아 황폐하게 되고 말 것이다.

둘째는 이런 설교는 교회를 황폐하게 만든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베껴서 하는 설교가 어찌 성도들에게 은혜가 되겠는가. 자신의 인격과 삶을 통과하지 아니한 말씀에 무슨 확신이 있으며 능력이 있겠는가? 자신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전하는 말씀, 자신이 은혜를 경험치 못하고 전하는 말씀이 어찌 성도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며 그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겠는가. 결국 성도들이 지치고 허약해지고 교회가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는 게으르고 악한 목사들 때문에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셋째로 말씀 사역이 제대로 안되면 대사명의 성취는 불가능해진다. 대사명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세례를 베풀고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명령이고, 이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성취를 위한 지상명령이다. 이 명령은 보냄받은 자들의 말씀 증언을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설교자들의 불경과 불충으로 인해 교회 안에서부터 말씀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구원의 복음이 어찌 세상에 능력 있게 전파되겠으며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설교 표절은 하나님을 속이고 교인들을 속이는 일이다. 따라서 자신도, 그런 설교를 듣는 교인들도 다 그 영혼이 쇠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이런 사역자들은 외식하는 자로 정죄되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정주채 / 향상교회 은퇴목사·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서기·바른교회아카데미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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