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표절 문제는 일부 목회자에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교회의 크고 작음에 관계없이 목회자들의 설교 도용 시비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담임목사의 표절 시비는 교회 내분으로 이어진다. (관련 기사 : 설교 표절한 목사, 갈라선 교인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설교 표절 문제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다만 예전에는 교인들의 의식 수준이 높지 않았고, 언론에서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인터넷 발달은 목회 환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온라인상에는 설교 자료를 제공하는 사이트만 20곳이 넘는다. 클릭 몇 번만으로 설교 준비를 끝낼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관련 기사 : 설교 표절 공장으로 변질된 사이버 공간) 한편, 인터넷을 통해 목회자들의 설교가 공유되면서 설교 표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제27차 열린 대화 마당 '설교 표절, 왜 심각한 문제인가?'가 9월 2일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개최됐다. 이번 대화 마당은 한목협이 교회 재정 투명성과 담임목사 대물림 근절 등 자정 운동을 펼치기 위해 조직한 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손인웅 위원장)에서 기획했다. 포럼에는 200여 명의 참석자뿐만 아니라, 20명가량의 교계 기자가 몰려들어 교계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김경원 대표회장)는 '설교 표절, 왜 심각한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9월 2일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제27차 열린 마당을 개최했다. 포럼에서는 △한국교회의 설교 표절 실태 △설교 표절의 문제점 △설교 표절 방지 대책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발제자로는 각각 정주채 목사(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서기)·한진환 목사(서울서문교회)·안진섭 목사(새누리2교회)가 나섰다. 200석 규모의 조에홀에는 빈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과도한 설교 횟수가 가장 큰 문제…신학대학원 커리큘럼 개편 시급

남의 설교 베끼기는 한국교회 안에 이미 만연해 있었다. 기조 발제에 나선 정주채 목사는 생명언어설교연구원(박필 대표)의 설문 조사를 근거로 목사들의 90% 이상이 표절 설교를 한다고 했다. 다른 목사들의 설교를 베껴 전하다가 교인들에게 발각돼 사면당한 목사들도 있고, 교회가 갈린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한진환 목사 역시 표절 문제로 내홍을 앓고 있는 교회가 한둘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인터넷과 미디어의 발달, 교회 홈페이지 활성화 같은 현대 문화의 특성상 상황은 갈수록 더 심각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진환 목사 발제문 바로 보기)

표절 설교는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할 수 없다. 패널들은 표절 설교는 다른 사람의 인격과 노력의 결과물을 자신의 것인 양 속이는 '도둑질'이라고 말했다. 상습적인 설교 도용은 목회자와 교인 모두를 죽이는 행위라고 했다. 정주채 목사는 "설교는 계시된 말씀을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해석하고 교훈하고 적용하는 지극히 거룩한 행위다. 이 사역이 불성실과 거짓으로 행해진다면 교회의 거룩함은 물론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가 어떻게 가능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안진섭 목사 역시 "설교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행위이고 설교 표절은 부정직한 행위다. 진리의 말씀을 부정직한 방식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라고 반문했다.

설교 표절은 한국교회의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었다. 패널들은 표절의 이유로 △과도한 설교 횟수 △목회자로서의 자질 부족 △신학교 난립과 신학 교육의 패착 △목회 성공주의 신드롬을 꼽았다. 정주채 목사는 새벽 기도회, 수요 예배, 금요 철야 기도회 등 목회자들은 한 주에 10회 이상 설교해야 한다고 했다. 전도나 심방 같은 대외 활동이 많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10편 이상의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이와는 별개로, 유명 목사의 설교를 도용함으로써 자신의 역량을 과시하려는 불순한 동기가 크게 작용한다고 했다. 좋은 설교를 통해 명예도 얻고 교회 성장도 꾀하고 싶은 욕망이 설교 표절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정주채 목사 발제문 바로 보기)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안진섭 목사는 설교 베끼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표면적 대안과 근원적 대안으로 나누어 제시했다. 표면적 대안은 목회자들의 설교 횟수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일방적 선포 방식의 예배를 말씀 묵상과 나눔의 형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시무하고 있는 새누리2교회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새누리2교회의 새벽 기도회는 교인들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는 경건의 시간이다. 수요 예배는 좋은 교재를 선택해 교인들과 성경 공부를 한다. 그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목회자와 교인들이 바른 예배를 위해 끊임없이 소통하라고 했다.

안진섭 목사는 근원적 대안으로 신학대학원의 커리큘럼 개편과 연장 교육 기관 설립을 주장했다. 그는 대다수의 신학대학원에서는 설교학 필수과목이 불과 한두 개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미국 신학교의 예를 들며, 현장의 목회자들을 설교학 교수로 발탁해 설교학 강의를 늘리고, 목회 현장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현재 한국의 목회자들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면 더는 훈련받을 기회가 없다고 했다. 교단별로, 혹은 교단과 교파를 초월하여 목회 훈련과 설교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연장 교육 기관을 설립하여 실제적 차원에서 목회자들을 도울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안진섭 목사 발제문 바로 보기)

▲ 기조 발제에 나선 정주채 목사는 설교 표절은 논문 표절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그는 논문 표절은 개인의 윤리적 문제로 끝나지만, 설교 표절은 목회자 개인의 영성 문제를 넘어 한국교회의 미래와 직결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왼쪽부터 정주채 목사(한국교회목회자윤리위원회 서기)·한진환 목사(서울서문교회)·안진섭 목사(새누리2교회). ⓒ뉴스앤조이 장성현

어디까지가 표절?…"베끼는 걸 알아도 속수무책, 공론화가 우선"

기조 발제 후에는 자유 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토론은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전 총회장 장차남 목사의 질문으로 시작했다. 장 목사는 설교 표절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설교를 연설문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일일이 출처를 밝힐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반대로 설교에 학술 논문과 같은 엄격한 잣대를 적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안진섭 목사는 연설이 청중을 설득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설교는 그리스도 사건의 증언이라고 답했다. 따라서 설교자 개개인의 구원사적 경험과 증언이 결여된 설교는 설교일 수 없다고 했다.

패널들은 설교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설교 표절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설교 도용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표절의 기준을 규정하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몇 가지 틀을 제시했다. △다른 사람의 설교를 통째로 베껴서 설교하는 경우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데도 습관적으로 남의 설교를 표절하는 행위 △남의 설교를 짜깁기해 자신의 것처럼 둔갑시키는 행위는 이유 불문하고 설교 표절에 해당한다고 했다.

담임목사의 설교 짜깁기 문제로 교회 분쟁을 겪고 있는 교인의 발언도 있었다. 김 아무개 장로는 담임목사의 설교 표절 시비 후 교인들은 담임목사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했다. 그는 목회자들의 안하무인 격인 태도가 특히 문제라고 했다. 표절 사실이 들통 난 뒤에도 담임목사는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한다고 했다. 현재 교회는 담임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과 반대하는 교인들로 나뉘어 심한 갈등에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담임목사의 설교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고 했다. 설교를 듣는 중에도 표절 설교인지 아닌지 계속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뾰족한 해법은 없었다. 손인웅 목사(덕수교회 원로)는 담임목사의 설교가 이단 사설이 아닌 이상, 노회나 총회에서 직접 나서 치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교인들의 90% 이상이 문제를 제기한다면, 노회에서 조사위원회를 파견하는 정도라고 했다. 패널들은 이번 포럼을 계기로 설교 표절 문제가 공론화되기를 소망했다. 한국교회가 이미 사회적 신뢰를 잃은 상태에서, 계속되는 설교 표절 시비는 교회 안에서의 신뢰마저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 목사는 다음의 말로 발제를 마무리했다.

"설교 표절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있을 것이다. 어디까지를 설교 표절로 볼 것인가의 문제부터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설교 표절에 대한 문제의식이 그동안 많이 공론화되거나 연구되지 못했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지금과 같이 설교 표절이 방치된다면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질적 저하와 그로 인한 한국교회의 추락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아니, 우리는 그런 상황을 지금 목도하고 있다.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은 이미 사회의 신뢰를 잃은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 설교 표절이 계속된다면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교회 안에서의 신뢰조차도 잃어버릴 것이다." 

▲ 발제 후 이어진 자유 토론 시간에는 발제자들과 참석자들 간에 다양한 의견이 오갔다. 한목협 신학위원장 지형은 목사는 용어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설교학회 등 공신력 있는 기구가 나서 설교 표절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놔야 목회자들의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참석자들은 공론화가 우선이라며, 개교회 차원을 넘어 노회나 각 교단 차원에서 설교 표절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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