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가난한 자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의 헌법과도 같은 레위기에서는 희년이 도래했을 때 토지 반환, 노예해방, 부채를 탕감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자본주의 체제는 가난한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는 것을 정당화시킬 뿐만 아니라 착취와 억압을 부추기는 반(反)성경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가계 부채 1000조 원이 넘는 시대, 극심한 채권 추심에 시달리며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제약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생계형 채무 불이행자들이 100만이 넘는 현실 속에서 성경이 명하는 바와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연재 순서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부채, 오늘의 현실 : 빚 독촉의 지옥 - 제윤경 대표(희망살림 상임이사)
2. 부채 탕감의 성경적 근거 - 정종성 교수(백석대 신약학)
3. 교회는 빚 탕감의 실천 공동체 - 방인성 목사(희년함께 공동대표)
4. 부채 탕감에 대한 교부들의 관점 - 김유준 목사(연세대 겸임교수)
5. '희년'과 부채 탕감의 근원적 해법 - 남기업 소장(토지+자유연구소)

부채 탕감, 희년 실천의 시작

희년은 우리가 구하는 하나님나라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보여 준다. 어느 분이 말하듯이 희년은 하나님나라의 모델하우스다. 하나님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알고 싶으면 희년에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면 된다.

희년의 목표는 모든 사람의 자유와 해방이고, 거기에 이르는 핵심 수단은 토지 반환, 부채 탕감, 노예해방이다. 노예노동에 시달렸던 사람이 자유인이 되고, 갚아야 할 빚이 완전히 사라지고, (경제) 생활의 터전인 토지를 되찾게 되는 것이다. 상상해 보라. 신체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거기다 빚도 사라지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농사지을 수 있는 땅까지 돌려받는 상황을. 땅 없는 자의 설움과 빚에 짓눌린 사람들의 마음을. 희년은 감격과 환히 그 자체다. 희년이 도래하면 모든 사람들의 관계가 수평적으로 변한다. 지배와 착취가 종식된다. 사회가 건강해지고 문화가 꽃핀다. 참된 민주주의가 도래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삶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불안하다. 고통과 불안은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마음이 발붙일 곳이 없게 만든다. 고통과 불안의 원인은 간명하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각종 제도가 희년의 정신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나라는 현재, 땅 없는 사람은 죽도록 고생할 수밖에 없고, 대다수의 노동자는 뼈 빠지게 일해도 겨우겨우 먹고살고 있는 것이며, 빚 독촉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내몰리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희년'이다!

그러면 이 땅에 희년을 일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무래도 반(反)희년적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 그러니까 자유와 해방을 철저하게 빼앗긴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돕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 땅의 100만 명이 넘는 채무불이행자의 부채를 탕감해 주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극심한 채권 추심에 시달리는 채무불이행자는 자유를 빼앗긴 지 이미 오래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인간의 존엄성도 파괴되어 버렸다.

우리 시대의 '강도'와 피 흘려 죽어 가는 '이웃'은 누구인가

그런데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 땅의 채무불이행자들을 양산한 직접적 원인은 약탈적 금융 제도지만, 이들을 약탈적 금융 제도의 먹잇감으로 내몬 요인은 불의한 토지제도와 잘못된 노동 제도임을 알게 된다. 반(反)희년적 제도를 강도로 비유하자면, 채무불이행자는 강도의 칼에 찔려 피 흘리며 죽어 가고 있는 이웃이다. 극심한 채권추심에 시달리는 채무불이행자들은 여지없이 비(非)토지 소유자이고 실업자이거나 저임금·불안정 노동에 노출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 기독인들이 먼저 강도 만난 이웃인 채무불이행자의 빚을 탕감해 주는 선한 이웃이 되어 주어야 한다. 아울러서 그들이 다시는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다양한 교육도 제공해야 한다.

제도가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가 모든 사람들의 부채를 탕감해 줄 수는 없다. 지금 부실 채권시장의 규모가 10조 원가량이 되는데, 이것을 완전히 탕감하기 위해서 몇 천억 원을 모은다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바람직하지도 않다. 따라서 우리는 채무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되어 있는 금융 제도를 개혁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먼저 채권자가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정확하게 심사하여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즉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를 막을 수 있도록 대출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 외국에서는 금융기관이 대출할 때 채무자의 상환 능력을 엄격하게 심사하여 대출해 줄 책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를 어긴 대출은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로 간주하여 규제하고 있다. 또한 현행 개인 회생 절차와 파산 면책 프로그램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 채무불이행자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심사 기준을 낮추고 심사 기간도 줄이고 법적 비용도 대폭 낮춰 줘야 한다. 그래야 금융기관의 대출도 엄격해지고 채무자 연체 시 채무조정에 적극 나서게 되는 한편, 채무자도 빨리 부채의 늪에서 빠져나와 정상적인 경제생활로 복귀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여기에 또 하나 덧붙여야 할 것은 정부가 복지를 확대해서 저소득층이 부채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복지를 제공해야 할 사람들에게 대출을 권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학생 등록금을 대폭 낮춰 주는 것이 아니라 대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처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 서민 금융 상품이라고 내놓았던 햇살론, 바꿔드림론, 미소금융, 희망홀씨, 새희망홀씨의 대상자들은 '대출'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복지'가 필요할 계층이다. 이들에게는 대출을 해 주면 해 줄수록 부채의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것은 각종 서민 금융 상품의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궁극적 해결책

그러나 이렇게 채무자와 채권자를 균형 있게 대하도록 금융제도를 개혁한다고 하더라도, 희년의 토지 반환, 즉 평등한 토지권 정신을 회복하지 않으면 한계가 크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불의한 토지제도를 개혁하는 데까지 밀고 나아가야 한다. 농경시대라면 모를까 요즘 시대에 토지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지만, 토지가 없으면 인간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고, 모든 경제 활동이 토지 위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어도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토지는 주거, 일자리, 빈부격차, 금융 등 거시 경제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고, 인과 체인을 추적해 보면 채무불이행자가 양산되는 핵심 원인이 바로 토지문제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는 희년을 온전히 실현하는 것까지 염두에 두면서, 반(反)희년적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인 채무불이행자의 부채를 탕감하고, 금융 제도를 개혁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교회의 희년 실천

희년 실천의 주체는 교회이다. 하지만 교회가 희년 실천을 고민하기 전에 명심해야 할 사실은 고통받는 사람들 거의 대다수가 반(反)희년적 제도의 희생자들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결코 개인의 잘못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토지제도와 노동 제도와 금융 제도가 희년의 원리에 맞게 개혁되면 채무불이행자는 거의 사라진다.

그러면 희년을 교회 내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교회 내에서 이미 엄청난 빈부격차가 존재하고, 실제로는 교인들 간의 채권-채무 관계 때문에 속병을 앓는 사람도 상당할 것이다. 같은 교회 교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한다. 그러면 형제자매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일정한 기간이 되어서 못 갚으면 변제가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하고 탕감해 줘야 한다. 그것이 교회 내에서 실천할 수 있는 원론적인 부채 탕감이다.

그리고 각 교회 실정에 맞는 희년 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각 교회가 희년에 대한 상상력을 복원해야 한다. 희년은 상상력의 보고(寶庫)다. 각 교회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희년을 오늘날에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사역을 개발하여 전개해야 한다. 희년 기금을 만들어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일정액을 지원하고 있는 새맘교회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희년, 교회 개혁과 사회 개혁의 키워드

지금 한국교회의 위기 상황을 염려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제각각이다. 평가의 잣대가 다르니 돌아가야 할 목표 지점도 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님나라를 구하자!"라고 하지만 그것의 실체는 대단히 모호하다. 나는 '희년'이 교회가 돌아가야 할 말씀의 실제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희년은 깊고 넓으며 뜻하는 것이 구체적이다. 희년은 공평과 정의이고, 수평적 관계를 지향하는 민주주의이며, 생태 환경 보존을 뜻하는 녹색(green)이고, 예수의 대속(redemption)의 모형이며, 정의와 자비의 조화이다. 요컨대 희년이라는 렌즈를 통해서 오늘날 한국교회를 바라보면 문제의 실체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도 명확하게 알 수 있다.

더구나 희년은 한국 사회의 대안이기도 하다.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의 원형(prototype)이 희년에 들어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를 괴롭히고 있는 3대 문제인 토지문제, 가계 부채 문제, 노동문제(일자리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희년에서 찾을 수 있다. 희년은 한국교회와 한국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키워드인 것이다. 그러므로 부채 탕감 운동은 한국교회가 희년을 실천하도록 견인하고 한국 사회에 희년을 구현하기 위한 마중물인 셈이다.

남기업 / 토지+자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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