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6시, 청도 삼평리 하루가 기도로 시작한다. 고압 송전탑이 마을에 들어서지 않길 바라는 간절함이 담긴 기도다. 기독교와 거리가 먼 주민들이었지만, 반대 활동을 함께하는 김미화·백창욱 목사 덕분에 이제 기도와 예배에 익숙해졌다.

▲ 8월 15일, 새벽이슬과 성서대구,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삼평리에 모였다. 7월 강행된 한전 송전탑 반대 현장에 모인 이들은 마을에 평화를 빌며 기도했다. 할머니들이 한평생 일궈 온 고향 땅에 고압 송전탑을 들여 놓지 말라고 기도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청도군은 밀양시 바로 위에 있다. 밀양에는 지난 6월 11일, 행정대집행으로 76만 5000볼트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섰다. 청도에 세워지는 34만 5000볼트 송전탑이 이를 잇는다. 신고리원전부터 밀양-북경남-청도-대구를 잇는 고압 송전탑 39기가 이미 청도에 세워졌다. 주민들의 싸움은 마지막 한 호기, 23호 송전탑 건설 현장인 삼평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삼평리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2012년 7월 불거졌다.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졸속 주민 합의로 345kV 23호기 공사를 강행한 때다. 22~23호 송전선은 마을과 농토를 가로지른다. 고압 송전탑은 인체 유해한 전자파를 내뿜는다. 사람이 살 수 없으니 땅도 건강한 농작물을 키울 수 없다. 그 지역 전체가 재산 가치를 잃는다. 한전은 보상을 하지만, 밀양이나 청도나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보상금은 안중에도 없다. 고향 땅에 생명 죽이는 철탑을 세우지 않기만을 바란다.

"가만히 말로 해선 안 돼요…죽음 각오하고 싸우죠"

▲ 할머니들은 노쇠한 몸에도 매일같이 공사 현장에 나온다. 현장 입구에 앉아, 드나드는 공사 차량을 막고, 관계자에게 송전탑 건설을 멈춰 달라고 말한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청도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매일같이 공사를 막았다. 한전과 건설 업체 직원들에게 떠밀리고, 업무방해죄로 경찰에게 끌려 나왔다. 2012년 초기 현장에는 젊은 사람이라 해 봐야 부녀회장 내외와 김미화 목사(예장통합) 등 4명 정도였고, 일흔을 넘긴 할머니가 다였다. 마을 토박이 김미화 목사는 할머니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저지하다 나동그라지기도 하고, 직접 레미콘 아래 들어가 공사를 막기도 했다.

▲ 여름밤이 깊어질 때까지, 할머니들은 공사 현장을 지킨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김 목사의 팔 곳곳에 시퍼런 멍이 눈에 띄었다. 공사 현장 입구를 막아서다 한전과 건설사 직원, 경찰에게 끌려 나오며 생긴 멍이다. 그래도 요즘엔 쉽게 연행되지 않는다. 승강이를 벌이다 병원에 실려 간 이력 때문이라고 김미화 목사는 말했다. 김 목사는 현장에서 서너 번 응급실을 오갔다. 김 목사에게 두렵지 않느냐 물었다.

"두려움보다는 마을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생명에 대한 의지가 더 강했어요. 거기 (레미콘 아래) 들어간다는 것은 내 죽음을 각오한다는 거죠. 차가 움직이면 죽는 거잖아요. 그런 각오가 있었어요. 두 번 들어갔잖아요. 2012년 9월, (현장에서) 나가는 레미콘을 잡았어요. 차를 막기로 했는데, 경찰이 열댓 명 둘러서니 할머니들이 꼼짝 못하고 있는 거예요. 뛰어가서 레미콘 아래 들어갔다 끌려 나왔죠. 그리고 포크레인 (아래 들어갔다). 위급한 상황에는 어쩔 수 없이 행동해야 한다고 봐요. 가만히 말로 해서는 될 게 아니고 죽음을 각오하고. 한 번밖에 없는 생명인데…."

공사는 주민 반발로 2년 가까이 중단됐다. 한전은 올 6월, 대체집행을 청구했다. 반대 농성장 철거를 법원에 맡긴 것이다. 첫 심리는 7월 25일이었다. 하지만 7월 21일 새벽 5시, 난데없이 공사 차량과 경찰이 삼평리에 들이닥쳤다. 소식을 듣고 현장을 찾은 20여 명 중 10명이 연행됐다.

그렇게 30일째(8월 19일 기준), 345kV 송전탑 건설은 진행 중이다. 한 날도 멈추지 않고 공사를 강행했다. 육로도 모자라 헬기를 띄워 건축 자재를 날랐다. 속도가 빨라 11월 완공을 내다보는 공사에, 적절한 보상과 사과라도 받아 내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김 목사는 백 보 양보하더라도 송전선 지중화를 요구한다고 했다. 한전은 지중화하는 데 예산이 150억 원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전탑 건설 중단이) 99% 불가능하다고 그래요. 저는 목사로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잖아요. 1%로 가능케 하는 하나님을 봐요. 지중화 요구도 많이 양보한 겁니다. 지중화까지 안 된다고 하면 끝까지 싸워야죠. 다 죽을 각오로 싸우면 가능하다고 봐요. 조금 과격할지 모르지만(웃음)…여기 보내 주신 사람들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이 이 일에 함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 마을 주민이기도 한 김미화 목사는, 송전선로 지중화를 요구하고 있다. 한전은 막대한 예산이 들어간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목사는 할머니들 곁에서 끝까지 이 싸움을 해내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8월 18일, 삼평리 할머니들은 경북도청을 찾았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한전과 정부 일이라 강제할 권한이 적지만, 중재 위해 노력하겠다"며, 삼평리 주민과 청도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 한전과 경북도청 대표 4자 대면을 꾸렸다. 공사 중단과 지중화 요구 과정에서, 이강현 한전 대구경북건설지사장은 자기 선에서 결정할 수 없다며 상부에 보고하겠다고 말했다. 결정 사항 없이 끝난 협의에, 할머니들과 공동대책위는 경북도청과 도지사의 적극적 중재 노력을 호소하기 위해 도청에서 밤을 지새우기로 했다.

송전탑 찬성도 반대도 내 이웃…나아갈 길은 밀양과 지속적 연대

삼평리 주민들이 모두 송전탑 반대 뜻을 함께하는 건 아니다. 마을 이장을 필두로, 찬성 입장을 표명한 이들이 있다. 여기서 한전이 공사 허가 근거로 내놓는 주민 합의서가 나왔다. 하지만 김미화 목사는 송전탑 반대 활동이 주민 간 갈등으로 흐려지면 안 된다고 했다. 한전과 사업을 밀어붙이는 정부와 싸우는 거지, 주민들끼리 옳다 그르다 따질 게 아니라고 했다. 마을살이에도 문제가 생긴다.

▲ 송전탑은 마을 주민 간 사이도 갈라 놓았다. 김미화 목사는 찬성 측 주민도 반대 측 주민도 생활 공동체로 엮여 있는 시골 마을에서, 더 이상의 갈등은 빚어지지 않길 바랐다. 아래는 농성장 한편에 마련된 응급 약품이다. 공사 현장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몸싸움이 벌어진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제가 한동안 보니 저분들(찬성 측 주민)도 많이 소외됐다,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는(반대 측) 막 신문에 계속 나고 하는데, 기사를 보면 자기들만 나쁜 사람 된 거야…개인적으로 물으면 다 반대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장을 조금 두려워하는 것 같아…송전탑이 세워지면 또 싸우던 할머니들이 많이 힘들겠죠.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고."

김 목사는 지금 송전탑 건설 반대 현장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몇 년 전 당한 교통사고 후유증에 몸이 힘들고, 내면에 힘을 키우며 싸움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다. 공사가 많이 진행된 상황에 타협하지 않고 어떻게 지중화 요구를 관철시킬 것인가 하는 고민도 있다. 밀양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싸움을 우리 삼평리만 해선 안 되고 밀양과 계속 연대해 가야 해요. 탈핵과 함께요. 여기에 한 호기가 안 세워지나, 밀양에 한 호기가 안 세워지나 똑같아요. 하나만 안 세워지면 서울까지 못 가요. 앞으로 싸움 방향이 그래야 해요. 여기가 끝난다 할지라도 모여서 밀양 가서 막으면 돼요. 삼평리 마을 하나가 아니라 나라가 살기 위해서. 여기 오시는 분들도 다 그런 각오로 오시는 거잖아요."

자기 동네처럼 삼평리 지키는 목사, "날 구속하는 건 하나님뿐"

▲ 지난해 10월, <뉴스앤조이>가 삼평리에서 만났던 백창욱 목사는, 아직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과 교회는 대구에 있지만 약자들이 고통받는 현장에 함께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백 목사가 주중에 머무는 천막이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김미화 목사처럼 마을 주민은 아니지만, 매일 현장을 지키는 또 한 명의 목사가 있다. 백창욱 목사(새민족교회)는 2012년 12월부터 지금까지 청도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해 오고 있다. 백 목사의 집과 교회는 대구에 있다. 주중엔 공사 현장 근처 농성장에서 즉각적 대응을 하기 위해 지내고, 금요일 밤에 내려가 주말을 보내고 다시 올라온다. 지난해 10월, <뉴스앤조이> 기자는 그를 "공권력이 넘어야 할 첫 번째 관문"이라 소개했다. (관련 기사 : 송전탑 농성장 지키는 목사가 하는 말)

백창욱 목사는 7월 21일 한전이 별안간 들이닥쳐 공사를 강행한 것이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자신을 포함해 10명이 연행된 이 사건은 오히려 대구 경북 시민들의 적극적 대응을 일으켰다. 현장을 찾는 이들이 머물 수 있는 반대 천막도 그렇게 세워졌다.

8월 8일, 백창욱 목사는 다시 연행됐다. 공사 차량을 막아선 백 목사에게 경찰은 업무방해죄를 물으며 두세 차례 물러서라 경고한 직후 체포했다. 검사는 영장을 청구했다. 예상치 못한 영장 청구에 백 목사는 서둘러 변호사를 구하고, 활동가들은 탄원서를 발빠르게 작성했다. 영장은 실질 심사 후 기각됐다.

백 목사는 이 일을 얘기하며 경찰이 한전 용역이 됐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마을 주민들의 생존권과 재산권, 인권은 안중에도 없이 송전탑 완공만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현장에 있던 한 경찰 간부는 허가가 난 공사를 막으면, 이를 제지하는 게 경찰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 와중에 훼손받는 주민들의 인권과 생존권은 상관없는 거냐는 질문에, 그런 현장을 목격한 후 다시 얘기하라고 했다.

백 목사는 경찰이 한전의 위반 사항은 문제 삼지 않는다고 했다. 23호기가 건설되는 현장은 환경영향평가에서 헬기 사용이 금지된 곳이었지만 한전은 산업부와 변경 협의를 했다며 헬기를 띄웠다. 백 목사를 비롯해 이를 규탄하려던 이들은, 업무방해죄로 연행됐다. 소음과 비산 먼지 대책도 없이, 어떤 날은 하루에도 50~60번 헬기가 오갔다. 그러기를 반복하던 즈음, 소가 송아지를 유산하고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다. 유정란을 낳던 닭은 알 낳기를 멈췄다. 주민들은 헬기 소리 때문이라고 했다.

"청도에서 가장 '무서운' 법이 업무방해죄입니다.…(업무방해죄로 연행돼 봤지만) 나를 인신 구속하는 건 하나님만이 할 수 있어요. 저라고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매일매일 무서워요. 하지만 두려움은 피하면 커지고 정면으로 맞서면 작아집니다. 하루가 시작할 때마다 힘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요.

공사는 진행되고 있어요. 매일. 그래도 우리가 이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양심, 정의에서 이기고 있으니까요. 여러 사람이 우리를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우리가 정의 편에 서 있다는 걸 알게 돼요."

▲ 8월 16일 새벽이슬 팀은 헬기장을 찾았다. 오른쪽 아래,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곳이 그곳이다. 한전 직원들은 헬기장 입구 멀찍이부터 길을 막아섰다. 한전 측 사람들 사이로 경찰도 보인다. 새벽이슬 팀은 막힌 입구에서 삼평리 마을에 정의와 평화를 구하는 기도를 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백 목사는 많은 그리스도인이 함께하는 건 기대하지 않았다. 백 목사는 소수의 그리스도인이라도 연대의 끈을 놓지 않고,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8월 15일 삼평리 현장을 찾은 새벽이슬, 성서대구와 같은 팀처럼 지속적으로 함께하면 된다고 말했다.

"2012년에 12월 성탄 예배로 처음 함께하는데, 할머니들이 참 뻣뻣하셨어요. 그런데 지금은 보세요. (예배) 잘 따라와 주시잖아요. 청도 이곳은 모두가 힘들고 연대가 절실한 상황이에요. 찬송가를 모르는 게 문제가 아니죠. 교회가 말만 하지 않고 고통을 함께 겪는 게 중요합니다."

아침 여는 기도로 시작한 삼평리의 하루는 저녁, 닫는 기도로 끝난다. 19세에 결혼해 20세에 이 마을로 들어왔다는 박순쾌 할머니(석동댁)는 77세 평생 기독교를 접해 본 적 없지만, 이제 기도가 낯설지 않을 정도다.

지금 삼평리는 백 목사의 말처럼 현장 연대가 필요하다. 공사 진행 속도가 빨라, 수시로 주민과 한전, 경찰 간 마찰이 빚어진다.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는 시민사회의 연대를 요청했다. 삼평리 송전탑 반대 활동을 위한 후원도 받는다.  

▲ 공사 현장 바로 주변에는 경찰이 상시 대기하고 있다. 대형 버스 안에 있던 경찰들은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송전탑 건설을 막으면 즉시 달려온다. 김미화 목사와 백창욱 목사는 현장 연대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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