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인근에 위치한 청도군 각북면은 과일이 달기로 유명하다. 여름이 되면 이 지역 사람들은 복숭아를 수확하고, 사과나무와 감나무에 약을 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낸다. 올해는 6월부터 복숭아가 출하되기 시작했다. 추석이 빨리 찾아오는 탓에 주민들은 수확을 재촉하고 있다. 그런데 다 익은 복숭아들이 아직까지 나무에 매달려 있는 밭이 있다. 삼평1리 할머니들의 밭이다. 할머니들은 동이 트면 과수원과 논밭 대신 평화공원 앞을 찾는다. 345kV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농성을 벌이는 곳이다. 

▲ 삼평1리 할머니들은 하루 종일 공사장 앞을 지키고 있다. 삼평1리 주민들이 평화공원이라고 불렀던 이곳은 원래 김춘화 씨의 논이었다. 2012년 7월 한국전력 인부들은 송전탑 공사를 위해 이곳을 굴착기로 밀어 버렸다. 그리고 지난 7월 21일 새벽, 경찰을 대동한 한국전력은 이곳을 기습 점거해 철문과 울타리로 둘러싼 공사장으로 만들었다. 사진 왼쪽부터 이외생 씨(77), 이억조 씨(75). ⓒ뉴스앤조이 임수현
▲ 제1농성장의 모습. 처음 할머니들은 이곳에서 돌아가며 불침번을 섰다. 언제 또 한전이 들이닥쳐 공사를 시작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2013년 3월,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면서 지금은 활동가들이 할머니들과 함께 이곳을 지키고 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주민 동의 없이 강행… 이제 남은 건 한 기

삼평1리 마을이 송전탑 문제를 겪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봄. 마을에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문이 돌았다. 주민들은 모두 반대했다. 하지만 한국전력 관계자는 국책 사업이고 이미 2006년 주민설명회를 열어 동의를 얻는 등 필요 절차는 모두 거쳤다고 답했다. 하지만 당시 부녀회장 이은주 씨는 주민설명회가 사전 공지 없이 열렸다고 말했다.

송전탑 건설 문제는 삼평1리 마을만 해당하는 게 아니었다. 청도군 각북면과 풍각면 15개 마을 상황이 모두 비슷했다. 이들은 '범청도 송전탑 반대 군민연대'를 결성해 반대 투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2011년 15개 마을 중 14개 마을은 마을발전기금을 받고 합의했다. 삼평1리만 남았다. 현재 삼평1리 할머니들이 막고 있는 23번 송전탑은 청도군에 세워질 40기 중 마지막 남은 철탑이다.

▲ 23번 365kV 송전탑은 마을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서 지어질 예정이다. 주민들은 고압 송전탑이 생성하는 전자파에 불안해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평화의 이름으로 자유를 주기 위해 오신 주님, 삼평리 이곳에 평화가 임하기를 염원하는 이들이 모였습니다. 주님, 저희들은 송전탑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보상을 바라는 것도 더 많은 전기를 쏟아부어야 하는 풍요도 원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저 흉악한 철탑이 들어서기 전처럼 부지런히 농사를 짓고 이웃들과 밥을 나누던 그 시절로 돌아가길 원합니다…할머니들의 온몸에 서린 설움만큼, 온몸에 서려 있는 피멍만큼 공권력에 대한 우리의 분노도 커 갑니다. 주님 이들을 도우소서. 삼평리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8월 15일 새벽이슬·교회개혁실천연대·성서대구·성서대전 등 기독교 단체는 삼평1리 송전탑 건설 현장을 찾았다. 각 단체 회원들과 청도 송전탑 문제에 관심 있는 개신교인 30여 명이 동행했다. 23호 송전탑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 앞에서 삼평1리 할머니들의 싸움을 지지하는 연합 예배를 열었다. 평생 교회와 연이 없었지만 현장에서 공사를 막던 5명의 할머니들도 함께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애희 국장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평화의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했다. 

▲ 8월 15일 새벽이슬·교회개혁실천연대·성서대전·성서대구 등 기독인 30여 명이 23번 송전탑 공사 현장 앞에서 '송전탑 반대 기독인 연합 예배'를 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 예배에 참석한 할머니들이 기도하고 있다. 멀찍이 보이는 경찰들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기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돈도, 풍요도 아니고 삼평리에 정의를 구합니다" 

설교를 전한 성서대구 운영위원 신경희 목사는 불의한 시대를 겪으며 절규했던 하박국 선지자의 글을 읽었다. 그는 비록 오늘날 우리 사회가 하박국 선지자가 겪었던 시대처럼 패역하고 악을 가까이 하는 시대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정의가 흐르게 할 것이라며 "여러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그분이 통치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해 할머니들과 함께 오랜 기간 싸워 온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인 백창욱 목사(새민족교회)는 예배 안내지에 실린 이억조 씨의 글을 소개했다. 그는 평범하게 살던 할머니들이 "살려 달라", "죽을 지경에 처해 있다"고 호소하게 되었다며, 한국전력과 경찰이 이들의 생존권을 빼앗았다고 비난했다.

백 목사는 한국전력이 내세우는 전원개발촉진법을 대표 악법이라고 했다. 1978년 유신 시절 만들어진 전원개발촉진법은 전원개발사업자가 사업에 필요한 토지 등을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게 한다. 한국전력은 2012년 7월, 마을에 갑자기 들이닥쳐 김춘화 씨의 논둑을 굴착기로 밀어 버렸다. 송전탑 건설 토대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동네 주민들이 달려와 직원들에게 항의해 보았지만, 막무가내였다. 인부들은 한국전력이 발행한 공사 협조문을 내밀고는 공사를 강행했다.

할머니들과 시민 단체의 연대로 공사는 2012년 9월부터 2년 동안 주춤거렸다. 하지만 지난 7월 21일 새벽, 경찰을 대동한 한국전력이 평화공원을 기습 점거했다. 소식을 들은 20여 명의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달려왔지만 500여 명의 경찰 병력이 이들을 제지했다. 이후 평화공원은 2M 높이의 펜스와 철문이 둘러쌓은 공사장으로 변했다. 

▲ 송전탑 농성장의 일과는 오전 6시 여는 기도로 시작하고 저녁 7시 30분 삼평리 이바고(이야기 시간)와 닫는 기도로 끝맺는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송전탑이 불러일으킨 공동체 분열

송전탑 문제는 삼평1리 마을 공동체의 붕괴를 불러왔다. 2년 전만 해도 앞산에 들어서는 22번 송전탑 건설을 막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모두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지금은 찬성 측과 반대 측으로 갈라져 버렸다. 한 할머니는 동네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했다. 옛날에는 옆 집 수저와 그릇 개수도 알 정도로 가까웠고, 마을끼리 1년에 한 번씩은 농학이나 축제를 열었다. 그런데 지금은 축제는 중지됐고, 민심은 사나워졌다. 찬성 측 주민과 반대 측 주민들은 만나면 불편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송전탑 반대 현장에 나가지 않는 주민들이라고 해서 꼭 송전탑 건설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다는 심정이다. 박제분(81) 씨는 나라가 하는 일을 국민들이 어떻게 막느냐며 푸념했다. 박 씨도 초기에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반대 시위에 나섰다. 하지만 지금은 자포자기 상태다. 박 씨는 한국전력 직원과 경찰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저들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저러는 거라고 말했다. 대구에서 귀농한 장원종(80) 씨는 마을에 이사 온 지 이제 3년째라고 했다. 부부가 몸이 안 좋아 시골로 내려왔는데, 송전탑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고 들어 걱정이라고 했다. 어차피 살 날도 안 남았는데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삼평1리 주민이자 할머니들과 함께 공사 반대에 나선 김미화 목사는 송전탑 건설 여부와 상관없이 마을에는 커다란 숙제가 남겨져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갈라진 주민들의 마음을 하나로 봉합하는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남아 있는 사람들은 얼굴 부딪치고 같이 살아야 하잖아요." 김 목사의 말이다.

연합 예배를 마친 기독교인들은 평화공원 옆 농성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헬기가 비산 먼지 설비 대책도 없이 자재를 운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자재가 내려지는 공사 현장 근처로 이동해, 공사를 멈추라는 시위를 했다. 한전 관계자들은 채증을 하며, 불법 행위라고 했다. 

▲철골 자재를 실은 헬기가 굉장한 소음을 내며 공사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삼평1리 주민들은 헬기 소음 때문에 소가 송아지를 유산하고 집에서 키우던 개가 죽었다고 말했다.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는 헬기 운용은 환경영향평가를 거치지 않은 불법 운용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 16일 오전 한국전력이 헬기로 철골 자재를 나르자, 새벽이슬 회원들과 활동가들은 공사 현장으로 이동해 "한전은 불법 헬기 운용을 중단하라"고 항의했다. ⓒ뉴스앤조이 임수현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은 모두 마음에 짐을 하나씩 떠안았다. 지금까지 네 차례 청도를 찾은 대학생 박승 씨(26)는 올 때마다 더 자주 오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상황이 악화되는 것 같아 답답하다고 했다. 삼평1리 할머니들은 이들이 돌아간다는 말에 아쉬워하며 한 명씩 손을 꼭 쥐었다. 이억조 씨는 주민이 적어 도와주는 사람들을 기다렸다며, 덕분에 용기가 난다고 고맙다고 했다.

8월 마지막 주는 복음주의기독교연합 목회자들이 현장 연대를 위해 방문할 예정이다. 청도345kV송전탑반대공동대책위원회는 삼평1리 송전탑 반대 현장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SNS(청도 페이스북 바로가기)를 통해 알려 왔다. 삼평1리 할머니들을 위한 시민사회의 연대와 후원도 요청하고 있다.

* 문의: 상황실장 이보나 010-4444-1210 / 주소: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삼평리 266-1번지 / 후원: 대구은행 508-11-009397-5 (예금주: 삼평리에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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