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신교 보수 단체가 시복 미사가 열린 광화문광장 주변에서 반대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로마교황 적그리스도 우상 숭배자" 등의 피켓을 들고 광화문 인근을 배회했다. 시복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들에게 "교황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며 고함을 질렀다. 가톨릭교인들은 큰 동요 없이 미사 준비에 집중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8월 16일 오전 7시 서울시청역 부근. 시복 미사에 참가한 가톨릭교인들은 한껏 들떠 있었다. 성가를 부르거나 조용히 묵상하면서 25년 만에 방한하는 교황을 기다렸다. 새벽부터 행사장을 찾은 이들은, 바닥에 매트를 깐 채 새우잠을 자고 있었다. 교황과의 만남을 앞둔 가톨릭 신자들은 평화롭고 차분해 보였다. 발걸음을 떼려는 찰나, 단체로 성가를 부르고 있는 현장이 시끄러워졌다.

흰색 바탕에 붉은색 십자가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한 남성이 가톨릭교인들 틈바구니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회개하세요, 여러분. 우상숭배하면 지옥에 갑니다." 그의 손에는 "하나님 앞에 로마 가톨릭과 교황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이 들려 있었다. 성가를 부르던 가톨릭교인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경찰들이 다가가 남성을 제지했다. 인도로 붙들려 나온 그는 엎드린 채 "여러분, 사랑합니다. 회개하세요"라면서 중얼거렸다.

▲ 개별 시위자들은 시복 미사 전부터 광화문 인근을 서성였다. 붉은색 십자가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한 남성은 미사를 준비 중인 가톨릭교인들 틈으로 들어가 회개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어떤 이들은 지하철역 부근에서 행인들을 붙잡고 가톨릭의 문제를 조목조목 설명해 주기도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복 미사를 집전한 이날, 개신교 내 일부 단체는 광화문 옆 을지한빛거리에서 로마교황과 가톨릭을 반대하는 맞불 집회를 열었다. 집회를 주최한 로마가톨릭&교황정체알리기운동연대(운동연대·송춘길 조직위원장)는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주장했다. 구원받고 싶다면 회개하고 개신교로 개종하라고 했다. (관련 기사 : 가톨릭 반대 집회에 1만여 명 운집) 하지만 1만 명이 참석할 것이란 말과 달리 참석자는 400여 명에 불과했다.

격려사를 전한 신정희 목사(초원교회)는 가톨릭과 기독교는 전혀 다른 종교라고 말했다. 가톨릭은 '하느님'을 믿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한 목적은 한국교회를 집어삼키려는 데 있다고 했다. 그는 "가톨릭은 WCC(세계교회협의회)를 이용해 이슬람·불교 등 모든 종교를 하나로 합치려고 한다. 5월 22일 예장통합 김동엽 총회장은 가톨릭과 직제 일치 서명을 했다. 한국교회가 가톨릭에 잡아먹히기 일보 직전"이라고 말했다.

작은 차를 타고,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을 만나는 교황의 행동이 형식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난의 소리도 나왔다. 송춘길 조직위원장은 "교황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감탄하지만, 이런 행동은 예수가 지적한 외식·형식주의"라면서 교황의 겉모습에 온 세상이 미혹됐다고 했다. 송 위원장은 기독교는 겉모습에 치중하는 게 아니라,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 종교라고 말했다.

반대 집회는 미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뤄졌다. 이들의 옷에는 '예수 천국, 불신 지옥'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적그리스도 로마 교황 반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복 미사가 열리는 광화문 일대를 배회했다.

▲ 참가자들은 30여 분간 통성으로 기도했다. 보도블록에 무릎을 꿇거나 양손을 높이 든 채 열성적으로 기도했다. 인도자는 "교황과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무저갱으로 떠나갈지어다"라는 멘트를 연발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이를 본 일반 시민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개신교의 폐쇄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톨릭은 100만 명이 모였지만,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치르고 있다. 개신교인들은 반대한답시고 드럼 치고 기타 치면서 온갖 소란을 피우고 있다. 개신교가 교황 방한을 환영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반대한다는 광고만 많이 봤다. 한 종교의 수장이 왔는데 저런 집회를 여는 것은, 종교를 떠나 기본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 김택환 씨(47)

"지나가다 시끄러워서 보러 왔다. 정식 허가를 받은 시위라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앰프 소리가 너무 크다. 경찰이 왜 통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는 명동에서 장사한다. 명동에도 십자가 메고 확성기 틀며 고성방가하는 이들을 자주 본다. 문구도 예수 천국 불신 지옥처럼 매우 협박적이다. 일어·영어로 번역해서 써 붙이고 다닌다. 외국인들이 그걸 보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부끄럽다. 저런 사람들은 일반인들과 의사소통이 안 된다. 자기들은 전도랍시고 저러고 있지만, 사람들은 미친 사람 취급한다. 저들은 자기들만의 세상이 따로 있는 것 같다." - 장기용 씨(35)

"교회가 하나 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자신만이 옳다고 하며 싸우는 건 교만한 짓이다. 사회에서도 서로 싸우는데 종교 지도자들이라도 하나 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 종교 행사라면 어느 정도 수준을 갖춰야 한다. 이건 동네 장사판 같다. 엄숙하고 거룩한 분위기 속에서 행사를 치른다면 모르겠다. 확성기와 대형 앰프를 동원해 시장 좌판보다 더 요란하게 떠들고 있다." - 박태웅 씨(56)

개신교인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평화와 사랑을 외쳐야 할 교회가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SNS를 보면 모든 국민이 교황 방문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개신교만 반대하는 것 같다. 종교인이면 평화와 사랑을 먼저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도 그렇고, 종교가 평화가 아닌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교황은 평화를 선포하러 왔지만, 개신교인들은 싸울 생각만 먼저 하는 것 같다. 개신교인으로서 심히 부끄럽다." - 김지영 씨(소망교회·38)

"저런 행동을 하는 걸 보면 순수한 집회는 아니다. 배후 세력이 있을 것이다. 개신교에서 교황 방한을 환영하는 메시지를 본 적이 없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제일 배 아파할 것이다. 유교나 불교에서 반대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겠다. 형제 종교에서 저러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교황 방한을 통해 한국교회의 치부가 또 다시 드러났다." - 이은희 씨(안현동교회·34)

▲ 시복 미사를 마친 가톨릭교인들이 집회 현장을 지나쳐 갔다. 이들은 신기한 듯 집회 현장을 주시했다. 가톨릭교인들은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안타깝다", "믿는 바가 달라 어쩔 수 없다"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시복식이 끝나면서, 광화문 광장의 출입 통제도 풀렸다. 반대 시위에 나선 이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자리를 뜨는 가톨릭교인들 사이로 파고들며 "제발 성경 좀 읽으세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교황과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무저갱으로 떠나갈 지어다"라고 외쳤다. 이번에도 가톨릭교인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반대 시위자들의 시위가 계속되자, 참다못한 한 가톨릭교인은 "우리도 성경 보고, 예수님 믿습니다"라며 소리쳤다. 

▲ 광화문광장의 출입 통제가 풀리자, 일부 개신교인들이 광화문광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시복식을 마치고 이동하는 가톨릭교인들을 향해 "유일한 구세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소리쳤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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