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는 8월 15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8·15 범국민대회'를 개최했다. 범국민대회에는 유가족과 추모객 등 3만 여 명(경찰 추산 1만 2000명)이 모였다. 집회 참가자들은 여야 정치권에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재협상을 촉구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세월호 참사 122일(8월 15일 기준)째,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을 시작한 지 32일이 지났다. 8월 7일 여야 원내 대표가 특별법 제정을 위한 극적인 합의를 이뤘지만, 유가족들의 요구는 배제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여·야 합의를 규탄하며 제대로 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신학생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호남신대·장신대·부산장신대 학생과 교수들은 특별법 제정을 염원하며 진도에서 안산까지 순례길에 올랐다. 한신대 신학생들은 여야 합의에 반발하며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 사무실을 기습 점거했다.

8월 12일 저녁, 해남 금호면의 한 마을에는 노란색 조끼를 입은 20여 명의 사람이 마을 어귀로 들어왔다. 이들의 양손에는 노란색 깃발이 높이 들려 있었고, 깃발에는 고창석, 권재근, 박영민, 황지현 등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세월호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입고 있는 조끼에는 실종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새겼다. 이들은 세월호 실종자 귀환을 염원하며 8월 11일 진도 팽목항에서 출발한 '생명과 정의의 도보 순례단'이다.

▲ '생명과 정의의 도보 순례단'은 세월호 실종자 귀환을 염원하며 8월 11일 진도 팽목항에서 출발했다. 도보 순례단은 8월 31일 안산 분향소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순례단은 호남신대·장신대·부산장신대 신학생들이 중심이다. 여기에 신학교 교수들과 유가족 한 명, 그리고 일반 참가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뙤약볕에서 온종일 걸은 탓인지 순례단의 얼굴은 빨갛게 익어 있었다. 마을에 입성한 순례단은 늦은 저녁을 들기 위해 마을의 한 식당으로 향했다. 밥때가 한참 지났지만, 갈증 탓인지 밥보다는 물을 먼저 찾았다. 식사를 마친 순례단은 숙소인 해남 금호교회로 이동했다. 온종일 걸어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대로 잠자리에 눕지 않았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실종자들의 귀환을 염원하는 기도회를 열었다.

도보 순례를 기획한 이들은 호남신학대학교 오현선 교수(기독교교육)와 호남신대 학생들이다. 오현선 교수와 그의 제자들은 7월 14일부터 진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를 펼쳐 왔다. 여기에 장신대·부산장신대 교수와 신학생들, 그리고 유가족 한 명과 일반 참가자들이 뜻을 모았다. 순례단은 △실종자들의 귀환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 제정 △생명과 정의의 가치가 회복되는 사회 등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순례길에 올랐다. 8월 31일 안산 분향소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도보 순례는 날수에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8월 12일 저녁에는 이틀간 순례에 동참한 부산장신대 황홍렬(선교학) 교수가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황 교수는 순례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는 WCC 부산 총회 정의와 평화 순례의 연장선상에 이번 도보 행진이 있다고 말했다.

"호남신대 학생들이 귀한 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부산장신대 학생 2명과 11일부터 참여했습니다. 먼저 떠나게 되어 너무 아쉬워요. 전국 곳곳에서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단식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태야말로 명확한 진상 조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12일에도 거제 앞바다에서 어선이 침몰해 6명이 사망했습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페리호 침몰 등 대형 참사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교회가 공적인 선교 차원에서 같이 대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반복됩니다."

▲ 8월 중순의 더위는 순례단을 괴롭혔다.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쓸어내렸지만, 이미 흠뻑 젖은 손수건은 제구실을 못했다. 순례단은 수분 보충을 위해 중간마다 오이를 먹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한국교회의 과제는 유가족들의 아픔과 눈물 알리는 것

8월 13일 오전 4시, 순례단은 천근만근인 몸을 일으켜 세웠다. 떠지지 않는 눈이었지만,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잠을 줄일 수밖에 없다. 순례단은 1번 국토를 타고 하루에 20~30km를 걷는다. 12일에는 40km 남짓 떨어진 무안군 청계면까지 걸어야 한다. 고된 몸이었지만, 늦장 부리는 이 없이 다음 목적지인 목포 양동제일교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순례단은 11시가 다 돼서야 목포시에 도착했다. 시민들은 순례단을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순례단을 본 시민들은 집 밖으로 나와 "젊은 사람들이 참 좋은 일 하네, 힘내세요"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버스나 차 안에 있던 사람들도 차창을 통해 손을 흔들었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시민들의 인사에 학생들은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 순례 3일째인 8월 13일, 순례단은 전남 목포에 도착했다. 순례단은 하루에 2명을 특별히 기도하며 걷는다. 이날은 실종자 10명 가운데에서 조은화, 허다윤 씨를 마음에 품고 걸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양동제일교회에 도착하자 순례단은 교회에서 내준 시원한 물로 목부터 축였다. 목을 축인 단원들은 땀에 젖은 양말을 갈아 신었다. 양발을 벗자 발에는 여기저기 물집이 잡혀 있었다. 휴식 시간을 이용해 참가자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신학생들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 두 진영으로 나뉜 한국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건은 지난 한 학기 동안 가장 뜨거운 주제였습니다. 신학교 역시 한국교회와 마찬가지로 양 극단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한 진영에서는 신학생들이 해야 할 일은 기도가 우선이라고 합니다. 현장에 나가 연대 활동을 펼치거나 기도회를 여는 것은 운동권 학생들의 역할이지 신학생의 몫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반대 진영에서는 예배와 기도는 등한시한 채 현장을 우선시합니다.

두 진영 모두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 기도와 행동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순례단이 밤낮으로 기도회를 여는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또 교회가 이런저런 활동을 한다는 데 만족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유가족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만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 이중호 씨(장신대)

선배 목회자들의 경솔한 언행에 아쉬움을 표하는 학생도 있었다.

"한국교회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나서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서명받은 게 얼마나 됩니까? 기독교의 가장 큰 가치는 생명입니다. 몇몇 목회자들이 경제 상황을 들먹거리며 유가족들의 모든 활동을 멈추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 경제 논리를 들먹이는 게 말이 됩니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선배 목회자들이 교회 성장에만 혈안이 돼 있습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하나님의 뜻 운운하며 고통을 인내하라고만 했지, 한국교회는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 홍진영 씨(호신대 신대원)

인터뷰를 마친 학생들은 오침에 들었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장시간 걷기 위해서는 체력 조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순례단이 낮잠을 자는 사이 새로운 참가자들이 목포에 도착했다. 서울 생명살림교회 홍성태 목사 일행이었다. 홍성태 목사 일행은 여름휴가 기간을 이용해 순례단에 합류했다. 홍 목사는 "인터넷을 통해 신학생들의 도보 행진을 알게 됐다. 신학생들이 뜻있는 일을 하는 데 선배로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참여 이유를 밝혔다.

순례단의 도보 코스 및 모든 일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호남신대 오현선 교수다. 그는 사전 답사부터 시작해 휴식을 취할 교회 섭외까지 궂은일을 도맡았다. 순례단이 잠시 멈춰 휴식을 취할 때도 오 교수는 가장 먼저 도착해 자리를 펴거나 물을 준비했다. 그는 신학생들이 이번 기회를 통해 실천 현장에서 신학 하는 법을 배웠으면 좋겠고 말했다. 학생들이 소중한 배움을 통해 한국교회 개혁의 싹을 틔운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했다.

▲ 호남신대 오현선 교수는 도보 대장이다. 오 교수는 "함께 걷지 못한 많은 제자가 마음을 더해 주고 있으며, 생명살림교회 교인 등 일반 참가자들이 순례단의 벗이자 힘이 되어 준다"고 전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야당 대표 사무실 점거한 당돌한 신학생들

한반도 최남단으로 신학생들이 순례를 떠난 사이, 서울에서는 한신대 신대원생 4명이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의원 사무실을 기습 점거했다. 이들은 8월 7일 여야 합의가 유가족들의 의견을 묵살한 밀실 야합이라고 성토했다. 신학생들은 박 위원장 사무실에 머무르며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 즉각 파기, △유가족의 요구가 반영된 특별법 채택, △박 위원장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8월 14일 오전, 기자는 교황 맞이 준비로 분주한 광화문광장에서 한신대 민중신학회 회장 김진모(28) 씨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기독교 연합 부스에 학우들과 나란히 앉아 성경을 읽고 있었다.

▲ 김진모 씨는 광화문광장에 위치한 기독인 금식 기도단 부스에 학우들과 나란히 앉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김 씨는 120여 일이 넘는 시간 동안 유가족 곁을 지키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자 곧장 진도로 내려갔다. 5월 15일에는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청계 광장에서 삭발식과 단식 농성을 진행했고, 6월 10일에는 청와대에서 기습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그는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이런저런 활동을 했지만, 여전히 유가족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진실 규명을 위한 시위도 하고 단식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진정 유가족 분들이 원하는 일이냐는 의문이 듭니다. 7월 한 달간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었습니다. 그러다 유가족들이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한다기에 얼마 전에 다시 나왔습니다. 공조 단식 하루 만인 8월 7일에 세월호 특별법 여야 합의안이 나왔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롯해 농성 중이던 사람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어요. 새정치민주연합이 새누리당과 대립각을 세워 줄 걸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이대로 끝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급했고 무서웠어요.

단식 농성 중이던 고(故) 김유민 학생의 아버지 김영오 씨가 청와대와 국회로 찾아갔지만 모두 막혔습니다. 다음 날 아침 4명의 학우가 모여 대책을 강구했습니다. 여야 합의를 주도한 박영선 의원 사무실을 점거하자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8월 8일 오후 6시쯤 구로구에 있는 박영선 의원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여당과의 야합을 파기하고 새민련은 유가족이 요구하는 특별법을 채택하라는 것이 우리의 주장이었습니다."

김 씨는 감신대 도시빈민선교회와 한신대 민중신학회는 원래부터 교류가 잦다며 항간에 떠도는 지하조직 같은 건 없다고 말했다.

"5월 8일 감신대 학생들이 세종대왕 동상 위에 올라 박근혜 정부 퇴진을 요구하며 기습 시위를 벌였습니다. 5월 14일에 있었던 삭발식은 여기에 자극을 받은 면이 있어요. 학교마다 상황이 달라요. 감신대·장신대 외에도 장신대·성공회대·총신대 학생들이 교류하고 있어요. 모든 신학생이 같은 목소리를 낼 순 없지만, 뜻을 같이하는 학생들이 교류하고 있어요. 많은 수는 아니지만, 진실 규명이 이루어질 때까지 연대 활동을 지속할 겁니다."

젊은 신학도들은 행동하고 있었다. 진도 팽목항, 광화문 단식 농성장, 국회 앞 촛불 기도회, 어딜 가나 신학생들을 찾을 수 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어느덧 120여 일이 지났지만, 신학생들은 언제까지고 유가족들 곁을 지킬 태세다. 

▲ 순례단에는 여러 일반 참가자가 함께하고 있다. 이화갑 목사(선데이스쿨)와 이가람 학생(신망원·15)도 그중에 일부다. 중학교 2년인 이가람 학생은 아직 어린 나이지만, 힘든 내색 한번 없었다. 이가람 학생은 마지막 날인 8월 31일까지 함께할 뜻을 전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 순례단의 양손에는 노란색 깃발이 높이 들려 있었다. 깃발에는 고창석, 권재근, 박영민, 황지현 등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10명의 세월호 실종자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입고 있는 조끼에는 실종자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새겼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 순례단의 숙식은 예장통합 측 교회에서 제공했다. 12일 저녁에는 해남 금호교회 교인들의 대접을 받았다. 예장통합 사회부는 순례단의 코스에 맞춰, 순례단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교회를 섭외해 주고 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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